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공소장에서 제3자 뇌물죄 등 뇌물죄 혐의를 적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재벌에 면죄부를 주는 수순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법조계 일각에선 금품을 제공한 기업도 처벌하는 뇌물죄 대신 최순실 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갈죄 혐의를 적용할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다. 공갈죄를 적용할 경우 기업들은 피해자가 돼 처벌에서 빠져나갈 수 있어서 이 또한 논란이 예상된다.
검찰 공소장에는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모금 관련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강요 혐의에 최순실 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박근혜 대통령이 공모했다고 적시돼 있다.
두 재단에 돈을 건넨 16개 그룹은 안 전 수석, 박 대통령 요구에 불응하면 세무조사를 받거나 인허가 어려움 등 기업 활동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이 두려웠다고 출연 이유를 댔다. 이로 인해 16개 그룹에 속한 53개 계열사들이 미르재단에 488억, K스포츠에 288억 원을 출연했다. 검찰 두 재단에 돈은 낸 기업들을 피해 당사자로 규정한 셈이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뇌물죄 구성 요건인 ‘대가성’과 관련한 여러 정황들이 드러남에도 제3자 뇌물죄 등 뇌물죄와 관련한 언급은 공소장에서 찾아볼 수 없다. 검찰은 아직 이들 기업에 대해 대가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난 13일 검찰에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된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과 비공개 면담(독대)을 전후해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사면 논의가 있었다. 이후 미르·K스포츠 재단에 13억 원의 출연금을 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일각에선 이를 대가성 인정 사례로 보고 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손경식 회장이 증뢰(뇌물 제공)죄 처벌을 각오한 진술로 해석된다”며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재임 시절 ‘대통령 뜻’이라며 이미경 부회장의 경영일선 퇴진, 손 회장에게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강요했다는 녹취록도 등장했다. 사실대로라면 검찰 조사에서 손 회장이 작심한 진술로 보인다”고 말했다.
CJ그룹은 “손 회장이 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에 대해 확인하기 어렵다. 그룹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인 진술로 안다”고 설명했다.
삼성그룹도 미르·K스포츠 재단에만 204억 원을 출연했고 최 씨와 딸 정유라 씨가 독일에 설립한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와 컨설팅 계약을 맺고 35억 원을냈다. 여기에 ‘승마협회 중장기 로드맵 186억 원’까지 포함하면 420억 원이 넘는다.
삼성이 최순실 씨의 코레스포츠로 35억 원을 보낸 건 지난해 9월쯤이다. 지난 7월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 승계 강화와 관련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성사시켜야 했다. 그런데 이전까지 합병을 반대했던 국민연금이 돌연 찬성표를 던지며 합병에 성공하면서 이번 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일에 대가성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은 “검찰 수사 중인 만큼 어떠한 입장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뇌물죄는 공무원(또는 중재인)이 자신의 직무와 관련해 뇌물을 받거나 제3자에게 받게 하는 경우 처벌한다. 최순실 씨 같은 일반인의 경우에도 박근혜 대통령과 안종범 전 수석과 같은 공무원과 공범의 형태로 뇌물죄의 주체가 될 수 있고 돈을 준 기업들도 증뢰(뇌물 제공)죄로 처벌을 받게 된다. 국가는 해당 금품을 몰수와 추징을 할 수 있다.
법조계에선 검찰의 최 씨와 안 전 수석 등에 대한 기소 내용을 미루어 앞으로 특검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뇌물죄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공갈죄를 적용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지대함에도 검찰의 기소내용만으로는 재판과정에서 형량이 턱없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수석을 직권남용·강요·강요미수·사기미수 등으로, 정호성 전 비서관을 공무상 비밀누설로 각각 구속기소 했다. 이들에 대한 공소장 범죄 사실에 ‘대통령과 공모했다’고 적시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됐다. 다만 대통령은 불소추 특권으로 인해 기소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재판을 받게 되더라도 퇴임 이후에나 가능하다.
검찰 기소 내용에 따라 재판에서 유죄를 확정할 경우 각각 형법상 직권남용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 강요죄는 5년 이하의 징역, 강요미수죄는 강요죄에 비해 형을 감경하도록 돼 있다. 사기미수죄는 최 씨 등이 외부 상황에 의해 행위를 중단함에 따라 사기죄와 같은 10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뇌물 수뢰액이 3000만 원 이상일 경우 특가법상 뇌물죄가 적용된다. 뇌물로 받은 금액이 1억 원을 넘으면 무기징역 또는 징역 10년 이상이 선고될 수 있다. 특경법상 공갈죄를 적용할 경우에도 최 씨와 안 전 수석의 이득액이 50억 원 이상일 경우 무기 또는 5 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앞으로 검찰의 공소장 변경이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 내용대로라면 검찰은 뇌물죄 등 기타 여죄 혐의 수사를 특검으로 미루려 하는 것 같다”며 “공소장 내용대로라면 재판 과정에서 입증도 쉽지 않으며 판례를 보더라도 법원으로부터 징역 1~2년의 형에 그칠 수 있다. 앞으로 특검의 몫으로 돌아가게 됐지만 특검이 특가법상 뇌물죄나 특경법상 공갈죄를 적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공갈죄 혐의를 적용하면 기업들이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게 되고 향후 정치자금 문제가 상당히 축소될 공산이 높다”며 “검찰이 특검에 수사내용을 인계할 예정인데 현재 공소장에 미르·K스포츠 재단에 돈을 낸 기업들을 피해를 본 당사자로 적시해 놓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갈죄 혐의를 적용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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