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로부터 100m 앞, 그곳에서 영화 ‘은행나무침대’ 황장군(신현준 분)처럼 앉아 밤새고 싶었다. 그렇게 밤새 평화롭게 시위하고 싶었다. 시위는 요구 조건을 들어달라고 무리 지어 공개적인 장소에서 주장을 펼치는 행위다. 약 100만 명의 사람이 광장에 나왔다. 그들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사정으로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도 변화는 원하고 있다. 젊은층의 대통령 지지율이 0%라는 여론조사가 이를 방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국민들의 요구에 속 시원히 응답하지 않았다. 설마 현실도피 하며 꿀잠 자고 있는 건 아니겠지….
다치는 거 싫고, 피나는 거 싫고, 아픈 거 싫다. 웬만하면 고생스러운 것도 싫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약간의 고생은 감수하겠다고 다짐했다.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그동안 국민들 세금을 착복해 ‘헬조선’을 만든 세력의 죄가 밝혀지고 그들의 자산이 국고로 환수돼 국민들에게 보편적 복지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일단은 행정부 사람들이 마음 편히 숙면 취하지는 않길 바란다. ‘님들’ 때문에 이게 다 무슨 고생인지 보라고, 제발 마음 좀 불편하라고, 반성 좀 하라고 호소하고 싶다.
그래서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고, 새벽에 간헐적으로 구호를 외쳐 대통령의 잠을 깨우길 원했다. 물론 세월호 유가족들의 목숨을 건 진실 규명 투쟁에도 소시오패스처럼 대응했던 이들이니 그 정도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가능한 평화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사사건건 불편하게 만드는 일, 그것이 오래도록 지속돼야 승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황장군이 될 수 없었다. 도무지 갈 길이 없었다. 토요일에 광화문에서 열린 공식 집회가 끝난 뒤, 수만 명의 사람들은 광화문 시청 경복궁 등지를 그저 뱅뱅 돌 수밖에 없었다. 모든 길의 끝에는 경찰 버스가 있었다. 드넓은 ‘차벽’이었다. 경찰을 위시한 행정부가 그어놓은 선이었다. 그리고 그 선은 청와대로부터 1k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사법부가 그은 선에서부터 지나치게 전진한 곳이었다.
차벽을 넘어 청와대로 진격한다고 청와대가 별안간 항복해 시민들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은 적지만, 그러므로 꼭 넘어야만 하는 건 아니었지만, 게이트에 연루된 이들이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그러니까 공익보다 사익을 위해 공권력을 남용하는 것이 화가 났다. 아직도 그들에게 공권력을 부릴 자격이 남아있다니.
시민들은 답답함과 분노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벽처럼 첩첩이 길을 막은 버스에 꽃이 피어났다. 꽃 모양부터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문구까지, 엄청나게 많은 스티커가 차벽에 빼곡히 붙은 것이다. 하지만 밤 10시 무렵, 나는 의아한 광경을 목격했다. 수십 명의 시민들이 버스에 붙은 스티커를 떼고 있었다. 집에 와서 관련 뉴스를 보니 일부 언론이 ‘착하고 성숙한’ 시민들을 칭송하고 있었다.
사태를 파악하니 스티커를 떼는 행동에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남의 시선이나 평가를 의식한 강박이자 내재된 억압처럼 느껴졌다. 일순간만 광장을 빌리고 그 뒤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온전하게 복원해내야 한다는 강박. 그것은 시위와 집회의 영향력마저 지워버리는 태도일 수 있다.
일부 언론은 차벽을 넘으려는 이를 규탄하며 끌어내린 시민들도 칭찬했다. 궁금했다. 단지 위험해보여서 그런 건가, 아니면 국가가 정해놓은 선은 절대로 넘으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인가. 전자의 경우라면, 낮은 포복으로 경찰 버스 밑을 천천히 기어서 안전하게 통과하면 물리적 충돌을 최소화 할 수 있으니 괜찮겠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기어서 차벽 너머에 도달하고, 평화롭게 행진하다 청와대 앞에 평화롭게 둘러앉아 ‘아이엠그라운드 자기소개 하기’ 하고, 각자 바라는 변화된 대한민국의 구체적 상에 대해 토론도 하고(그러니까 지금 대통령만 내려오게 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지금의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필요를 기반에 두고), 심심하면 영화 ‘아수라’를 단체 관람하며 “박XX 밖으로 나와!(feat.한도경)” 드립도 치는, 그 모든 과정을 평화롭게 온라인 생중계 하며 댓글로 소통하는 것을 상상해본다. 경찰 버스 자리에 모두 푸드트럭이 들어섰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묵, 닭꼬치, 타코야끼, 케밥, 츄러스, 더치커피, 칵테일 등 다채로운 음식을 파는 푸드트럭에서 음식 사들고 평화롭게 산책하고 워크숍 좀 하다가 내려오면 안 되나.
‘거기까지만 까불라’고 기득권이 그어놓은 선을 지키며 사는 건 사육장에 갇혀 사는 개돼지가 된 기분이기에, 자꾸 그 너머를 상상하게 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상상에 동참하면 좋겠다. 동참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선을 넘고자 하는 이들을 같은 시민끼리 저지하지는 않길 바란다. 그 공간이 위험해보이면 자리를 뜨면 되는 것 아닌가.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각자가 즐길 수 있는 만큼만 참여하다가 귀가하면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기를. 무엇보다 우리가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희망한다.
지금은 ‘질서’가 점유했던 위치에 ‘혼란’을 놓아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어찌됐든 변화는 그동안의 질서(라고 믿었던 것)를 일부라도 무너뜨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변화를 원해서 모였던 것 아닌가? 국가가 변화를 거부해서 싸우는 것 아닌가? 근데 ‘국가가 허락한 집회’만 하며 질서정연하게 국가와 싸우자고? 지금 ‘국가폭력’ 대 ‘시민연대’, ‘힘 대 힘’으로 겨루고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국가가 인정한 ‘개념국민’이 되어봤자 좋은 것은 누구인가? 왜 먼저 져주려 하는가? 져주면 그쪽에서 고마워하는가? 그냥 호구로 볼 뿐 아닌가?
이런 질문에 대해 토론하며 모두 함께 민주주의를 심화 학습하면 좋겠다. 그동안 기득권이 공교육과 언론을 통해 주입한 규범을 하나하나 의심해보는 거다. 즉 호구는 되지 말자는 것. 상대가 엄청난 ‘선빵’을 날렸는데, 거의 강냉이가 우수수 떨어질 정도의 강력한 펀치였는데, 아무 조치 없이 부러진 이 드러내며 상대에게 실실 웃어 보인다면, ‘비폭력’보다는 ‘굴종’이란 말이 더 적합할 것 같으니까.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서윤 월간 ‘잉여’ 편집장(a.k.a 잉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