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설립과 출연금 모금을 주도한 미르재단이 최대 출연기업인 SK하이닉스로부터 날인을 누락한 서류를 제출하고도 문화체육관광부의 설립허가를 받은 것으로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다. SK하이닉스는 미르재단 설립 전체 출연금 488억 원 중 단일 기업으론 가장 많은 68억 원을 출연했고 재단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러한 기업의 날인 누락은 중대한 하자 요인으로 꼽힌다.
관련 법령에 따르면 재단법인을 설립하기 위해선 발기인 전원이 날인한 정관과 창립총회 회의록이 구비서류로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검찰 공소장을 종합해 보면 SK하이닉스의 날인 누락은 빠듯한 설립 일정, 출연금의 무리한 증액, 갑작스런 재산 비율 수정 등 날림 설립 과정에서 비롯됐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경제수석 시절인 지난해 10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같은 달 하순 무렵 예정된 “리커창 중국 총리 방한에 맞춰 양국 문화재단 간에 양해각서(MOU)를 체결해야 하니 재단 설립을 서둘러라”는 지시를 받았다.
당초 재단 규모는 같은 달 21일 까지만 해도 삼성, 현대차, SK, LG, GS, 한화, 한진, 두산, CJ, 9개 그룹으로부터 300억 원 출연을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과 나흘만인 25일 안종범 전 수석은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 부회장에게 출연기업을 늘려 500억 원으로 증액하라고 지시했다.
안 전 수석의 지시를 받은 당시경제금융비선관인 최상목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출연 기업으로 전경련에 롯데, KT, 금호, 신세계, 아모레, 현대중공업, 포스코 등 7개 그룹을 추가하라고 했다. 여기에 전경련이 추가한 LS와 대림을 포함해 모두 16개 그룹 소속 30개 대기업이 출연을 하게 됐다.
재단 설립 허가 하루 전인 26일에도 청와대로부터 재단 설립과 관련 또 다른 변경 지시가 전경련에 내려졌다. 이날 이승철 부회장은 각 그룹사 관계자들을 불러 재산출연증서 등 서류를 제출받았다. 이후 전경련에서 준비한 정관, 출연기업 임원들이 재단 이사장 등을 추천한 것처럼 작성된 창립총회 회의록에 법인 인감 날인을 받았다.
하지만 이 역시도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검찰 공소장에는 미르재단 임직원을 면접하고 선발한 사람은 최순실 씨라고 적시돼 있다. 최 씨는 지난해 9월 말부터 10월 까지 재단에서 일할 임직원을 직접 면접을 본 후 선발했고 재단의 이름 까지 ‘미르’라고 지었다. 또한 김형수 연세대 교수를 이사장으로, 이성한 씨를 사무총장에 선임하는 등 임원진 명단, 조직표와 정관을 마련했다.
26일 안 전 수석은 최 차관을 통해 전경련 측에 갑자기 “재단법인 미르의 기본 재산과 보통재산 비율을 기존 9 대 1에서 2 대 8로 조정하라”고 지시했다. 이로 인해 전경련은 하루 내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19개 대기업들의 날인을 다시 받아야 했다.
이승철 부회장은 급히 정관과 창립총회 회의록 중 기본재산과 보통재산 비율 부분을 수정한 후 이미 날인한 회원사 관계자들에게 연락해 수정한 정관과 창립총회 회의록에 날인해 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기인이었던 SK하이닉스로부터 날인을 받지 못했다.
청와대에서 지시한 시한인 27일까지 설립 허가를 마치기 위해 다급해진 이 부회장은 하윤진 문화체육부 대중문화산업과 과장에게 연락해 법인설립허가 신청서류를 서울에서 접수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 과장은 같은 과 소속 직원 김 아무개 씨를 서울로 보내 전경련으로부터 신청서류를 접수받았다. 공무원이 민간으로부터 서류 접수를 받으러 출장을 가는 해괴한 상황이 벌어졌던 셈이다.
김 씨는 같은 날 오후 8시쯤 미르재단 설립허가를 기안했다. 문체부는 27일 오전 9시 36분 쯤 미르재단 설립을 허가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당시 미르재단 설립과 관련 제출 서류를 점검해 보니 날인이 빠짐없이 돼 있었다”며 “하지만 재산 변경과 관련해 발기인 참여기업들의 날인을 빠짐없이 받았는지는 따져보겠다”고 해명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당사는 검찰 수사결과를 존중한다. 미르재단설립과 관련한 전경련 요청 사항을 다 이행했다”며 “하지만 날인이 왜 빠졌는지에 대해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당사 때문에 488억 원짜리 재단의 설립 하자라는 지적에 대해선 매우 난처한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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