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유탄을 맞았다고 느낄 수 있다. 유탄의 발원지는 ‘최순실’이다. 삼성은 최순실-정유라 모녀의 독일 체류 및 승마 훈련 명분으로 35억 원을 현지 최 씨 계좌로 송금했다. 송금의 주체가 회사 명의인지, 삼성 임원 개인 명의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송금의 주체도 중요하다. 삼성 미래전략실 2인자인 장충기 사장과 김 아무개 전무가 검찰에 출두한 것으로 미루어 미래전략실이 주체인 듯하다. 삼성전자 소속의 박상진 사장과 황 아무개 전무는 대한승마협회 회장과 부회장 자격으로 검찰에 출두했다.
삼성 측은 대한승마협회 차원의 현지 선수 훈련 목적임을 밝히고 있으나 협회 명의의 송금이 아니기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건은 전경련이 앞장선 미르재단, K스포츠 재단 자금 출연과는 성격을 명확히 달리한다.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은 당초 두 재단 설립은 자신의 기획과 아이디어라고 했으나 막상 검찰 조사에서는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지시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전경련과 삼성 간의 실제적인 관계로 유추해 볼 때, 두 재단 설립 과정에 삼성이 회원사의 일원으로서 제한된 역할만 했는지는 의문이다. 향후 특검을 통해 새로운 변수가 등장할 지도 관심이다.
35억 원 송금 건이 불거지면서 자연스럽게, 삼성이 현직 대통령의 배후 비선으로 드러난 최순실 모녀를 적극적으로 접촉한 배경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의 직계 3세 지배구조의 완성이라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구체적으로는 지난해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개입과 그 합법성 여부다.
국민연금은 합병안에 문제가 제기된 2015년 6월 1일 이후에 삼성물산 주식 매입에 나서 지분율을 9.79%에서 10.15%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삼성물산의 주주총회 합병 승인 사흘 전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장은 이재용 부회장을 만났다. 홍완선 본부장은 박근혜 정부의 실세인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의 대구고 15회 동기로 알려지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박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간의 커넥션이 회자되는 이유는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때문이다.
검찰 수사의 관건은 대통령의 직접 지시가 있었는지, 최순실 씨에게 송금한 게 이재용 경영승계에 대한 대가성 여부다. 사실, 삼성물산과 제일합병은 당시에도 사회적인 논란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혼신을 다한 삼성의 노력 끝에 합법적으로 합병이 통과되면서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지배 구조를 완성하고 순환출자 고리 구조의 삼성그룹 경영권을 장악했다.
합병이 순탄하게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양사 간 합병 비율을 문제 삼아 합병 반대를 선언했다. 엘리엇의 반대 입장은 해외 연기금 펀드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문제였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회원사 중심의 국내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합병 찬성 설득 작업에 앞장섰다. 황영기 회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멘토이면서 경영 가정교사이기도 하다. 삼성 미래전략실의 ‘넘버2’ 장충기 사장이 한화그룹에 찬성 협조 요청을 했음에도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투자자들의 손실을 이유로 반대했다.
삼성물산 경영진은 노심초사했고, 직원들은 불안해했다. 통상적으로 합병되면 구조조정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합병 찬성을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녔다. 주주명부와 합병 동의서가 직원들에게 배포되었다.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었다. 지방 거주 주주들에게는 해당 지역 출신 직원들이 출장을 갔다. 서울은 주주의 거주지와 가까운 직원들이 담당했다.
합병안은 통과되었다. 합병 이후 직원들의 우려대로 곧이어 대규모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삼성물산은 건설부문(플랜트 포함)을 중심으로 120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특히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이 2016년 2월 국회를 통과하자, 발효 적용이 두려웠던 직원들은 명퇴금을 챙기기 위해서 사직서를 내야만 했다. 지금도 급여 50%만 지급되는 강제휴직 6개월제가 시행 중에 있다. 직원들에게 삼성맨으로서의 자긍심이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다.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를 불러온 ‘최순실 게이트’ 또는 ‘박근혜 게이트’는, 이미 끝난 것으로 믿었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불이 옮겨 붙으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직계 3세 경영지배 전 과정이 드러나고 있다. 한편으로는 최순실 씨가 매개체가 되어 삼성이 키플레이어로 등장하는 ‘박근혜-이재용 게이트’로 발전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2014년 7월 초 만난 한 언론사 경영진은, 삼성이 민법 중 상속법 개정을 위해 움직였다는 사실을 전해 주었다. 그로부터 두 달여 전 이건희 회장이 쓰러졌다. 이건희 회장이 회복 기미가 없자 삼성 수뇌부로선 상속, 즉 그룹 지배구조의 안정이 급선무였다. 문제는 50%에 이르는 상속법상 세액. 주식 현물 출자 및 분할 등의 방식이 있었으나 경영권 안정을 위협할 수 있었다. 삼성이 택한 방법은 사업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한 합병이었다.
