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이 이재현 회장을 구하려다가 부메랑을 맞았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CJ그룹에 대해 복수의 재계 관계자들이 한 말이다. 이명박(MB) 정부 시절 승승장구하던 CJ그룹은 박근혜 정부 들어 총수 이재현 회장 구속이란 풍파를 만나 구명을 위해 그룹 핵심 역량인 문화 사업에서 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린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CJ는 MB정부 시절 온미디어와 대한통운 등 대형 인수·합병(M&A)에 성공하면서 외형을 급격히 키워나갔다. CJ는 MB 정부 첫해인 2008년 자산 총액 10조 2000억 원에서 마지막 해인 2012년엔 22조 9000억 원으로 2.2배나 불렸다. 재계 순위(공기업 제외)도 17위에서 14위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상황은 달라졌다. 이재현 회장을 포함한 총수 일가가 직격탄을 맞았다. 검찰은 2013년 5월 CJ그룹에 대한 수사를 시작해 그 해 7월 이재현 회장을 구속했다. 이 회장은 1600억 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지난해 12월 징역 2년 6월의 실형이 확정됐지만 이번 8·15 특별사면에서 대기업 총수로는 유일하게 자유의 몸이 됐다.
CJ그룹의 이재현 회장에 대한 구명 노력은 그가 특사를 받을 때까지 끊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아직도 재계에서 회자되는 2014년 8월 독도에서 연 ‘보고 싶다 강치야! 독도 콘서트’사례다. CJ그룹은 이 콘서트에 처음으로 후원금을 냈고 그룹 실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허민회 당시 경영총괄 부사장(현 CJ오쇼핑 사장)이 행사에 참석해 그 즈음 최순실 씨와 이혼했으나 역시 비선실세로 지목된 정윤회 씨를 만났다. 또한 행사에는 박근혜 대통령 팬클럽 ‘호박가족’, 대선 당시 선거 캠프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 터였다. 이로 인해 CJ가 박근혜 대통령 쪽 인사들에게 이 회장의 구명을 부탁한 것 아니냐는 설이 파다했다.
이에 대해 CJ그룹 관계자는 “정권의 특혜를 받아 기업이 성장한다는 논리는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당시 우리 그룹 사업분야와 연관된 좋은 매물들이 시장에 나와서 인수했다. 독도 콘서트는 ‘나라 사랑’이라는 취지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후원을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CJ 총수일가 수난은 이 회장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MBN 등 보도에 따르면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재임 시절 “VIP(대통령)의 뜻”이라면서 이재현 회장의 누나 이미경 부회장의 경영 일선 퇴진을 요구했고 외삼촌 손경식 회장에게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져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지난해 1월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으며 손 회장도 2013년 7월 임기를 2년 남긴 상황에서 대한상의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법조계 한 인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검찰과 특검 수사를 받겠다고 한 만큼 조 전 수석도 수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라며 “조 전 수석이 대통령의 뜻이라고 진술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만큼 두 사람에게 검찰은 직권남용죄와 협박죄 혐의를 두고 수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민간 기업의 경영권에까지 개입한 배경은 분명치 않다. 다만 당시 CJ E&M이 운영하는 tvN 프로그램 ‘SNL코리아’에서 박 대통령을 날카롭게 풍자한 ‘여의도 텔레토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경합을 벌였던 문재인 후보가 극찬한 ‘광해’로 인해 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고 CJ가 만든 영화가 극우 세력한테서 좌파 영화로 공격을 받은 게 이유로 거론된다.
문화계 관계자는 “당시 보수 세력은 CJ가 좌파 문화의 숙주라고 공격하는 상황이었다”며 “총수 일가의 수난에 CJ가 대북 강경론을 일관되게 주장해 온 박근혜 정부에서 지난해 ‘연평해전’과 올해 ‘인천상륙작전’ 등 반공 영화를 제작했고 국내 최대의 영화 배급력과 스크린을 통해 물량 공세를 한 것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재계 안팎에선 이러한 총수일가에 대한 압박 속에 CJ가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문화융성’의 총대를 메고 자금을 대는 ‘전주’ 역할을 해온 것 아니냐는 해석이 우세하다.
우선 ‘K컬처밸리’는 최순실 씨의 측근으로 박근혜 정부 문화계의 황태자로 불리는 CF감독 차은택 씨가 주도하는 ‘문화창조융합벨트’의 핵심 구상 중 하나다. K컬처밸리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조성될 예정인 대규모 한류 테마파크로, CJ E&M 컨소시엄이 사업을 맡았다. 축구장 46개 넓이(30만㎡)의 대지에 융복합공연장과 숙박시설이 들어선다.
차 씨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창조융합본부 본부장 시절부터 CJ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CJ는 지난해 2월 11일 자산을 출연해 서울 상암동에 문화창조융합센터를 설립했다. 차 씨와 친분이 있는 강명신 CJ헬로비전 커뮤니티사업본부장은 문화창조융합센터장을 맡았고 최순실 씨가 실소유주인 미르재단 이사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29일 경기도는 이날 오전 평가회를 열어 K컬처밸리 사업 우선 협상대상자로 CJ를 낙점했고, 오후에 발표했다. 박 대통령과 차은택 씨, 손경식 CJ 회장이 공식 행사장에서 만난 날이었다. 같은 날 CJ E&M은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문화부와 공동으로 문화창조융합벨트 출범식을 개최했다. CJ는 당초 K컬처밸리 사업규모를 1조 원으로 계획을 세웠으나 무려 40%나 늘린 1조 4000억 원으로 상향했다.
CJ그룹이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한류콘서트 행사인 케이콘을 연 것도 청와대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5월 차씨가 기획을 총괄하면서 예산이 대폭 늘어난 ‘밀라노엑스포’에도 CJ푸드빌이 운영 책임을 맡았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이 수감 중이라는 약점 때문에 CJ그룹이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고 이른 바 전주로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CJ그룹 측은 “K컬처밸리는 원래 테마파크를 준비해왔고, 좋은 기회가 생겨 사업에 나선 것”이라며 “사업규모를 초기 1조 원 규모로 판단했다가 세부 수정작업을 하면서 4000억 원을 늘렸던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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