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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나들이]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뒷모습은 아름답다

꽃 피우고 바로 사그라지는 가을꽃, 이고들빼기

2016.11.21(Mon) 13:51:54

이고들빼기(국화과, 학명 Youngia denticulata)

 

떠날 때를 알고 지는 꽃과 단풍은 그래서 더욱 곱다. 처절한 아름다움이 있다. 늦가을에 피는 꽃이 그러하고 붉게 물든 홍자만엽 단풍 또한 그러하다. 기나긴 봄과 여름의 햇볕 두고 왜 늦가을에 꽃을 피워 열매 맺고 눈발 속에 표표히 사라져가야만 하는가? 

자연의 섭리요 숙명적 여정이지만, 노루 꼬리보다 짧은 가을 햇볕 속에 환한 미소로 피어나는 가을꽃을 볼 적마다 섬뜩한 순명의 아름다움 속에 애잔함도 함께 배어난다.

 

짧아지는 가을 햇살 아래 떠날 때를 알기에 야위고 시들어가면서도 추하게 버티고 미루지 않고 꽃대 밀어 올리고 바로 사그라지는 가을꽃, 이고들빼기를 만났다. 다른 가을꽃들은 꽃이 피면 그래도 일정 기간을 꽃이 핀 채로 머물다 시드는데, 이고들빼기는 나팔꽃처럼 하루 피었다가 다음 차례 꽃망울에 햇볕 자리를 내어주고 다음 날 바로 고개 숙여 사그라져 간다.

 

대자연 속의 모든 생명체, 동물 세계의 맹수도 초목의 꽃과 단풍도 후손을 위해 머무를 때와 떠날 때를 안다. 흐름과 때를 모르며 주제넘게 숙명적 흐름을 거역하고 버티며 안달하는 유일한 종이 아마도 호모사피엔스가 아닌가 싶다. 

 

청량한 가을바람에 하늘은 맑고 높아만 간다. 무성하고 푸르렀던 초목의 이파리들도 한 해의 삶을 마무리하고 단풍 빛에 물들어 간다. 울긋불긋 형형색색의 빛깔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단풍 물결이 산천을 뒤덮어 가는 늦가을에 아직도 꽃을 피우는 이고들빼기가 처연하다.

 

봄철에 꽃이 피는 고들빼기는 매우 낯익은 이름이다. 그러나 낙엽 지는 가을에 꽃이 피는 이고들빼기는 우리 주변 곳곳에 흔히 자라지만, 이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가을에 이 꽃을 보면 왠지 안쓰럽고 미안한 감마저 든다.

 


왜 그러한가는 모르지만, 가을에 피는 꽃을 보노라면 꽃이 곱고 화사할지라도 봄, 여름에 피는 꽃을 만날 때와는 달리 무언가 애잔한 마음이 일기도 한다. 활짝 핀 꽃에서는 우수에 젖은 외로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가슴 한구석에는 애처롭고 안타까움의 여운이 남는 까닭은 무엇일까? 풀꽃은 꽃이 져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고 하지 않았는가? 봄에 피는 꽃이나 가을에 피는 꽃이나 모두가 지는 것은 마찬가지임에도. 

 

한해살이 삶이 끝나가는 늦가을에 꽃을 피워 올리는 애틋한 정성, 종족보존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싸늘한 가을 밤공기와 차가운 새벽이슬에 젖어 잎은 시들고 여위어 가면서도 꽃만큼은 화사하고 힘 있게 피워 올리는 이고들빼기의 안간힘이 눈물겹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다.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꽃답게 죽어 가고 헤어지자 손길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 지는 모습을 노래한 이형기 시인의 ‘낙화’가 새삼 떠오르는 가을날, 봄여름 햇살이 아닌 가을 햇살에 드러난 환한 이고들빼기의 꽃에서 슬픈 미소를 본다. 같은 한 줄기에서 피고 짐에도 피어오르는 꽃망울은 고개를 쳐들고, 꽃이 진 꽃송이는 고개를 숙이고 오늘 활짝 핀 꽃은 작별의 아픔을 감추며 애써 짓는 슬픈 미소처럼 보인다.

 

들이나 산속의 전국 어디에나 곳곳에 널려 있지만 주목받지 못한 꽃, 저물어 가는 늦가을에 잎이 시들시들 말라가면서도 꽃만큼은 화려하게 피워내는 꽃, 봄에 피는 고들빼기는 꽃이 져도 고개를 숙이지 아니한데 꽃 지고 나면 바로 고개 숙여 다음 꽃망울에 햇볕 자리를 내놓는 이고들빼기, 고들빼기와 달리 가을에 꽃이 피는 이고들빼기는 잎이 긴 타원형인데 고들빼기의 잎은 하트 모양이다. 줄기도 고들빼기는 굵고 갈색인데 이고들빼기는 가늘고 늘어지며 구부러진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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