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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정두언 참회록17] MB정부의 민간인 사찰

사찰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더 사적이었고 비열했다…최악의 권력사유화가 벌어진 현장이었다

2016.11.22(Tue) 14:55:55

# 사찰업무의 체계도

 

이명박(MB) 정권 초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실은 나 정두언, 심지어 국정원장도 사찰했다. 공개된 것이 이 정도지 아마 훨씬 더 많은 사찰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다가 박영준이 기획조정비서관을 사직하고 청와대를 떠나면서 그 역할을 이영호 노동비서관이 맡았다. 실질적인 사찰업무를 기획조정비서관실에서 총리실의 공직윤리지원관실로 넘기면서 그 기능도 확대되었다. 물론 MB의 승인 내지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영호는 청와대 내에서 활극을 벌이는 일까지 있었는데도 MB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주의 조치로 끝내 버렸다. 

 

청와대에서 활극을 벌인 비서관에게도 MB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주의 조치로 끝냈다. 사진은 당시 조선일보 관련 보도.


이름은 계속 바뀌었지만 옛날부터 총리실에는 사정·감찰 기능이 있었다. 내가 총리실에 근무할 때는 이름이 제4조정관실이었다. 사회정화위원회가 생기면서 사회정화위원회를 총리실 차원에서 지원한다며 만든 것이 제4조정관실이었다. 검찰, 경찰, 국세청에서 인력을 파견 받아 주로 명절에 집중적으로 공직감찰을 한다. 이명박 정권 때 그것을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고 이름을 바꾸면서 청와대 직할 체제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총리실 내부조직인데, 청와대 지휘를 받는, 굉장히 이상한 체제가 가동됐다. 권력을 사유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당시 체제가 이렇게 바뀌어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때문에 이런 해프닝도 있었다. 내 초등학교 동창생의 매제가 경찰인데 총리실로 가고 싶다고 해서 가능한지 알아본 적이 있었다.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최시중이 그 얘기를 듣고 굉장히 화를 냈다고 한다. 총리실 쪽으로부터 어렵다는 답을 듣고서는 나는 총리실에서 그런 기능을 하는 줄 모르고, 그에게 “왜 거기를 가려고 하나, 별 볼 일 없는 곳인데”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하지만 최시중은 내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가동되는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총리실 사정라인에 내 사람을 심으려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와 관련해 2013년 1월15일 YTN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최시중 전 위원장이 속한 향우회의 운영위원을 맡았던 김충곤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장이 지난 2010년 1월 최 전 위원장을 면담하고 작성한 문건입니다.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이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자기 사람을 심으려 한다고 말하자, 최 전 위원장이 격하게 반응한 뒤 자세한 내용을 다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에서 이루어진 사찰의 맥락을 살펴보면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실과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중심으로 움직였던, 권력을 사유화한 이너서클(Inner Circle)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사찰 컨트롤타워’라고나 할까. 사찰은 MB와 이상득의 권력을 배경 삼아 이루어졌다. 실제로 청와대 민정라인,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감사원, 국정원, 국세청 등 필요할 때마다 적절하게 기관들을 다 동원했다. 권력을 움직이는 이너서클이 개입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 정점에 박영준, 이영호 등이 있었고, 사실상 MB와 이상득은 아는 듯 모르는 듯하면서 사찰이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추측이 가능한 이유는 실제로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구체적인 사찰 사례들

 

대표적인 것이 박덕흠 새누리당 의원의 사례이다. 그는 당시 원화건설 회장이었는데 나와 정태근과 가깝게 지냈다. 박 의원이 사찰 대상이 된 이유는 나와 박 의원이 만나는 현장을 누군가 미행해서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박 의원이 운영하던 원화건설은 2009년 6월 18일 금탑산업훈장을 받는다. 통상적으로 산업훈장을 받으면 3년간 세무조사를 유예해준다. 그런데 훈장을 받은 지 나흘쯤 지났을 때 국세청 세무조사 팀이 원화건설을 덮쳤다. 정태근은 나중에야 박 의원으로부터 이 얘기를 들었다. 

