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원소다. 원소는 머리가 좋고, 주변에 괜찮은 모사꾼도 많았다. 하지만 결정적일 때 머뭇거리거나 냉정한 판단을 하지 못해서 망했다. 안철수는 여전히 인기가 있는 편이지만, 어정쩡하게 있다가 여러 사람 속만 태우고 대업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글을 통해 삼국지의 등장인물이 실존인물과 만나 살아 움직인다. 날 서고 때론 치우쳤지만 사람들은 불편하기보다 도리어 시원하다며 열광한다.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김재욱 연구교수(46)는 3년 전 페이스북에 무심코 올린 글을 계기로 ‘삼국지 인물전’에 이어 최근에는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를 펴냈다. SNS는 확실한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지난 11월 14일 안암역 근처의 한 카페에서 김재욱 씨를 만났다.
―페이스북에 쓴 글이 ‘삼국지 인물전’의 모태가 되었다고 들었다.
“2013년 당시 내가 있던 연구소는 1년 계약을 하고 연봉을 받으면 그 대가로 논문 한 편을 써야 했다. 그런데 연임이 되는 바람에 논문이 2편이나 밀려있었다. 글도 잘 안 써지고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다. 그래서 술 마신 김에 휴대전화로 짧게 ‘안철수는 원소 같고 누구는 누구 같다’는 글을 썼다. 그리고 자고 일어났는데 친구 신청이 엄청나게 밀려있는 거다. 그렇게 300명이었던 페이스북 친구가 두 달 사이에 2000명으로 늘어나고 얼마 안 가서 4000명이 되었다. 정말 초기엔 눈 깜짝할 사이에 페이스북 친구가 늘었다.“
―왜 사람들이 유명인도 아닌 본인의 글에 열광했을까.
“당시는 야권이 굉장히 지지부진할 때였다. 답답함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페이스북엔 아무래도 야권 지지가 많은 편인데 글을 세게 쓰니까 그들 성향에 어필할 수 있었던 거 같다. 또 많은 칼럼니스트나 작가들이 삼국지를 통해서 상황을 설명하지만, 소설 속 인물을 특정 인물과 일대일로 맞추는 것은 처음이기도 했다. 본인도 한 번쯤 한 생각을 누군가가 표현해주니까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신기했던 거 아닐까.”
―페이스북을 통해 조국 교수, 소설가 이외수 등 유명인들과도 교류가 많은 것 같다.
“감사하게도 그분들이 내 글을 보시고 친구신청을 해 주셨다. 당시 나는 조국 선생님을 삼국지의 ‘조자룡’과 비교하면서 ‘(조국 교수는) 싸울 만한 필드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소에 앉아있는 것이지 물을 만나면 굉장한 전투력을 발휘할 사람’이라고 썼다. 진보의 끈을 계속 놓고 있지 않지만, 사회적 위치가 있어서 말을 아끼고 있다고 느꼈다. 조국 선생님이 나를 좋게 보셨다면 ‘내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놈이 있구나!’ 싶어서 같다. 이외수 선생님은 직접 찾아뵙고 그분 서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눴다. 이런 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조국 선생님 표현대로 ‘SNS의 신묘함’ 같다.”
―결국, 페이스북에 쓴 글로 ‘삼국지 인물전’,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라는 책까지 출간하게 되었다.
“원래 그냥 페이스북에만 연재하고 그만두려고 했다. 그런데 조국 선생님께서 ‘책 내라’고 하시더라.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정말 교수님께서 소개해주신 출판사와 계약하게 되었다. 선생님께 추천사를 써 달라고 했더니 ‘내가 출연하는 책에 어떻게 그런 글을 쓰느냐’고 민망해 하시더라 (웃음). 반면 표창원 의원님은 추천사를 써 달라고 했더니 ‘하지 뭐’라며 바로 써 주셨다. 두 분 성향이 되게 다르다.”
―왜 삼국지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삼국지를 읽었다. 그렇게 열아홉 살 때까지 10번 정도 읽었다. 특별히 20대 이후에 애정을 가지고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잊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게임, 칼럼 등을 통해 삼국지라는 콘텐츠를 늘 곁에 두었기 때문이다. 특히 히스토리 모드로 게임을 하면서 내용을 되새긴 것이 도움 되었다. 물론 세부적인 내용까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특정 인물을 쓸 때 그 부분만 찾아서 맞추어보곤 했다. 내게 삼국지는 얼마인지도 모르고 주머니 속에 넣어 놓은, 돈처럼 필요하다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존재다.”
―인물을 일대일 비교하는 콘텐츠는 비난의 소지가 많을 거 같다. 게다가 표현도 직설적이다.
