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100만 명이 모인 11월 12일 촛불집회는 대한민국의 위기와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지금의 현상을 물리적 원리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다. 복잡한 세상을 꿰뚫어 보는 물리학은 우아하다[1]. 머리를 맑게 해주는 시원한 물리학의 해석을 통해 한국 사회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필자는 재료과학자로서 물질의 근본적인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물질에 관한 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물질에서 물리적 동질성을 가지는 구역을 ‘상(Phase)’이라고 한다. 하나의 상(phase)에서 다른 상으로 변화하는(Transition) 과정이 ‘상전이(Phase Transition)’ 현상이다. 차가운 얼음이 온도가 올라가면 녹아서 물이 되었다가 높은 온도에서 끓어 수증기로 변하는 현상이 이에 해당한다. 얼음이 녹는 온도를 ‘녹는점’, 물이 끓는 온도를 ‘끓는점’이라고 한다. 이렇듯 상이 변하는 기준점을 ‘임계값(Critical Value)’이라고 한다. 자석이 일정 온도가 되면 자성을 잃어버리는 ‘퀴리 온도’도 일종의 임계값이다.
액체에서 고체가 될 때 입자의 움직임이 굳어지는 일시적인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것을 ‘막힘 또는 체증(Jamming)’이라고 한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 발 디딜 틈이 없이 빼곡히 모인 상태다. 도로에 자동차가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교통 체증이 바로 이 현상이다. 과학자들은 시멘트나 곡물을 저장하는 장치인 사일로(Silo)에서 아래로 낸 구멍에 알갱이가 막히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이 문제를 연구했다. 하버드대 물리학 연구팀은 막힘의 원인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2].
첫째는 온도, 온도가 낮아지면 입자가 서로 가까워지고 간섭할 기회가 많아 막힘이 촉진된다.
둘째는 밀도, 밀도를 높이면 막힘이 증가한다.
셋째는 압력, 공간에 압력을 가하면 막힘이 일어난다. 물리학에서 ‘온도-밀도-압력’은 연관되어 있지만 또한 약간 다른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가령 입자에 주어지는 밀도와 압력이 일정해도 입자의 상호작용이 커지면 상대적으로 운동이 줄어들어 유효 온도가 낮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민심이 차갑게 식은 한국 사회는 소통과 발전의 막힘에 다다른 것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상전이’ 중이다. 지난 주말 서울의 광화문 광장에서 100만 명 가까운 인파가 모여 집회를 했던 것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온 국민이 같은 시간 동안 온 시선과 생각을 그곳에 집중했고 ‘뭔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이것이 상전이 현상이다. 이전의 한국 사회는 이후의 한국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다.
상전이 현상에는 임계값이 있다. ‘임계’라는 말은 급격한 변화를 뜻한다. 변화를 위해서 임계값을 초과해야 한다.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에서 물리학에서 일어난 과학 혁명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3].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바로 ‘기존의 것이 틀렸으니 바꾸자’고 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보수성이 있기 때문에 기존의 것을 바로 버리지 않고 ‘이것은 뭔가 비정상적이다’ 하고 치부해 버립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 변칙 또는 비정상성이 계속 축적되다 보면, 더는 ‘예외적이고 잘못된 것’으로 치부할 수 없게 됩니다. 기존의 패러다임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지요. 그러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그렇게 해서 과학 혁명이 일어납니다.”
한국 사회의 상전이는 아직 진행 중이다. 민심은 액체이다. 적절하고 합리적인 제도와 국가의 틀 안에서 민심은 한없이 평화롭고 고요하다. 급격히 요동치거나 굳어지지 않는다. 이왕 상전이를 할 거면 이미 임계값에 도달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부드러운 상전이를 해야 한다. 국민대통합을 넘어 이제는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1] 김범준, ‘세상물정의 물리학’, 동아시아출판사
[2] V. Trappe et al., ‘Jamming phase diagram for attractive particles’, Nature 411, 772-775 (2001)
[3] 손승우, ‘광화문 밝힌 촛불 20만 개의 과학’,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3780
원병묵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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