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의혹의 당사자 최순실 씨가 K스포츠재단과 함께 실소유한 미르재단이 올 9월 초 신임 이사장과 이사 선출 후 단 한 차례 이사회도 열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이 신임 이사진은 재단 관련 사업을 논의한 적도 없고, 활동도 사실상 전무했던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인다.
올 8월부터 각종 의혹들이 꼬리를 물자 미르재단은 9월 2일 서울 강남구 벨레상스 서울호텔에서 ‘제5차 임시 이사회’를 열고 신임 이사장과 이사를 선출했다. 미르재단 설립에 486억 원을 출연한 16개 그룹 30개사 소속 인사가 단 한 명도 없어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당시 이사회에서 신임 이사장으로 김의준 전 롯데콘서트홀 대표, 신임 이사로 CJ그룹 소속인 강명신 문화융합센터장, 배선용 대림산업 상무가 선출됐다. 지난해 CJ그룹은 계열사인 CJ E&M을 통해 미르재단에 8억 원을 출연했고, 대림산업은 6억 원을 출연했다. 올 7월 이사로 선임된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 산업본부장까지 포함하면 현재 미르재단 이사는 모두 4명이다.
‘비즈한국’이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당시 미르재단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이사회는 불과 15분 만에 끝났으며 김의준 신임 이사장과 이사로 선출된 강명신 센터장은 출석하지 않았고, 추광호 본부장과 배선용 이사 외에는 차은택 씨와 사제지간인 김형수 전 이사장(연세대 교수), 최순실 씨와 차은택 씨가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는 문화창조융합벨트 관련 인물인 조희숙 전 이사(한국무형유산진흥센터 대표), 이한선 전 이사(HS애드 국장 출신)만 참석했다.
7월 사임한 김영석 전 이사(한복 전문가), 송혜진 전 이사(국악방송 사장), 장순각 전 이사(한양대 교수)는 현장에 없었다. 김형수 전 이사장을 포함한 전 이사 6명은 1년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사임한 셈이다.
문제는 9월 미르재단 이사회 후 현재까지 상근인 김의준 이사장을 제외하면 그 외 3명의 이사들이 등재만 됐을 뿐 어떠한 재단 활동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배선용 대림산업 상무는 “미르재단 신임 이사로 선임된다는 연락을 받고 이사회에 참석했고 그날 이후 재단으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했다”며 “전경련이 미르재단 출연기업에서 이사가 없다고 해 8월 회원사들을 상대로 이사 추천을 받았다. 재계 순위 10위권 밖의 그룹 중 문화 활동을 많이 하는 곳으로 CJ와 당사가 선정돼 이사가 됐다”고 설명했다.
배 상무는 “이전 이사들이 최순실 씨 측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미르재단 이사로 선임된 게 알려져 곤혹스럽다”며 “지금이라도 당장 재단 이사를 사임하고 싶으나, 또 다른 의혹을 낳는 무책임한 행동으로 비칠 수 있어 자제하고 있다. 전경련이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을 통폐합한다고 하니, 이사가 있어야 이사회를 열고 관련 결정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CJ그룹 관계자는 “강명신 센터장은 미르재단 이사로 선임된 후 재단과 관련한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개인적인 부분이라 언급하기 그렇지만 거센 논란에 휘말린 미르재단 이사직을 기회만 되면 사임하고 싶다는 뜻을 비추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1년간 미르재단의 유일한 가시적 성과로 설립 이후 불과 한 달 만인 지난해 11월 프랑스 명문 요리학교 ‘에콜페랑디’와 한식수업 개설 양해각서(MOU) 체결 및 올 4월 확인각서(MOA) 체결 건을 꼽는다. 하지만 이 사업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3년간 추진해왔던 ‘한식 세계화’사업의 일환이었는데 신생재단인 미르재단이 비선실세의 개입 의혹 속에 가로챘다는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승래 의원실 관계자는 “이란에 한류 강화를 위해 설립하는 ‘케이타워’나 아프리카 곡물을 이용해 제품을 만드는 ‘케이밀’ 등 최순실 씨나 미르재단 등과 연관된 사업은 국정농단 의혹으로 인해 답보상태이며, 국회에서도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관여하고 청와대 그리고 전경련이 조직적으로 기업들로부터 돈을 뜯어 미르재단을 설립했지만 1년이 지난 현재 심각한 식물재단, 유령재단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지난 9월 말에 올 10월까지 미르와 K스포츠재단을 통폐합해 새로운 재단을 설립하고 투명하게 운영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재까지 전혀 진전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지난 10월 26일 이승철 전경련 상근 부회장과 미르재단 이사인 추광호 본부장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두 재단 설립과 관련한 의혹을 파헤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두 재단을 통폐합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신규 재단법인이 설립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두 재단을 폐쇄하고 남은 잔여 자산을 신규 재단으로 옮겨 운영할 수 있다”라며 “이 과정에서 모든 승인 권한을 문화체육관광부가 가지고 있는데 문체부 역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각종 의혹에 휘말려 있어 승인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비즈한국’은 미르재단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하고 질의서를 발송했으나 재단으로부터 어떠한 입장도 들을 수 없었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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