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이 과자 포장지 전문회사 아이팩에 대해 선친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로부터 상속받은 자신의 은닉재산이라고 시인했다. 아이팩은 각종 논란 끝에 지난해 오리온에 흡수 합병됐다. 이는 ‘비즈한국’이 단독 입수한 동양그룹 채권자 비상대책위원회와 이혜경 전 부회장 사이에서 오간 11월 2일자 내용증명과 9일자 확인서에서 드러났다.
또한 이 전 부회장은 아이팩 상속자임에도 동생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의 남편 담철곤 회장이 아이팩을 소유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문의를 받은 적도, 동의한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이 전 부회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담철곤 회장은 임의로 이 전 부회장의 상속재산을 가로챘다는 의혹의 중심에 서게 될 전망이다.
이 전 부회장은 비대위가 보낸 내용증명에 친필로 답변했다. 먼저 이양구 회장이 아이팩을 차명으로 인수해 주식을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인지 여부에 대해 이 전 부회장은 “(부친이)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 당시의 이름은 신영화성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당시 아이팩 지분을 박 아무개 씨 등이 차명으로 지분을 나눠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인지 여부에 대해 이 전 부회장은 “박 씨 차명으로 보유했던 것으로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양구 회장 타계 후 상속인들이 실명 전환을 밟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당시 실명전환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답변했다. 2008년부터 2012년 사이 차명으로 보유했던 지분이 Prime Link International Investment(PLI)와 담철곤 회장에게 전부 이전됐는데 상속인으로서 동의 여부와 관련해 이 전 부회장은 “(담철곤 회장이) 자신에게 물어본 적도 없고 동의한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이 전 부회장이 이런 답변을 한 이유는 동양 기업어음(CP) 사기행각 등으로 인한 피해자들이 남편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과 자신을 공범으로 고소할 경우에 대비해 은닉재산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동양그룹 CP 사기행각 등으로 인한 피해규모는 1조 7000억 원, 피해자만 4만여 명에 달한다. 현 전 회장은 징역 7년 형을 확정받아 수감중이다.
고 이양구 회장은 1983년 아이팩(옛 신영화성)을 차명으로 인수했다. 인수 당시 포장지 제조업은 중소기업고유업종이어서 이 회장 이름으로 주식을 보유할 수 없어 먼 친척인 박 아무개 씨 이름으로 차명 보유했다. 이 회장은 1989년 타계하면서 부인 이관희 오리온재단 명예이사장, 이혜경 전 부회장, 이화경 부회장에게 아이팩 지분 47.67%를 상속했다.
아이팩의 관리는 담철곤 회장이 맡았다. 중소기업고유업종 해제 후 아이팩 주식을 실명전환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상속자들은 하지 않았는데 상속세 납부를 회피하려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을 제외한 아이팩의 주식가치도 1000억 원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담철곤 회장이 아이팩을 실명 소유하는 과정은 이렇다.
2001년 옛 동양그룹이 동양과 오리온으로 분리된 후 담철곤 회장은 아이팩이 100% 지분을 투자한 중국 오리온에 포장지를 납품하는 ‘중국랑방아이팩’을 설립했다. 2006년 12월 담 회장은 홍콩에 자본금 119만 원의 PLI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PLI가 중국랑방아이팩 인수한 후 2011년 담 회장은 박 아무개 씨의 아이팩 차명 주식 47.67%의 지분을 인수했다. 그 외 동양창업, 김○○, 김○○, 이○○ 등이 보유한 아이팩 지분까지 인수하며 지분율을 53.33%까지 올렸다. 이어 아이팩 지분 46.67%를 보유한 2대주주 PLI 지분도 100% 취득하며 아이팩 지분 100%를 보유하게 됐다. 담 회장은 박 씨 소유 차명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한푼도 치르지 않았다.
김대성 동양 채권자 비대위 수석대표는 “이혜경 전 부회장은 남편 현 회장과 함께 동양그룹을 운영해 이번 동양그룹 사기 사건의 공범이다”며 “그런 이 전 부회장이 상속재산 아이팩을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담철곤 회장이 횡령한 이 전 부회장 재산은 피해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약탈경제반대행동 운영위원 이민석 변호사는 “담 회장은 아이팩이 박 씨 소유가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 박 씨에게 정당한 가격으로 산 것처럼 가장해 주식을 인수하고, 상속인에게는 아무런 동의 없이 아이팩 지분을 자신 소유로 만들어 상속재산 횡령 혐의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담 회장은 아들 담서원 씨에게 상속세 없이 불법 상속을 했다. 아이팩은 오리온에 합병되기 전까지 위장계열사로서 매해 300억 원대 ‘일감 몰아주기’특혜를 누렸다”며 “담 회장이 아이팩 최대주주가 된 2011년과 2013년 평균 2000%대 배당을 통해 담 회장에게 350억 원의 배당금을 안겼다. 2014년 오리온은 담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아이팩 지분을 145억 원에 취득하는 등 총수 배만 불렸다”라고 덧붙였다.
약탈경제반대행동과 동양 채권자 비대위는 29일 담철곤 회장과 아들 담서원 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죄’, ‘조세범 처벌법’상의 ‘조세포탈죄’ 혐의로 고발했다.
이에 대해 오리온 측은 내용증명과 답변을 보지 못한 상태여서 그 진위를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리온 관계자는 “자체 확인 결과 이양구 선대회장은 제과 부분과 아이팩 차명 지분까지 이화경 부회장과 담철곤 회장 부부에게 상속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아이팩 상속자라고 주장하는 이혜경 전 부회장이 아이팩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왜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이어 오리온 관계자는 “아이팩 상속과 관련한 세금 부분에 대해선 지난 2011년과 2012년 검찰의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이미 전액을 납부했다. 박 씨는 아이팩 차명 지분 보유자였기 때문에 담 회장이 지분 확보 당시 박 씨에게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며 “담 회장은 페이퍼컴퍼니 등 아이팩을 소유하게 된 전 과정과 다른 혐의에 대해서도 법원으로부터 형을 확정 받은 상태다. 그리고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 차원에서 지난해 아이팩을 오리온에 흡수합병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담철곤 회장이 29일 아이팩을 1989년 삼보에이팩이라는 회사로부터 차명 지분으로 인수했다고 밝혀 왔다”며 “동양그룹 채권자 비대위와 약탈경제반대 쪽에서 사실무근의 주장을 하고 있어 사실관계를 따져 법적 대응을 할 계획이다”고 강조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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