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노트7 발화 사태’가 잠잠해지자 삼성그룹에 또 다른 위기가 닥쳤다. 이번에는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면서다.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본사가 압수수색 당하기까지 했다. 정경유착 의혹에 이재용호 삼성의 시련은 이제 시작되는 분위기다.
최순실 게이트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8일 오전 6시 40분부터 서울 서초동의 삼성전자 사옥 대외협력단 사무실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서초 사옥은 지난 2008년 이후 그룹 본사로 쓰고 있는 곳.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집무실을 비롯해 삼성 미래전략실이 위치해있다. 그룹 본사가 압수수색을 당한 것은 지난 2008년 4월 삼성 비자금 특검 이후 8년 만이다.
검찰 수사관들은 서초 사옥 27층에 있는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대한승마협회 업무 관련 자료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압수수색은 삼성이 최순실 씨와 딸 정유라 씨 모녀 소유의 스포츠 컨설팅 회사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에 280만 유로(약 35억 원)를 특혜 지원한 의혹과 관련해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10월 코레스포츠와 명마 구입·관리, 말 이동을 위한 특수차량 대여, 현지 대회 참가 지원 등을 위한 10개월짜리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이 비용이 280만 유로였다.
실제 이 돈 중 10억 원가량은 그랑프리대회 우승마인 ‘비타나V’를 구입하는데 쓰였다. 그런데 이 말을 타고 훈련한 유망주는 정유라 씨 혼자였다. 삼성 측은 원래 6명 정도의 선수를 후원하려 했지만, 정 씨만 후원 대상으로 뽑혔기 때문. 사실상 35억 원이 정유라 씨만을 위해 사용된 것이다.
특히 지난해 10월 작성된 ‘대한승마협회 중장기 로드맵’에 따르면 삼성이 2020년 도쿄올림픽 때까지 정유라 씨가 출전하는 마장마술에 약 4년간 186억 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박상진 승마협회장(삼성전자 사장)을 비롯해 승마협회 임원 대부분을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맡고 있는 점을 고려해볼 때 삼성이 삼성에 후원을 요청하는, ‘셀프 요청’인 셈이다. 이 로드맵은 결국 무산됐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승마협회 회장사로서 도쿄올림픽의 승마 유망주를 육성하는 사업에 지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삼성그룹과 최순실 씨의 금전적 연결고리 의혹은 정유라 씨 승마지원뿐만이 아니다. 최순실 씨의 사업창구이자 사금고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도 삼성그룹은 204억 원의 기부금을 냈다. 이 금액은 대기업 53개사가 낸 774억 원의 출연금 중 26%가 넘어 재계 1위답게 압도적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 3일 삼성그룹 김 아무개 전무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 검찰은 김 전무를 상대로 재단에 기금 출연 과정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등을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삼성의 역할이 작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의 설립과 기금 모금을 주도한 것은 공식적으로는 전국경제인연합회로 돼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과 전경련의 관계 설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전경련의 인력이나 예산은 삼성에 의존도가 높다. 따라서 두 재단의 기금 조성 과정에서 삼성이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도 있다. 주연 같은 조연”이라고 전했다.
삼성그룹이 최순실 씨 관련 비리 의혹에 연루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다양한 시선이 존재할 것 같다”면서도 “지난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난 뒤 삼성그룹의 첫 번째 과제는 이재용 부회장 지배체제 구축이다.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는 아직도 남은 과제가 많다. 그러한 과정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정부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았겠느냐”고 귀띔했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현안이 없는 회사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최순실 씨와 기업의 어떤 이슈를 연결을 시켜도 정경유착 등 이야기는 만들어지는 것 같다”며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따로 할 말이 없다.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수사 결과가 나오면 그때 소명하겠다”고 설명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기업들은 이구동성으로 “출연금은 정권의 압박에 의한 것으로 오히려 우리가 피해자인데 죄인 취급을 받고 있다니 너무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재계의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 요구에 따라 돈을 낸 것은 사실이겠으나, 일부 그룹들의 경우 특혜를 받는 등 정경유착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정권으로부터 혜택을 받을 것을 대기업들이 돈을 준 것이 아니었겠느냐”며 “또한 이 돈들은 오너들의 개인돈이 아니다. 회사의 돈이다. 결국 소비자들을 위해 쓰여야 할 돈 수십·수백억 원을 최순실 씨에게 건넨 것이다. 그런데 왜 피해자 코스프레(행세)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민웅기 기자
minwg08@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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