 

그는 박 의원이 산업훈장을 받은 것을 축하하는 차원에서 그와 경기도 가평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 그런데 중간에 박덕흠이 그에게 “정 의원, 이런 일도 다 있네. 산업훈장 받고 와서 직원들이랑 폼 나게 회식했는데 3일 만에 덮쳐서 20억여 원을 추징당했어”라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도 머리칼이 곤두섰다. ‘​혹시 나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 의원도 “산업훈장을 받았는데 바로 세무조사가 들어온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이후 2012년 중반쯤인가. 선거에서 떨어진 뒤 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는 아내 곁을 지키던 정태근은 박 의원의 전화를 받았다. “검찰에서 ‘정태근 때문에 사찰을 받은 것이 맞느냐’는 확인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 의원도 사찰을 당했다는 것을 알았고 세무조사가 진행된 배경도 드러났다. 그때 총리실에서 사찰한 것으로 공개된 명단에는 남경필, 박덕흠과 함께 박세철 장훈학원 이사장의 이름도 들어있었다. 다른 이들이야 정치권 인사들이니 그렇다 해도 박세철이 들어간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나와 가까운 박재성과 친했다. 박재성, 정태근, 박세철이 같이 저녁 먹고 술 먹는 현장을 누군가 사찰한 후 박세철을 털면 박재성과 정태근을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사찰한 것으로 추측된다.

 

MB 정권은 권력을 비판하거나 눈엣가시인 존재들을 제압하기 위해 사찰을 했다. 여당 의원인 정태근(왼쪽), 남경필 의원도 사찰을 당했다. 사진=비즈한국DB

 

정태근이 아내 회사를 대상으로 사찰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때는 2009년이다. 사실상 박영준, 김주성의 지휘를 받는 청와대 소속 국정원 직원이 2008년에 사찰을 한 것이다. 정태근 아내의 회사와 관계된 업체들을 돌아다니면서 “​누가 전화해서 수주한 것 아니냐”​ 등을 캐물은 사실을 감지하면서 사찰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심지어 정태근의 아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인천세계도시축전 관련된 일을 했는데 거기에서 한 업체가 공무원과 짜고 돈을 과당 수수했다. 그것을 기화로 정태근의 아내가 다니는 회사도 연관된 게 아닌지 사찰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명박 정권의 사찰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더 사적이었고 비열했다. 지휘체계도 문란했다. 최악의 권력사유화가 벌어진 게 사찰 현장이었다. 심지어 박영준은 아무런 직함을 갖고 있지 않던 야인 시절에도 인사에 깊이 개입했다. 포스코 회장을 선정하는 과정에 박태준, 이구택 등 주요 인사들을 만나며 관여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누구의 지휘를 받아, 무엇 때문에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을 좌우했던 것일까.

 

이명박 정권의 사찰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더 사적이고 비열했다. 박영준은 야인일 때도 인사에 깊이 개입했다. 민간인 사찰을 보도한 한겨레 기사.


 

# 연찬회에서 터진 사찰 파동

 

그러다가 이른바 민간인 사찰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김종익 사건’이 터졌다. 곧 이어 남경필 의원이 이미 자신과 정태근도 사찰 받은 사실이 있다고 공개하면서 파문이 커지기 시작했다. 정태근은 외국에 나갈 일이 있었는데 출국 전 장다사로 비서관을 만났다. “이번에는 도저히 묵과하지 못한다. 한나라당 연찬회 시작 전에 어떻게 조치하는지 보겠다. 전에 내가 전화로 국정원 사찰 문제를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장다사로 비서관은 “사실은 그래서 그들보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엄하게 경고했다”고 말했다. 

 

MB를 비판, 풍자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린 김종익 NS한마음 대표(사진)는 국무총리실의 사찰을 당했다. 사진=비즈한국DB


나와 정태근은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결국 2010년 8월 31일 천안 지식경제부 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의원 연찬회에서 사찰 파동이 발생했다. 

