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을 이르면 12월 2일, 늦어도 12월 9일에 처리하겠다고 밝히면서 내년도 예산안 처리 일정이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내년도 예산안마저 집어삼킬 분위기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24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모든 불확실성을 줄이고 앞으로 정치일정이 예측 가능하도록 만들겠다”며 “빠르면 12월 2일, 늦어도 12월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 대통령 탄핵안이 표결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야 3당이 박 대통령 탄핵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고,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탄핵 시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이들이 나오고 있다. 탄핵안 가결을 위해서는 새누리당에서 29명이 찬성을 해야 하기 때문에 표결일까지 야당의 포섭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민주당이 탄핵안 표결일을 하필이면 예산안 법정기한인 12월 2일로 잡았다는 점이다. 국회법은 다음해 예산안을 그 전해 12월 2일까지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예산안은 여야 간 대립에 제때 처리된 날이 거의 없다. 김대중 정부 이후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15년간 예산이 처리 법정기한인 12월 2일에 처리된 날은 단 한 번도 없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 초기에는 아예 해를 넘겼다. 2013년과 2014년 예산안은 그해 1월 1일에서야 국회를 통과했다. 이처럼 매해 예산안 처리가 법정기한을 넘기자 2014년에 국회법을 개정(국회선진화법)하면서 예산안이 12월 2일에 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도록 하는 내용을 신설했다. 그 덕에 2015년과 2016년 예산안은 법정기한 안에 처리가 됐다.
하지만 올해는 최순실 게이트로 스텝이 엉켰다. 400조 원이 넘는 내년도 예산안은 여당과 야당이 최순실 씨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것에 의견의 일치를 봤지만 삭감된 예산을 놓고 치열한 물밑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여야는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 등 최순실 씨와 관련된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1700억여 원을 깎았다. 의원들은 이렇게 삭감된 1700억여 원의 예산을 자신의 지역구로 돌리기 위해 머리싸움 중이다. 이미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의원들은 삭감된 최순실 예산 중 300억 원을 지역구 예산으로 가져갔다.
예산안과 함께 처리해야 하는 세법 개정안도 여야 간 대립이 치열하다. 민주당은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최고 41%까지 끌어올리고, 수입금액 500억 원 초과 기업에 대한 법인세율을 25%로 인상하는 내용의 소득세법과 법인세법을 예산 부수 법안으로 지정해 놓은 상태다. 여당은 최근 경제 여건이나 법인세 인하라는 세계적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하고 있다.
경제계에서는 민주당이 박 대통령 탄핵안 표결일을 12월 2일과 9일로 밝힌 것은 예산안과 세법개정안 처리를 놓고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감안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여야 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12월 2일에는 정부가 짜놓은 예산안과 세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올라오게 된다. 야당 입장에서는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 탄핵안만 처리하고 예산안을 부결시키기는 야당의 정치적 부담이 크다.
이 때문에 경제계는 여야 간 예산안 합의가 이뤄지면 2일 탄핵안과 예산안을 동시에 처리하겠지만, 합의가 안 될 경우 예산안은 부결하고 탄핵안은 상정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9일을 명시한 것도 이런 경우에 대비해 탄핵안을 상정할 마지노선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야당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미리 마련해놓은 셈이다.
하지만 야당이 9일까지 탄핵안 처리하는데 전력을 쏟게 되면 예산안 처리는 안갯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예산안 처리는 다시 3년 만에 법정 기한을 넘기게 된다.
경제계 관계자는 “2일 예산안과 탄핵안이 동시 처리되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예산안이 언제 처리될지는 아무도 모르게 된다”며 “2일 이후에는 야당이 9일 탄핵안 처리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 뻔하기 때문에 예산안 처리는 물 건너가고, 탄핵안 처리 이후에는 정국이 탄핵 국면으로 바뀌면서 예산안 처리 일자 자체를 잡기도 어려워질 수 있다. 결국 최순실 게이트가 400조 원대 내년 국가 예산까지 좌지우지하는 셈이다”고 우려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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