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양식 하면 경양식이었다. 문자 그대로 ‘가벼운’ 양식이라는 말인데, 이는 전통적인 서양 양식과는 다른 동양식을 의미했다. 일본에서는 그냥 ‘요쇼쿠(洋食)’라고 하면, 일본화된 양식을 말한다. 전통 유럽 양식은 그냥 ‘프렌치’라거나 ‘이탈리안’이라고 부른다. 어쨌든 그 양식의 기본은 바로 돈가스였다. 흔하지 않은 기름에 튀겨서 포크와 나이프를 곁들여내는. 전국에 경양식집이 많았고, 돈가스와 ‘함박스텍’, ‘정식’이라는 메뉴를 팔았다. 가장 우아한 식당이었으며, 값도 비쌌다. 그렇게 돈가스는 팔려나갔다.
이런 돈가스는 일본에서 온 것인데 어느 정도 양식의 스타일을 유지한 것이다. 일본은 오히려 이런 양식 스타일 대신 일본화의 길을 걸었다. 우리가 일본식 체인점이나 일본 여행에서 맛볼 수 있는 그런 돈가스가 그것이다. 칼로 잘라 나와서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으며, 얇게 채 썬 양배추를 곁들이고 장국(미소지루)과 밥이 나오는.
그런 돈가스의 신 원조는 바로 명동돈가스다. 명동 한복판에서 1983년 개업한 후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정통 일본식 돈가스를 찾는 미식가의 사랑을 받았다. 한동안 이 집이 문을 닫고 있어서 폐업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몇 달 전, 업주인 윤종근 회장(81)을 직접 만나서 사정을 들었다. 건물이 오래되어 리모델링을 하는데, 설계와 시공이 너무 복잡해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했다. 현재 명동돈가스는 새단장을 마친 채 성업하고 있다. 몇 달 전 재개장 했을 때 먹어보고, 최근 다시 가서 먹었다. 음식이 훨씬 안정되어 있고 더 맛있어졌다. 돈가스의 필살기인 바삭함과 속의 촉촉함이 제대로 살아 있었다.
돈가스는 일본의 국민음식이다. 아예 일본의 전통 음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실은 그리 오랜 역사는 아니다. 오랜 육식 금기를 풀고 고기를 장려한 것은 19세기 말을 풍미한 메이지정부였다. 유럽에서 커틀릿이었던 이 음식은 일본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완벽한 국민 음식이 되었다. 돈가스라는 이름 자체가 그렇다. 돼지의 돈(豚)에 커틀릿을 뜻하는 일본식 발음 카쓰레쓰의 앞 두 글자를 따서 붙인 것이다.
윤종근 회장이 이 음식을 일본에서 들여온 것은 상당히 운명적이다. 원래 유명한 패션업체인 반도패션(엘지패션의 전신)의 임원이었던 그는 일본을 드나들다가 이 음식을 가져와서 창업했다. 놀랍게도 도쿄에서 제일 유명한 돈가스점인 ‘동키’가 그것이다. 몇 번 퇴짜를 맞고 기어이 기술을 이전 받아 한국에 개업한 것이 30년 세월이 넘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경양식집 스타일의 포크와 나이프를 쓰지 않고 젓가락으로 먹는 방식이라 초기에는 영업에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고기를 두들겨 크게 펼쳐서 내지 않고 두툼하게 튀겨서 육즙을 함유하는 방식도 신기해했다고 한다.
명동돈가스는 명동의 마지막 전성기를 함께했다. 명동의 첫 번째 전성기는 일제시대다. 본정통이라고 불리며 일본인들의 화려한 상가였다. 독립한 후 예술인이 많이 모이는 기대를 거쳐 1970~80년대에 금융과 유통의 중심지로 크게 번성했다. 이때 이후 명동은 강남에 밀려 침체기를 걸었고 이제는 중국인의 쇼핑거리가 되어 명동의 본래 모습을 많이 잃었다.
명동돈가스의 맑은 기름은 하루 두 번 교체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90킬로그램짜리 돼지의 등심과 안심에 후춧가루를 쳐서 냉장숙성한 후 170도 정도의 온도에서 오랫동안 튀겨낸다. 육즙을 지켜내고 겉은 바삭하다. 슈니첼과 달리 밀가루, 계란, 빵가루의 옷을 입힌다.
개업 초기에 5000원 정도 했던 가격은 현재 1만 2000원(등심인 로스가스)부터 시작한다. 여전히 예전의 맛을 지켜가고 있는 것은 윤 회장의 고유한 뜻이기도 하다.
명동돈가스는 상표등록이 되어 있다. 허나 전국에 같은 이름의 가게가 꽤 있다. 그들도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라며, 간판 바꾸라는 말도 이제는 안 한다. 명동 골목에 다시 고소한 기름 냄새가 퍼지지 시작했다. 명동돈가스가 돌아온 것이다.
박찬일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