 

나는 연찬회에서 사찰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정태근이 연찬회에서 사찰에 대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당연히 언론이 주목할 만한 주제였다. 의원연찬회 행태는 MB 정권 들어와 과거와 달리 형식적으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의원들 간의 난상토론이 의원연찬회의 메인 이벤트였다. 그러나 MB 정권 때는 토론을 못하게 하려고 그랬는지 첫째 날은 외부 강사를 초청해 강의를 듣고, 토요일인 다음 날 오전 3시간 정도 토론을 했다. 게다가 전날 밤 늦은 시간까지의 삼삼오오 회식 때문에 다들 지쳐 있는 데다 주말에 집에 갈 사람들은 이미 다 가버려 맥 빠진 토론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날은 중진 중의 중진인 이상득이 전날에 이어 초선의원들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 있었다. 마침 그의 옆에 앉은 한 여성 의원이 이상득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아부성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래저래 빈정이 상해 있던 나는 그 장면을 보고 화가 나서 토론 도중에 밖으로 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이것저것 물어보기에 “영감이 말이지, 왜 저 자리에 저렇게 버티고 앉아 계시나.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라고 했다. 나의 이 발언이 일을 키웠다.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찰파동이라고 대서특필했다. 2010년 당 연찬회에서 사찰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되자 청와대에서는 “자기들은 떳떳한가”라는 반론을 펴며 반격했다. 

 

‘조선일보’ 2010년 9월 1일자는 ‘사찰 피해자라고 말하지만 정권 초에는 이들도 권력자였다. 쏟아진 제보를 알아봤던 것뿐이다’라며 한 청와대 사정라인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했다. 발언을 접한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다음은 이날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내가 발언한 내용이다. 

 

오늘 아침에 한 조간신문을 보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치 청와대에 과거의 차지철이 다시 되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제 우리는 의원연찬회를 마치면서 이렇게 결의했다. 헌정질서와 의회질서를 바로 세우는 원칙 있는 민주주의 국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또 원칙과 상식, 대화와 타협, 소통과 화해로 구태는 단호히 배격하며 공정한 사회실현에 앞장서겠다고 결의했다. 그런데 바로 이날 청와대 고위관계자라는 일부 인사들이 국회와 여당을 부정하고 국회의원을 협박하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뭐라고 했는지 두 가지만 인용하겠다. 

 

지난 인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소장파들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가. 누구에게 검증 잘못의 책임을 묻는가라든가, 의원에 대한 사실 여부를 알아보는 일은 당연한 것이었다. 사찰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한 것이다. 당연했다는 것이다. 이를 불법사찰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다음 대목이 대단하다. 의원들이 과연 얼마나 깨끗하게 지냈는지 밝히겠다라고 하면서 부실인사, 부실검증의 책임을 의원들에게 떠넘기며 뒤집어씌우려 들지 않나, 또 사찰을 정당화하면서 마치 앞으로도 사찰을 계속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청와대 일부 인사들의 이러한 작태는 민심을 전달하려는 의원들의 자유로운 표현을 원칙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당·정·청 관계를 재정립해서 민심과 소통하려는 당의 노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당·정·청 관계를 다시 억압적이고 종속적인 관계로 끌고 가려는 의도라고 본다. 이런 식으로는 대등한 당·정·청 관계는 불가능한 것이고 국민과의 소통도 불가능해진다. 더구나 대통령이 공정사회 구현을 청와대부터 먼저 실천하라고 강조하고 있는 마당이다. 그런데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고위관계자라는 인사들이 대통령마저 무시하고 부정하면서 국회와 여당을 부정하고 협박하는 것은 실로 충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실장은 이 문제에 대해서 분명히 해명하고 발언자를 엄중 문책해야 한다. 만약 이에 상응하는 적절한 조치가 없을 경우에는 대통령실장도 같은 입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분명한 조치를 촉구한다. 참고로 저는 이번 내각인사의 추천은커녕 단 한 차례 의견도 요청 받은 적이 없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이 이런 식으로 국회의원들을 음해해도 되는 건지 참 기가 막힌다.

