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정부 소유 16년 만에 ‘민영은행’으로 돌아가게 된 가운데 그간 우리은행에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던 예금보험공사의 권한 축소가 불가피하게 됐다.
우리은행과 예보는 지난 2000년 경영정상화 이행약정(MOU)를 체결해 분기별로 재무제표 외에도 인건비 등 다수의 비재무 항목까지 점검했다. 업계와 예보 안팎에 따르면, 이러한 점검 결과가 금융위원회와 산하 기구인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 보고되면서 우리은행 구조조정, 계열사 매각과 매각 방식 결정 등에 주요 참고 요인이 됐다.
예보는 우리은행 외에도 우리금융지주와 계열사였던 경남은행, 광주은행도 MOU 이행점검을 2014년까지 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금융지주가 2014년 해체돼 우리은행에 흡수합병됐고 경남은행과 광주은행도 매각되면서 3개 기관에 대한 이행점검을 중단했으며, 이번 우리은행 민영화 결정으로 올 4분기부터 우리은행에 대한 MOU 점검도 중단하게 됐다.
공적자금관리특별법상 MOU 체결은 부실금융기관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항목을 정하고 있지만, 우리은행이 경영정상화 된 지 상당 기간이 지났음에도 예보의 이행 점검은 올 3분기까지 계속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업계 안팎에선 우리은행을 통해 예보가 조직 존립근거를 찾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관계자는 “주요 대형 시중은행 중 정부 산하 공기업으로부터 MOU를 체결해 점검을 받는 곳은 우리은행이 유일했다”라며 “분기별로 경영상태, 수익성, 목표치 달성 여부뿐 아니라 인력과 인건비까지 통제받았다”라며 “우리은행은 노사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관치금융의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치부돼왔었다”라고 지적했다.
우리은행 전직 노조 간부는 “우리은행 직원들 사이에선 우리은행의 관리 감독이 예금보험공사의 존재 이유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예보 직원들이 MOU 점검을 할 때면 우리은행에 와서 한 달 가까이 상주하면서 샅샅이 점검하는 식이었다”며 “예보가 MOU 목표를 부여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인원감축 등이 이뤄져 숱한 행원들이 구조조정의 칼날 위에 서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예보는 1996년 금융기관이 파산 등으로 예금을 지급할 수 없는 경우 예금 지급 보장을 위해 설립됐다. 하지만 이러한 설립 취지와 달리 예보는 정부를 대신해 우리은행 외에도 공적자금이 투입된 서울보증보험, 수협은행 등 3개 금융기관의 지분을 소유하면서 MOU를 체결해 분기별로 점검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우리은행에 대한 점검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올 6월 말 기준 우리은행의 연결기준 자산은 308조 원에 달하지만 수협은행은 27조 원으로 우리은행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예보의 설립 목적인 예금자 보호를 볼 때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를 제외하면 그 역할에 회의적인 시각들이 있다”며 “예보가 조직의 존립 근거를 우리은행 관리 강화에 두는 것 아니냐는 관측들이 쏟아져 왔다. 예보는 설립 이후 인원이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예보는 설립 당시 인원이 50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올해 3분기 기준 경영공시를 보면 비정규직 포함 임직원수는 800여 명에 달한다.
금융위는 2010년, 2011년, 2012년, 2014년 등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우리은행 지분(30%)을 한 곳에 일괄 매각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지난해 3월과 5월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곽범국 예금보험공사 사장이 취임하면서 같은 해 7월 우리은행 지분 4~8%씩 쪼개 파는 방식과 주요 주주들이 이사회를 통해서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지난 13일 금융위는 동양생명(4%), 미래에셋자산운용(3.7%), 유진자산운용(4%), 키움증권(4%), 한국투자증권(4%), 한화생명(4%), IMM PE(6%) 등 7개 회사에 우리은행 지분 총 29.7%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매각 실패에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 하나가 지분을 인수해도 정부와 예보의 간섭을 받게 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팽배했었기 때문”이라며 “방식을 수정한 것이 이번 매각 성공의 주요인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오는 12월까지 과점 주주들로부터 대금 수령 및 주식 양도절차를 마무리함으로써 매각절차를 종결하고 우리은행에 대한 예보의 경영 간섭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12월 중순까지 매각절차 종결 즉시 예보와 우리은행의 경영정상화이행약정(MOU) 점검은 해지되며 과점 주주들로 구성된 이사들이 경영에 나서게 될 것”이라며 “이로 인해 예보의 일부 조직개편과 인력 재배치 등도 수반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 관계자는 “우리은행에 여전히 공적자금이 투입된 상태이고, 예보는 단일 주주로는 여전히 지분 21.38%를 가진 최대주주다. 주가가 상승하면 예보 지분을 매각해 공적 자금을 회수할 계획”이라며 “우리은행 이사회에 예보 소속 비상임이사 1명을 둘 계획인 것 외에 우리은행에 대한 경영 간섭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보는 우리은행에 대한 MOU 이행점검은 기업가치를 높여 국민 혈세가 투입된 공적자금의 효율적 회수 차원에서 진행했으며 올해부터 이행점검도 완화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예보 관계자는 “지난해 금융위가 우리은행의 매각 방식을 과점 주주 매각 방식으로 변경하면서 MOU 이행점검을 완화했다”며 “MOU 이행점검은 올해 들어 현장 점검은 지난해 연간 실적이 발표된 단 한 차례만 시행했고, 올해 1~3분기는 서면점검으로 대체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예보 관계자는 “우리은행에 대한 MOU 이행점검 중단으로 소폭 조직 개편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은행 점검에 투입되는 인력은 공사 전체로 본다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라며 “일각에서 제기된, 공사의 존립근거가 우리은행 점검에 있다는 지적은 억지다”라고 주장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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