“영등위입니까? 선도부입니까?” “혹시 심의위원 중에 성균관 유생 계십니까?”
지난 2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 건물 앞. 한 남자가 항의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섰다. 밀크픽처스의 공자관 감독이었다. 공 감독은 ‘젊은 엄마’ ‘친구 엄마’ 등 엄마 시리즈로 성인영화, IPTV 시장에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인물이다.
공 감독은 왜 영등위 앞에서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서게 됐을까. 그의 신작 ‘특이점이 온 영화’ 때문이다. 영등위의 전근대적인 심의기준과 이에 따른 심의반려 남발에 항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연은 이렇다.
공 감독은 당초 신작 ‘특이점이 온 영화’를 11월 중 공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영등위 등급을 받는 과정에서 차질이 빚어졌다. 영화 포스터의 ‘전체관람가’ 등급분류를 영등위에 신청했으나, 번번이 ‘유해성 있음’으로 ‘청소년관람불가’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이에 포스터를 수정해 제출했는데, 그 횟수는 11월 한 달 사이에 총 4회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한국의 영상물 등급제에서 전체·12세·15세관람가와 청소년관람불가로 세부적으로 나뉜 일반 영상물과 달리, 포스터와 예고편은 전체관람가와 청소년관람불가 2가지 등급으로만 구분된다. 따라서 ‘특이점이 온 영화’와 같은 성인영화도 포스터와 예고편은 전체관람가 등급을 받아야 일반 공개 및 마케팅이 가능하다.
포스터가 아닌 예고편도 두 번의 전체관람가 심의 반려 끝에 세 번째에 가서야 겨우 전체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밀크픽처스 관계자는 “예고편이 심의 과정에서 최초에 의도한 재미와 정체성이 많이 희석됐다”고 아쉬워했다. 현재 ‘특이점이 온 영화’는 메인 포스터 심의 등급을 받지 못해 공개되지 못하고 있다.
공 감독은 “전체관람가 수위를 지키면서도 청불 성인영화로서의 정체성도 잃지 않는 포스터를 만들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뻔하지 않은 성인영화 포스터를 만들기 위해 나름 노력했지만, 심의를 접수할 때마다 원래 의도가 훼손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며 “이에 보다 못해 1인 시위라도 해야 할 것 같아 행동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 감독은 “영등위는 심의반려의 사유로 항상 맨 첫줄에 청소년 보호를 내세운다. 나 역시 청소년을 보호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런데 영등위는 청소년 보호를 이유로 같이 지켜야 할 다른 덕목들, 시대를 이끄는 창의성, 산업의 진흥 등은 아예 외면하고 있다. 인터넷, 모바일 시대에 뒤떨어진 심의기준을 고수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시도이자, 아이들을 무균실에서 키우려는 시도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공 감독은 이러한 엄격한 심의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더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공 감독은 “나는 김대중 정부 때부터 영화를 만들고 영등위 심의를 받아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이 정도까지 심의 규제가 심하지는 않았다”며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 박근혜 대통령으로 이어지면서 영등위가 성과 관련된 표현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으로 변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영등위 관계자는 “영등위는 청소년보호가 최우선인 기관이다. 보수적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런 부분에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표현의 자유가 지켜질 수 있도록 조율하고 노력하고 있다”며 “공자관 감독은 성인영화에 나름 확고한 신념과 철학을 갖고 있다. 그래서 죽어가는 성인영화 산업 자체를 부흥시키는데 공도 많이 세웠다. 이번 영화에 대해 애착을 갖고 있어, 영등위의 심의에 안타까운 것은 알겠다. 공 감독은 포스터가 은유적 표현이라고 하지만, 영등위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적나라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공 감독이 제출한 포스터 중 몇 개 버전은 ‘유해성 없음’으로 전체관람가 통과가 됐다”며 “또한 다른 영화들의 경우 아예 일부 포스터나 예고편은 청불 등급을 신청해 성인인증을 거친 이들을 대상으로 홍보를 하기도 한다. 공 감독도 청불 등급을 받은 포스터나 예고편은 그런 방법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성인영화 시장에서 공 감독은 이름이 가지는 유명세가 있지 않느냐”고 전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더욱 보수적으로 바뀌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전혀 아니다. 예전에 비해 표현의 자유가 굉장히 많이 완화됐다. 오히려 10년 전에는 엄두도 못 냈을 적나라한 표현에 대해서도 허용하는 등 관대해진 면이 있다”고 반박했다.
이날 공 감독은 1인 시위뿐만 아니라 이경숙 영등위 위원장과의 면담을 위해 요청 공문을 제출했다. 하지만 결국 공 감독과 이 위원장의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공 감독은 향후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연대를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웅기 기자
minwg08@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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