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사람이 모기에게 피를 빨려서 죽기야 하겠는가? 체중이 기껏해야 2밀리그램밖에 안 되는 모기가 피를 빨아 먹어야 얼마나 먹겠는가? 문제는 빨아먹는 피가 아니다. 우리가 식사를 할 때 파리가 달려들면 손을 휘저어서 파리를 쫓는 이유를 생각하면 된다. 파리가 훔쳐 먹는 음식이 아까워서 파리를 쫓는 게 아니다. 파리가 음식에 남겨놓는 균들이 무서워서 파리를 쫓는 것이다. 모기도 마찬가지다. 모기가 빨아먹는 피가 아까운 게 아니라 피를 빨아먹는 과정에서 우리 몸에 남기는 바이러스가 무서운 것이다.
모기는 약 8000만 년 전에 지구에 등장했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는 공룡피를 빨아먹는 모기 화석에서 공룡 DNA를 뽑아낸다고 하지만 실제로 모기에 물려볼 기회가 있는 중생대 최후의 시대인 백악기 후기 공룡들, 예를 들면 티라노사우루스와 트리케라톱스 같은 것뿐이다. 정작 쥐라기에 살았던 브라키오사우루스나 스테고사우루스 같은 공룡은 모기에 물려볼 기회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모기가 사람들과 함께 살기 시작한 때는 대략 200만 년 전의 일이다. 호모 속(屬)이 살고 있을 때다. 이때부터 모기는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이었다. 이후 50만 년 전경부터 불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된 호모에렉투스들은 일단 추운 곳으로 이주한다. 모기 같은 벌레가 적은 곳을 찾은 것이다. 그래 봤자 모기를 피할 수는 없었다. 모기가 우리에게 남기는 병은 뇌염, 뎅기열, 황열병, 말라리아처럼 죄다 심각한 것들이다. 바이러스로 유발된 질병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렇다 할 치료약도 없다.
지구온난화 덕분에 모기는 점령지를 점차 확대하고 있으며 온대지방에서도 활동기간이 늘었다. 나는 11월 들어서도 모기에 물렸다. 아무 모기나 동물을 무는 게 아니다. 임신한 암컷만 피를 빨아 먹는다. 알에게 먹이기 위해 목숨을 건 모험을 하는 것이다. 모기의 모성애는 모기에게만 고상할 뿐 내게는 철천지 원수의 짓이다. 모기가 동물을 찾는 수단은 크게 세 가지다. 땀 냄새와 체온 그리고 이산화탄소다. 땀과 체온은 몸을 씻으면 해결할 수가 있지만 이산화탄소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해볼 도리가 없는 일을 해보는 게 과학자의 일이다. 과학자들은 모기 퇴치에 모기를 이용할 방법을 궁리했다. 과학자들은 모기의 유전자(orco)에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이산화탄소가 없으면 냄새를 맡지 못하는 모기를 만들었다. 보통 모기들은 다른 짐승보다 사람을 더 선호하는데 이 돌연변이 모기는 사람보다 다른 동물을 더 좋아한다. 그래 봤자 소용없다.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 주변에는 다른 짐승들이 없고 사람은 숨을 쉬어야만 하며 그때마다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모기의 피해를 막겠다는 아이디어는 쓸 만했다.
요즘 가장 유명한 모기는 뭐니뭐니 해도 이집트숲모기(Aedes aegypti)다. 그동안에도 악명 높던 뎅기열과 말라리아 그리고 황열병, 치쿤구니아 바이러스의 매개자인 데다가 최근에 유행하는 지카 바이러스의 숙주이기 때문이다. 매년 뎅기열에 감염되는 사람은 5000만 명이다. 다행히 치사율은 낮아서 매년 1만 2000명 정도가 뎅기열로 사망한다.
옥스퍼드 대학 동물학과의 스타 3인이 만든 생명공학회사 옥시텍(Oxitec)은 이집트숲모기 수컷의 유전자를 조작했다. 이 수컷과 교미한 암컷에게서 태어난 애벌레들은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단백질인 tTA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 어른 모기로 자라지 못한다. 그렇다면 유전자 조작(GM) 수컷 모기 수를 늘리면 자연산 야생 수컷들이 교미할 기회가 줄어들 테고 결국 모기의 수가 자연히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게 옥시텍의 주장이다. 실제로 옥시텍은 영국령 케이멘 제도에서 실험한 결과 3개월 만에 야생 모기의 수가 80퍼센트나 줄어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발표에 자극받은 파나마 정부는 2014년 2월 수천 마리의 GM모기를 파나마시에서 서쪽 18킬로미터 떨어진 아리이한 지역 3곳에 방출했다. 브라질 정부도 3개월에 걸쳐 수백만 마리의 GM모기를 방출했다.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6개월 후 뎅기열 환자가 줄기는커녕 더 늘었다. 이집트숲모기 개체 수는 95퍼센트나 줄었는데 뎅기열 환자가 더 늘어나자 면역력이 생긴 새로운 변형 모기가 등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가 옥시텍의 GM모기 개발 기술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옥시텍은 2015년 9월 미국의 합성생물학 업체인 인트렉손(Intrexon)에 인수되어 다양한 GM 해충을 개발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동부에서부터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최대 관심 주(州)는 플로리다다. 클린턴과 트럼프 모두 여러 번 방문했던 곳으로 두 후보 모두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주다. 플로리다에는 또하나의 관심사가 있다. 플로리다 주 최남단의 키웨스트의 키헤이븐과 먼로 카운티 유권자들은 특이한 질문이 적혀 있는 투표용지를 한 장 더 받았다. “당신은 키헤이븐에서 실시하려는 GM모기 실험에 찬성하십니까?”
지난 8월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옥시텍의 프로젝트를 승인했지만,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자 모기통제위원회는 GM모기 방출을 시민들에게 물은 것이다. 찬성론자들은 GM모기 수컷이 모기 개체수를 줄이며 동물을 물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반대론자들은 모기들이 사라지면 박쥐의 먹이가 없어지는 등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을뿐더러 GM모기에는 잠재적인 위험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플로리다의 작은 카운티 유권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것은 트럼프냐 클린턴이냐만큼이나 흥미로운 사건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