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 지시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난 적이 있다.”
‘비선실세’ 최순실 씨 측근으로 ‘문화계 황태자’로 불린 차은택 씨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내놓은 진술이다. 그동안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차은택이 누군지 모른다”고 발뺌했는데,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자, “만난 적은 있다”면서도 “여전히 모르는 사이”라고 말을 바꿨다. 일부 언론들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관련된 사실관계를 검찰에서 확인해야 한다”며 각종 의혹들을 제기하고 있다.
구속 기소된 차 씨의 변호인 김종민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2014년 6~7월쯤, 차은택 씨가 청와대 비서실장 공관에서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과 김 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정성근 문체부 장관 내정자를 만났다”며 이는 최순실 씨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최 씨가 차 씨에게 ‘청와대 비서실장 공관으로 가라’고 해서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을 만났다는 것인데, 차 씨는 김기춘 전 실장과 10분가량 면담을 했다. 시간이 짧았던 만큼 청탁 등은 오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김 변호사 역시 모임 성격을 ‘인사하는 자리 정도’라고 설명했다.
“차은택이 누군지 모른다”고 일관하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말을 바꿔 “대통령의 지시로 차은택 씨를 만난 적은 있다”고 설명했다.
김 전 실장은 채널A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정부의 기조인 문화융성, 광고 이런 점에 관심이 많은 차은택이라는 사람을 만나보라고 해서 공관으로 불렀다”며 “이를 대통령에게 나중에 ‘만나봤다’고 보고했으며, 그 이후로 차 씨와 연락이 없었고, 그 사람이 하는 사업이나 일에 관여하거나 지원한 일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그러면서 “만난 적은 있지만, 여전히 모르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조심스레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최 씨의 존재를 알고, 간접적으로 전횡을 용인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는 상황.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김 전 실장이 최 씨의 ‘힘’을 알게 된 뒤 최 씨의 전횡을 용인하면서도 나중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직접 만나지 않고 철저히 3인방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의사를 확인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김기춘 개입설을 주장한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아직까지 나온 의혹들만 보면, 범죄 혐의가 없어 보인다’고 평가가 지배적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언론에 나온 김 전 실장의 주장이 맞다면 그는 ‘대통령 지시로 업무상’ 차 씨를 한 번 만난 게 전부고, 이후 관여한 바 없다면 법적 책임이 없다”며 “대통령의 지시를 강조한 것 자체가 스스로 나서서 챙기지 않았다는, 적극성이 없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검찰 역시 그동안 김 전 실장 수사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입장을 견지해 왔다. 김 전 실장이 최 씨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관련해 범죄 사실에 관여한 정황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게 없기 때문. 그래서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줄곧 “김 전 실장과 관련해 특별히 드러난 혐의가 없고 소환도 계획돼 있지 않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차은택-김기춘 비서실장 만남과 관련해,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하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정호성 전 비서관 녹취 파일에 박 대통령이 최순실과의 관계에 상당히 의존했다는 얘기가 들어있다는 게 사실 아니냐”고 반문하며 “김기춘 전 비서실장까지 만나게 했다는 것은 이번 범죄 혐의 공모에 있어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만큼 깊숙이 관여했는지를 보여주는 ‘제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 역시 김 전 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사실 관계 확인은 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남윤하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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