“맞다. 가장 욕 많이 먹었을 때가 문재인 의원을 삼국지 인물과 엮어 팟캐스트 방송을 했을 때다. 나는 문재인 씨를 삼국지 인물 중 ‘유표’로 봤다. 입장이 어정쩡한 점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표는 이런 사람이니 당신은 이를 넘어섰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지자들은 유비나 조조도 아니고 급도 안 되는 유표와 비교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더라. 물론 사람마다 자기만의 삼국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는 한다. 그러나 삼국지 인물과 달리 현대의 인물은 살아있다. 앞으로 그 사람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나는 다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당신이 뭘 아느냐고 화낼 수는 있지만,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삼국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누군가.
“서서(徐庶)다. 서서는 본래 유비 진영에서 활약하던 사람이었고 서서의 어머니는 반대편인 조조 진영에 속해 있었다. 그의 활약상을 접한 조조 진영은 서서를 끌어들이기 위해 서서 어머니의 편지를 위조한다. 결국, 서서는 자기 뜻을 펼치지 못하고 조조 진영으로 가 일생을 마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어떻게 위조된 편지인지 모를 수 있느냐며 끝내 자살한다. 비운의 캐릭터다. 그런데 폼 나지 않나. 이 사람은 무술도 잘해서 협객 노릇을 하고 다녔다. (좋아하는 이유가) 진짜 단순하다.”
―서서를 실존인물 중 누구와 비교했나.
“‘삼국지 인물전’에서 손석희 JTBC 사장과 연결했다. 유비 편이었던 서서가 어떤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나쁜 쪽으로 분류할 수 있는 조조 진영으로 가게 되지 않나. 손석희라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종편이라는 게 태생 자체가 비정상적인 매체이지 않나. 물론 나는 그걸 돌아섰다고 비난하고 싶지 않다. 주어진 여건 안에서 최선을 다했을 거로 생각하고 지금 그곳에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종편에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서서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정치’를 주제로 한 책을 쓸 생각이 있나.
“없다. 내 길이 아닌 거 같다. (정치에 대해) 짧은 소감 정도는 쓰겠지만, 분석이나 예측 하는 글은 쓰지 않을 거다. 사실 못 쓴다. 그런 글은 페이스북을 통해 늘 통찰력을 주시는 권순욱 씨처럼 이에 대해 나보다 많이 아는 분이나, 정치 쪽 경험 있는 분이 쓰는 게 맞다.”
―페이스북에 정치적 상황을 사자성어로 표현해 올리곤 한다. 이번 대규모 촛불집회를 사자성어로 표현한다면.
“‘이심전심(以心傳心)’. 실제로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상당히 많이 받았다. 집회 참여자나 불참자나 마음은 똑같다는 거다. 각자의 사정으로 나오진 못했지만, 마음만큼은 광화문에 있다는 작은 증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참여하지 못하신 분들은 상당히 미안해하신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당신의 마음을 안다고 해 주니 호응해 주신 거 같다.”
―요즘 청년들은 정치 대한 관심이나 열정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학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운동권 세대인 유명인들이 종종 청년들에게 ‘왜 저항하지 않느냐, 제발 분노하라’고 뭐라 하는데 나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좀 가만히 있었으면 한다. 젊은 사람들도 정치에 관심 있고 분노도 한다. 그런데 생존을 위해서 취업하고 아르바이트해야 하는데 언제 나가 싸우나. 그 와중에 이렇게 (광화문에 나와서) 싸워준 거다. 그러면 어른으로서 우리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고맙다’는 한 마디밖에 없다. 사회로 진출할 길을 기득권들이 일부로 막은 건 아니지만, 사회를 진보시키지 못하는 데 일조하지 않았나. 지금 사회의 문제를 젊은 사람들이 불러왔나. 거기에 대해서는 책임도 안 지려고 하고 최소한 미안하다는 소리도 안 한다. 아니면 같이 싸우자고 하든가 비난만 한다. 되게 웃긴다는 생각을 한다. 꼰대다.”
―‘꼰대’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청년들에게 저항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처럼 상대방을 내리누르려는 사람이다. 나이와 상관없다. 20대라도 ‘네가 뭘 알아’라는 식으로 나오면 꼰대라고 본다. 명령하지 말고 위로도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한다. 지금 기성세대들이 할 일은 젊은 친구들이 많은 기회를 가자고 살아갈 수 있도록 본인들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다.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단 한 마디 보탤 것이 없다. 사회가 이렇게 부조리하고 엉망인데 미치지 않고 잘 살아주고 있다.”
박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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