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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 박승주, 태백산 천제 참여·보름달 구국기도도

“천지인·홍익인간·이화세계”역설…청와대 또 인사 구멍

2016.11.10(Thu) 06:56:54

‘서울시내 한 복판 굿판 참여, 명상을 통한 47회 전생 체험 주장’으로 논란을 야기한 박승주 국민안전처 장관 내정자가 지난 9일 자사퇴했다. 그런데 ‘비즈한국’ 취재결과 박 내정자에 대해 드러난 논란 외에도 그가 오랜 세월 신비주의에 경도돼왔었던 정황들이 속속 드러났다. 

 

지난 2008년 여성가족부 차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난 정통 내무 관료 출신인 그는 장관 내정 1주일 만에 사퇴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 혼란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정부가 장관 인사를 추천에만 의존하면서 인사 검증 시스템에 스스로 구멍을 뚫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굿판, 전생 체험 논란을 빚은 박승주 국민안전처 장관 내정자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에서 자진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 전 내정자는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관료 시절인 1995년 비영리조직(NPO) 한국시민자원봉사회를 만들어 소속 부처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아 집행부회장을 맡았다. 그는 현재 한국시민자원봉사회와 산하인 세종로 국정포럼 이사장도 겸직하고 있다. 

 

시민자원봉사회는 설립 직후부터 참가 희망자를 대상으로 매해 10월 태백산에서 ‘무박 2일’ 일정의 천제를 진행해 오고 있다. 박 전 내정자는 수차례 천제에 참석했고 참전관을 맡아 행사를 주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역설적으로 시민자원봉사회는 비종교를 주요 조직 행동강령으로 삼고 있다. 

 

천제는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인, 환웅, 단군의 근본 가르침인 ‘천지인(하늘과 땅과 내가 하나다)’과 함께 생명에너지를 가진 하늘사람이 되고 이를 구현하는 ‘​홍익인간·이화세계(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하고 이치로써 세계를 다스린다)’​ 사상을 되새기는 행사다. 

 

시민자원봉사회 관계자는 “박승주 이사장이 천제에 참석했고 참전관을 맡기도 했고 축문을 낭독한 적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천제는 종교 구분 없이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참석하는 행사로 종교와 연관 짓는 것은 억측이다”라고 해명했다.

 

이런 해명에도 천제 행사가 종교적으로 연관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천제에서 박 전 내정자가 맡았던 참전관에 대해 한국학중앙연구원은 단군의 아버지 환웅시대 스승 제도로, 고구려에 계승돼 영준한 인물들을 뽑아 이들을 가르치는 스승이라고 규정한다.

 

강원도 태백시 관계자는 “선조들은 산 정상에 천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태백산 천제단은 단군조선시대 구을 임금이 쌓았다고 전해진다”며 “산꼭대기에 이러한 제단이 남아 있는 곳은 태백산이 전국에서 유일하고 단군성전과 단군비각도 있어 해마다 천제 행사가 열린다“라고 설명했다.

 

박 전 내정자는 정신문화예술인총연합회 부총재도 겸임하고 있다. 그가 저술한 ‘사랑은 위함이다’(2013)라는 책에서 안소정 정신문화예술인총연합회 총재 겸 하늘빛명상연구원장을 자신의 스승이라고 밝혔다. 박 전 내정자는 이 책에서 “명상 공부를 통해 전생을 47회 체험하고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전봉준 장군이 자신을 찾아와 조선 말기 왕의 일기인 일성록을 건넸다”고 해 논란이 됐다. 하늘빛명상은 환단고기 사상과 국선도 식 명상을 결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소정 총재가 지난 8월 한 게시판에 올린 글엔 “세계 문명의 흐름은 합일의 환 문명인 대한민국으로 집중 중에 있다. 전국의 모든 정의로운 정신문화인과 의인들이 매월 음력 보름날 자정을 전후한 시간에 나라를 위해 기도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자”고 했다. 또한 8월 17일, 9월 15일, 10월 15일, 11월 4일, 12월 13일을 구국기도일자로 제시했다. 

 

기도 방법에 대해 안 총재는 각자가 처한 자리에서 자기방식대로 기도를 실시하라고 했다. 기도내용에 대한 예시로 “거룩하신 하느님, 부처님, 우리들의 간청을, 들어 주시옵소서…”를 제시했다. 

 

정신문화예술인총연합회는 지난 10월엔 안 총재 주관으로 ‘정신문화예술인 끼 발산’ 특별강좌를 개최했는데 특이하게도 참가자들에게 필히 흰색 정장을 입고 강좌에 참여하라고 요구했다는 점이다. 

 

박승주 내정자가 집행위원장으로 참여한 올해 5월 16일 열린 구국대제전 천제.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박 전 내정자는 지난 5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중대회 대한민국과 환 민족 구국천제 재현 문화 행사’ 진행위원장을 맡아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행사는 정신문화예술인총연합회와 하늘빛명상연구원 주관으로 열렸고 안 총재는 제사장을 맡았다. 사물놀이 지신밟기 등 식전행사를 시작으로 천제, 기도명상, 국태민안기원굿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비즈한국’이 당시 행사 제문을 입수해 보니 제사장을 맡은 안 총재는 발원에서도 “거룩하신 하느님, 부처님, 모든 신이시여”라고 외치고 있다. 

 

박 전 내정자는 당시 제전에서 집행위원장을 맡았고 ‘구국대제전 천제 고유문’을 낭독했다. 그는 “랑도(화랑도인)들은 한님(환인)과 한배웅(환웅), 한배검(단군)님께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영원한 번영을 위한 구국대제전 천제를 재현해 올린다”며 “천손민족으로 긍지와 자부심을 발휘해 일신강충 성통광명 재세이화 홍익인간의 훈요와 같이 강력하고, 끈끈한 사랑의 강강수월래를 부르며 환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로 인해 영세교 창시자로 기독교, 불교, 천도교 등의 교리를 통합했다고 주장했던 최순실 씨 아버지 고 최태민 씨의 교리와 유사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 전 내정자는 사퇴 기자 회견에서 광화문 굿판 논란에 대해 “북한의 핵위협과 일본의 자연재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기에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천제재현 퍼포먼스 문화행사에 참여했는데 결과적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됐다”며 “종교행사나 무속행사라고 생각했으면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 전 내정자는 자신을 추천한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야권의 반대로 청문회 길이 막히면서 사실상 ‘낙마’ 위기에 처한 데다 본인에 대한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해석된다. ​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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