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검찰 조사 불응을 놓고, 김수남 검찰총장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었다. ‘지속적인 압박’을 선택한 것. 취임 초기만 해도 ‘우병우와 친한 사이인 덕분에 됐다’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정권의 눈치를 봤던 김수남 검찰총장이지만, 국민 여론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청와대와 완전히 등을 지는 방향을 선택했다. 김 총장은 최근 대검 간부회의에서 “초심을 잃지 말고 원칙적인 수사를 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김 총장이 지난해 12월 취임식 때 언급한 사자성어가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김 총장은 한비자가 언급한 법불아귀(法不阿貴)를 취임식에서 강조했는데, 법은 신분이 귀한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는 뜻의 사자성어인 법불아귀를 인용한 것은 당시 작은 논란이 됐다. 법가를 강조한 한비가의 ‘법’은 국민을 위한 법이라기보다는 ‘군주’를 위한 법이었기 때문. 대검찰청 내부에서조차 “의도는 알겠지만, 한비자를 인용한 것은 박근혜 정권에 잘 보이겠다는 해석의 여지가 있음을 몰랐을 리 없다”는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 김수남 검찰총장의 ‘법불아귀’는 청와대를 겨누고 있는 모양새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최근 대검 간부회의에서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직접 조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많다”는 조언들이 쏟아지자, 검찰의 중립성과 수사 공정성을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특히 “최순실 관련 의혹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수사하고, 나온 의혹들은 철저히 확인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김 총장 개인으로서는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을 수사해야 하는 데다 헌정 사상 유례없는 대통령 조사라는 과제까지 떠안아 부담이 컸지만,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고 판단하자 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발언을 공개적으로 내놓고 있는 셈이다. 특히 박 대통령이 조사에 불응하는 가운데, 검찰 공소장의 ‘범죄 혐의’ 및 ‘공범 표현 정도’를 놓고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낼 만큼 강력한 ‘한 방’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던 상황.
이런 가운데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최순실 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 비서관 등 3명의 기소와 함께, 공개 수사결과 발표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범죄 사실을 국민 앞에 고스란히 공개해, 여론을 통해 압박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검찰은 20일 오전 11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최 씨의 조사 결과와 구체적인 혐의를 설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내일 직접 공소장을 공개하지는 않겠다, 필요하면 법원에서 받으라”며 직접 선을 넘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범죄 혐의를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은 카메라 없는 곳에서 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명백한 선전포고’라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주말 전, 최순실 씨 공소장 작성을 놓고 수사팀과 대검찰청 간에 엄청난 의견 조율이 오갔을 텐데, 이렇게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겠다며 공소장을 법원에서 받으라고 일부러 공을 법원으로 넘긴 문자를 기자들에게 돌린 것은 박 대통령의 혐의를 적시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아마 내일 공개 발표 때도 ‘최순실의 죄’인 것처럼 박 대통령의 혐의를 모두 지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검찰 관계자 역시 “이제 서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 왔다는 게 수사팀의 판단인 것 같다”며 “원래 공소장이라는 게 그렇지만 최 씨의 혐의를 더 나쁘게 표현하면서, 마지막에 ‘이 모든 범행 과정에는 박 대통령이 지시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이면 사실상 박 대통령을 범죄자로 몰아붙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아마도 박 대통령이 조사를 받지 않아 사실관계 확인이 조금 더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증거로만 봐도 큰 무리 없을 것 같다는 의례적인 설명도 포함될 가능성인 높다”고 예상했다.
실제 검찰은 박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정황들도 구체적으로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순실 씨가 K스포츠재단을 통해 롯데그룹에서 70억 원을 추가로 받아낸 것과 관련해 최 씨에게 제3자 뇌물수수 혐의 적용할 방침인데, 검찰은 이 과정에 박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나는 롯데의 추가 출연금 납부에 반대했는데 박 대통령이 꾸준히 지시했다”고 진술하며 검찰 수사에 핵심 진술을 내놨다. 안 전 수석은 “연초부터 꾸준히 반대했는데도 박 대통령이 내가 알 수 없는 경로로 출연을 추진했고 롯데 돈이 입금됐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렇게 되면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뇌물죄 공범 혐의 적용이 가능해진다는 게 법조계 내 중론이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수뢰 혐의를 받는 현직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정치적 셈이 빠른 검찰이 촛불 집회에서 확인된 국민 여론과 비박계 의원들의 분리 가능성이 높아진 여당 중심의 정치권 분위기까지 감안해서 ‘박 대통령 끌어내리기’에 동참한 것 같다”며 “채동욱 전 총장 등 말을 듣지 않았던 검찰총장을 끌어내렸던 선례가 있었던 만큼, 검찰과 청와대 간 갈등이 어떤 파장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고 평가했다.
남윤하 저널리스트
[핫클릭]
·
청와대 반격에 당황한 검찰 ‘최순실 공소장’으로 맞불?
· [최순실 게이트의 출구]
‘탄핵’ 없이 ‘하야’ 없다
·
검찰 내부에서 본 유영하 “좋은 얘기 들어본 적 없어”
· [최순실 게이트]
대규모 촛불집회, 검찰청으로 ‘튀나’
· [최순실 게이트]
제3자 뇌물 혐의 ‘만지작’…박근혜 유영하 변호사 선임
· [최순실 게이트]
최대 약점 정유라 들먹여도 ‘자물쇠’는 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