삼성SDS의 상장, 비상장사인 삼성에버랜드를 상장사인 제일모직과 합병하는 방안이 급하게 추진되었다. 삼성에버랜드 대주주인 이재용 부회장이 합병사의 대주주가 되었다. 삼성물산은 삼성SDS와 삼성전자의 대주주다. 이러한 연속적인 합병의 최종 목적은 삼성전자 지분 확보였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물산을 통해 8조 원에 해당하는 삼성전자 지분 4%에 대해 간접적인 지배력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3.4%보다 많다.
국민연금의 양사 합병 개입 정황은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건과 더불어 대통령에 대한 민심 이반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동원, 수천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은 삼성의 편법 승계에 국민의 노후 자금이 털렸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삼성 역시 국민들로부터 지지 기반을 급격하게 상실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젊은 가입자들 상당수가 탈퇴를 거론하는 등 사회적 반발의 강도가 극심하고 대통령과 삼성그룹에 반감이 높아지고 있다. 국회에서 대통령을 탄핵하기로 결의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사정기관의 수사 결과에 따라 대통령에 이어 다음 타깃은 이재용 부회장에게로 향하고 있다. 지난 11월 19일 광화문 집회에서는 연단에서 ‘이재용 구속’ 구호가 나왔다.
현재 검찰 수사는 이재용 경영 승계의 핵심 기제가 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최순실 씨가 직접 관여했다는 팩트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검찰은 대통령의 직접 지시 여부, 대가성 여부에 수사 초점을 두고 있으나 대통령에 대한 대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삼성그룹이 매출 200조 원을 넘어서고 세계화(일명 글로벌리제이션)의 영향으로 국내를 벗어나 해외 중심의 투자가 잇따르면서, 과거 대기업 중심의 성장으로 하청업체나 관련 임직원들이 혜택을 보는 소위 ‘분수효과’가 사라졌다. 이울러 삼성의 사업과 국내 산업의 연관효과가 사라지면서 삼성이 글로벌 기업이지만 ‘국민기업’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경북 구미를 중심으로 정보통신 사업의 핵심인 휴대폰 제조 공장을 조성했으나 2010년 스마트폰 시대를 맞이하기 전 베트남으로 핵심 생산 라인을 이전했다. 삼성은 국내에서는 우수한 인력의 고졸 생산직 여성 인력을 충당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삼성전자는 2014년 스마트폰 케이스를 플라스틱에서 알루미늄으로 바꾸면서 대구 및 구미 소재의 기존 플라스틱 케이스 공급업체들을 배제시켰다. 이들은 도산했다. 반면 베트남 공장에는 수조 원의 돈을 들여 일본에서 장비를 들여와 투자했다. 그런 가운데, 삼성은 박근혜 정부 들어 대구·경북에만 생색내기용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두 군데나 운영했다.
‘갤럭시 노트7’ 폭발 사태는 국제적인 뉴스였다. 삼성이 글로벌 기업이고, 시장의 고객들이 세계인들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양사 합병에 불공정하게 개입한 것이 밝혀지면 엘리엇 등에 의해 한국 정부가 대규모 국제 손해배상 소송에도 휘말려 국제적인 이슈가 될 가능성이 있다. 삼성은 사업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합병을 진행했으나 사실상 경영권 지배구조를 위한 목적이었다는 사실이 정설로 밝혀지고 있다.
지난 1966년 박정희 정권과 삼성이 엮인 소위 ‘한비’ 사건으로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경영 은퇴를 선언했고 그의 둘째 아들 이창희는 구속되었다. 이번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 씨에 대한 불법적인 송금과 그룹 총수의 지배구조 완성을 위한 국민연금 동원 과정에서 불법이 밝혀지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가 무산될 수도 있다. 3대에 걸친 삼성 그룹 역사에서 최대의 위기다.
2016년 11월, 한국 현대사에서 유래가 없는 ‘일상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촛불 든 시민 세력이 등장했다. 5년 단임의 선출직 대통령이 자진 퇴진 또는 탄핵에 의해 물러날 수도 있고, 글로벌 기업 ‘삼성의 몰락’이 현실화 될 수도 있다.
심정택 ‘삼성의 몰락’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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