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장 주제 무리뉴 감독이 또 다시 벤치에서 쫓겨났다.
무리뉴 감독은 지난 28일(한국시각) 오전 1시 30분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맨유와 웨스트햄의 2016-17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13라운드 경기에서 퇴장 명령을 받았다.
사건은 1 대 1로 동점인 전반 26분 발생했다. 웨스트햄 진영에서 맨유 미드필더 폴 포그바가 드리블로 상대 선수를 제치려다 넘어졌다. 심판은 휘슬을 불었고, 호주머니에서 옐로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런데 옐로카드의 주인은 웨스트햄 선수가 아닌 포그바였다. 할리우드 액션이라는 뜻이었다. 다시보기 느린 화면에서도 포그바는 상대선수와 접촉이 전혀 없었음에도 그냥 넘어졌다. 포그바의 명백한 다이빙이었다.
그런데 징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주심은 맨유 벤치 쪽으로 걸어가더니 벤치 앞에 서있는 무리뉴 감독에게 퇴장을 명령했다. 포그바의 경고 결정에 무리뉴 감독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옆에 놓인 물통을 걷어찬 것이 화근이었다. 무리뉴 감독은 심판의 지시에 군말하지 않고 경기장을 떠났다.
감독의 퇴장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맨유는 결국 헛공방 끝에 홈에서 웨스트햄과 1 대 1 무승부를 거두고 말았다. 이로써 맨유는 5승 5무 3패 승점 20점으로, 선두 첼시에 승점 11점을 뒤진 6위에 랭크됐다. 맨유에게 13라운드 기준 승점 20점은 1990-91 시즌 이후 26년 만에 최저 기록이다.
특히 이번 퇴장으로 무리뉴 감독은 이번 시즌 13라운드 만에 두 번째 퇴장을 기록하게 됐다. 지난 10라운드 이후 불과 세 경기 만이다. 현재 EPL 내 선수와 감독 통틀어 이번 시즌 퇴장을 두 번 당한 이는 무리뉴 감독이 유일하다.
무리뉴 감독의 거침없는 언사와 행동은 언제나 축구계에 이슈가 되었다. 이러한 투쟁적인 모습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종종 축구협회나 구단주, 선수들과 트러블을 일으키기도 했다. 맨유 수뇌부 역시 무리뉴 감독 선임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 때문에 결정이 쉽게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감독은 팀의 매니저로서 냉철하게 선수를 관리하고 분석해 전술을 구상, 팀의 승리를 이끌어야 한다. 그런데 무리뉴 감독은 오히려 팀 위기의 암초가 되고 있다. 더구나 스완지전 승리-아스널전 무승부-페예노르트전 대승 등 팀 분위기가 상승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무리뉴 감독이 감정조절에 실패하며 찬물을 끼얹어 더 아쉬움을 낳고 있다.
이는 한국 대기업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의 경영활동에 그룹 오너인 재벌 총수들이 오히려 리스크로 작용하는 것. 최근 몇 년간 발생한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구속기소, 한진그룹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수백억 원의 그룹 계열사 자금을 횡령하고 유용한 혐의로 지난 2013년 1월 기소돼, 지난해 8·15 특별사면으로 풀려날 때까지 2년 7개월 동안 오너 공백이 있었다. CJ그룹 역시 상황이 비슷하다. 이재현 회장이 1600억 원대 횡령·배임·조세포탈 등 혐의로 2013년 7월 구속기소돼 지난 8·15 특사로 나올 때까지 3년여간 총수의 부재를 겪었다. 이 회장은 특히 구속 기간 중 받은 신장이식수술의 거부반응으로 건강상태가 악화돼 사면 후에도 여전히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투병 중이다.
한진그룹 오너일가인 조현아 전 부사장은 지난 2014년 12월 5일 미국 뉴욕을 출발해 인천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항공기에서 기내 견과류 서비스에 불만을 표시하며 ‘램프 리턴(비행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리는 것)’을 지시한, 일명 ‘땅콩회항’ 사건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재벌의 ‘갑질’ 논란으로 전 국민적 공분을 사 대한항공의 이미지에 크나큰 타격을 입혔다. 결국 부친 조양호 회장이 직접 나서 대국민 사과를 했고, 조 전 부사장은 그룹 내 모든 직함에서 내려와야 했다. 또 법원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이들 기업들은 인수·합병(M&A) 과정이나 실적부진 등 그룹 경영활동의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오너의 부재’를 언급했다. 오너가 경영 일선에 있었다면 좀 더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 위기를 타개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주장을 반대로 말하면 오너가 개인적인 범죄 혐의를 저지르는 바람에 경영 공백이 생겨 회사 발전의 발목을 잡았다는 뜻 아니냐”며 “그 정도 해사 행위라면 회사에서 오히려 해임안이라도 건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오너 리스크는 계속된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 설립된 지 1년도 되지 않은 두 재단이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을 상대로 774억여 원의 기부금을 모아 논란이 되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은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 씨의 사업 창구이자 사금고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공시한 출연금 내역에 따르면, 미르재단은 30개사에서 486억 원, K스포츠는 49개사 288억 원 등을 지원받았다. 이 중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생명·화재 등 계열사를 통해 총 204억 원을 기부해 재계 1위답게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현대차그룹이 128억 원으로 2위를 기록했고, SK그룹이 111억 원, LG그룹 78억 원, 포스코 49억 원, 롯데그룹 45억 원, GS그룹 42억 원 등으로 뒤를 이었다.
특히 모금 과정에서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 초청으로 열린 대기업 총수 오찬이 끝나고 박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 비공개 독대를 했는데, 그 직후 기업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기부했다는 것이다. 이에 검찰은 이들 총수들이 박 대통령과 단독으로 만나 기업의 ‘민원’을 전달했는지, 또 거액의 출연금이 ‘대가성’을 띠는지 수사를 진행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태원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그룹 총수들을 소환해 참고인 조사를 벌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들 총수 8명은 다음달 열리는 국회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증인 출석을 예고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기업들이 임원인사나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 등 본업에 집중 못 하고 청문회 준비에 내몰려야 하는 데다, 기업 총수들이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와 ‘공개망신’을 당하면 기업 대외신인도에 좋지 않아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검찰의 수사에서도 나왔듯 대기업들은 최순실 씨와 정부에게 기부금을 출연할 것을 강요당한, 어디까지나 ‘피해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재계 관계자는 “청와대 요구에 따라 돈을 낸 것은 사실이겠으나, 일부 그룹들의 경우 특혜를 받는 등 정경유착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권으로부터 특혜를 받을 것을 기대하고 대기업들이 돈을 준 것이 아니겠느냐”며 “더구나 그 돈은 오너의 개인돈이 아니다. 회사의 돈이다. 결국 소비자들을 위해 쓰여야 할 돈 수십, 수백억 원을 최순실 씨에게 건넨 것이다. 그런데 왜 피해자 코스프레(행세)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어찌됐든 최순실 씨의 재단에 계열사별로 기금 출연 결정을 내린 것은 그룹의 총수들이다. 각 계열사마다 사장이 있는데 그룹 총수가 일괄적으로 출연을 지시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재벌에게 ‘그룹 회장’이라는 개념을 인정해주는 한국의 인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며 “향후 특검 수사 결과에 따라 대기업들의 오너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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