 

그러던 차에 당시 원내대표인 김무성이 중재를 한다며 저녁을 먹자고 나와 정태근, 남경필, 임태희, 원희룡(당시 사무총장), 이춘식 등을 덕수궁 옆 한 식당으로 불렀다. 이 자리에서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얘기를 하면서 이춘식에게 “​형, 맞잖아요?”​ 했고 “​응”​ 하고 동의하는 답변을 이끌어냈다. 결국 그 자리에서 있었던 사람들 모두가 ‘정두언 사찰 사건’의 증인이 된 셈이다.

 

 

# 다시 보는 사찰업무의 본질

 

이명박 정권에서 진행한 사찰의 목적은 지금까지 좌파세력을 발본색원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해왔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했다. 물론 좌파를 발본색원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난센스다. 권력을 잡았으면 화합을 해서 다 끌고 가야지, 좌파를 발본색원하겠다며 사찰을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사고에 바탕을 둔 구태의연한 발상이다. 그러나 그것도 시늉에 불과했으며 사실은 다른 짓을 하기 위한 구실이었다. 자신들이 국정을 마음대로 농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찰을 활용했던 것이다. 그것을 제일 잘 표현한 이가 이태규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이었다. 

 

2012. 3. 16. 이태규의 말을 참고삼아 트위터에 올린 글

‘철부지 불한당 같은 자들이 이념사냥을 구실로 권한을 얻고, 소지역주의를 활용해 신임까지 얻은 후 공권력을 사적으로 무단 사용하는 국정농단을 자행한 사건이 소위 총리실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사찰사건임. 근데 민간인사찰은 빙산의 일각.’

 

한마디로 MB 정권은 권력을 비판하거나 눈엣가시인 존재들을 제압하기 위해서 사찰을 했던 것이다. 또 자신들이 챙기는 이권과 인사 청탁을 들어주지 않는 기관장들에게 압박을 가하는 용도로 사찰을 활용하기도 했다. 사찰 중 가장 질이 안 좋은 것이 이권 청탁을 거절한 것에 대한 사찰이었다. 이 또한 많은 사례가 있다. 그중의 한 사례로, BC카드 최고위 인사가 지인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다. “하루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면서 전화가 왔는데 아무개 씨를 이사로 해달라고 했다. 내부적으로 인사가 이미 끝나서 못 하겠다고 했더니 다음날 지원관실에서 회사를 덮쳤다.” 당시 BC카드의 최대 주주는 우리은행이었고 우리은행은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2010년 8월 31일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사찰 문제가 거론되었다. 그날 오전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 사진=청와대 제공

 

그 중 압권은 ‘감사원 사건’이다. 그랜드레저코리아의 자회사가 세븐럭인데,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세븐럭 알짜 자리에 누구를 승진시켜 앉히라는 압력을 넣었다. 사장이 도저히 그렇게 못하겠다고 했더니 감사원 감사가 들어왔다. 그런데 감사 결과가 문제가 없다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원 감사를 다섯 차례나 되풀이했다. 그래도 아무 문제를 발견할 수 없자 감사원이 미적거린다고 생각했는지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감사원 핵심 인사를 미행시켰다. 감사원에서 신망을 얻고 있고 사무총장 유력 후보였던 핵심 인사는 이 일로 중도탈락했다. 나중에 그의 후임으로 온 사람은 권력의 온갖 청탁을 다 들어주었다고 들었다. 나는 그 후임자에게 “형, 감사원 그런 식으로 하면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해?” 라고 말한 적도 있다. 권력이 고분고분하지 않는 사람을 내쫓고 말랑말랑한 사람을 앉혀놓은 후 감사원을 좌지우지 한 것이다. 이런 일이 감사원에서만 일어났을까.

 

 

# 사찰의 최대 피해자 정태근

 

MB나 이상득은 내가 저러는 것은 그나마 이해가 가는데 왜 쟤까지 그러냐면서 정태근에게 불만이 많았다고 들었다. 박영준은 정태근이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되기까지는 자신도 나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감정이 겹쳤는지 정태근이 사찰의 메인 타깃이 됐다. 그래서 그의 부인이 다니는 회사가 주 사찰 대상이 된 것이다.  MB 정부 초창기 때부터 정태근 부인이 다니는 회사가 입찰하는 건마다 뒷조사를 했다. 검찰에서 사장을 두 차례나 영장 신청하여 모두 다 기각되었으나, 억지로 기소를 했고 재판에서 무죄가 나왔는데도 이어서 세무조사까지 했다. 종업원 80명 밖에 안 되는 회사에 20명의 세무조사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기간도 세 번이나 연장했다. 

 

나는 참다못해 하루는 이현동 국세청장을 찾아갔다. 정태근의 부인이 다니는 회사에 세무조사를 하지 말라고 하면 압력이 되니, 국세청 본청에서 종업원 80명 이하 회사에 세무조사 요원 20명을 동원한 사례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현동은 말을 못했다. 나는 자료를 줄 때까지 안 가겠다며 버텼다. 나는 그날 정몽준과 조선호텔에서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약속 시간까지 미루며 버텼다. 저녁 7시 30분 되니 이현동이 “실은 제가 오늘 생일이에요”라고 했다. 나는 할 수 없이 국세청을 나왔다. 

 

그런데 당시 권재진 법무부 장관의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권재진 법무장관이 임명될 때도 당내에 반발이 심했다. 권재진이 하루는 남경필에게 도와달라고 전화했다. 권재진을 만난 남경필은 정태근 부인이 다니는 회사 좀 그만 괴롭히도록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 이후에는 잠잠해졌다. 정태근의 부인은 오랜 기간 시달림을 당한 나머지 나중에 화병을 얻어 심장수술까지 했다. 앞서 보았듯이 정태근을 집중적으로 미행하다보니 박덕흠과 밥 먹는 현장이 나오자 박덕흠을 사찰했고, 기업하는 박세철이 나오니까 스폰서겠구나 해서 박세철을 사찰했다.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 민간인 사찰의 역풍

 

MB 정권의 사찰과 관련해 이름이 거론되는 사람은 굉장히 많다. 분야도 다양하다. 민간인 사찰 대상은 김종익이 대표적이고, 김제동 김미화 이런 사람들이 그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정말 기가 막혔던 것은 김제동, 김미화를 때마침 선거 때 사찰해서 선거를 망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점이다. 2010년 지방선거와 그에 앞서 벌어진 분당 재·보궐 선거에 악영향을 끼쳤고, 결국 지방선거에 참패하고, 강재섭 후보도 낙선했다. 하필이면 선거를 앞두고 이런 일을 벌이는 참으로 무지한 짓이었다.

 

하필 선거 때 김제동, 김미화를 사찰해 선거를 망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사진=비즈한국DB


사찰 문제가 공개적으로 불거진 것은 2010년이다. 그해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이겼다. 안 그래도 MB 정부에 대해 사람들의 불만이 상당히 쌓여 있는 상황이었다. 한나라당에서도 위기의식이 있었다. 그런데 사찰 사건이 터진 것이다. 사찰은 국가 공권력을 남용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기문란에 해당한다. 야당 내에서도 이미 정두언, 정태근을 어떻게 사찰했는지 정보를 듣고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평소 친분 있는 야당 의원이 정태근에게 전화를 걸어 사찰에 대해 더 할 얘기 없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여기서 야당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민간인 사찰은 큰 사건이다. 그때 야당에 이와 관련한 팀이 있었는데 박선숙이 팀장이었다. 자료 수집까지 해놓고도 물건을 만들지 못했다. 야당 입장에서는 크게 공세를 펼칠 만한 일이었는데, 그런 호재를 놔두고 왜 유야무야 넘어갔을까. 미스터리이다.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야당이 무능해서 중요한 어젠다에 대해서 무디어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검찰하고 무언가 거래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야당 의원들은 정태근을 만나면 “정 의원이 다 해버려서 야당이 할 게 없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정태근은 지금도 야당이 미적거린 막후에 무언가 있다고 보고 있다. 

정두언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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