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기독교계 단체인 ‘교과서 진화론 개정 추진위원회(교진추)’가 과학 교과서에 실린 시조새와 말의 진화 내용을 삭제해달라는 청원을 낸 적이 있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청원을 받아들일 듯하자 과학계는 반박에 나섰고, ‘네이처’를 비롯한 외국 언론에서 이 소식을 다루자 국내 언론에서도 이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결국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새로운 연구결과를 추가하여 진화론을 바탕으로 하는 교과서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고쳐졌다.
당시, 시조새와 함께 문제가 되었던 말의 진화 과정은 아래 그림과 같은 직선적 단계로 진화한 형식으로 교과서에 소개되었다(당시 5종의 과학 교과서 가운데 2종에 게재된 방식이다).
이 그림은 세월이 흐르며 환경이 변함에 따라 말의 덩치가 점점 커졌고, 발가락의 갯수가 줄어들었으며, 어금니도 점점 더 발달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숲에서 부드러운 잎을 먹던 것들이 환경이 바뀌어 숨을 곳도 없는 초원에서 억센 풀들을 먹고 살자니, 튼튼한 다리와 이빨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직선적인 그림으로 설명하면 말의 진화 과정을 넓고 큰 시야로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실제 진화 과정과는 달라 오해의 소지가 있다.
마치 환경 변화에 맞추어 덩치가 작은 말들이 점점 덩치가 큰 말들을 낳고 발가락 갯수도 줄어든 것처럼 오해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의도적일지도 모르는) 이런 오해는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공격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을 제공하기도 한다. 지금의 원숭이들은 왜 인간이 되지 못했냐거나, 나중에는 이 원숭이들이 인간이 된단 말이냐는 식이다.
말의 직선형 진화 그림은 지금보다 말의 화석 증거가 매우 적었던 20세기 초에 도입된 것이다. 그럼에도 설명의 편의를 위해 얼마 전까지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어쩌면 최근의 과학적 성과를 쫓아가지 못한 게으름 탓일 수도 있다. 지금의 과학자들은 말이 이보다 복잡한 관목형 진화를 거친 것으로 이해한다.
5500만 년 전 하이라코테리움부터 시작해서 오로히푸스, 에피히푸스, 메소히푸스, 미오히푸스 등등으로 이어지는, 이름만 들어도 복잡한 말의 족보를 따지는 건 미뤄두자.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계속해서 종들이 분화를 해오면서 살아남거나 멸종하거나 다른 종으로 다시 분화되어 후손을 남기거나 하는 복잡한 나뭇가지 모양의 족보가 그려지는 것이 말이 진화해온 과정이라는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교과서는 오히려 향상되는 기회를 겪은 셈이지만 창조론자들이 포기하지는 않은 듯하다. 2018년도부터 적용되는 새 교육과정을 고시하기 전에 가진 몇 번의 공청회에서 기독교 단체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밝혔으나 수용불가능한 주장이었다는 기사가 있었고, 올해 1월에는 기독교 계열의 한 언론이 교진추의 소식지를 인용하며 새 교육과정에서는 진화론이 삭제된다는 오보(?)를 내기도 했다.
말은 꽤나 영리한 동물이다. 다섯 살 아이 정도의 두뇌를 가졌다고 하며 기억력도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사람의 반응에도 민감한데, 20세기 초 독일의 말 한스가 주인의 표정을 보고 수학문제의 답을 맞춘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사람과의 유대감도 깊다. 장애물을 넘거나 맹수 사냥에 나서고 전쟁터에서 돌격을 할 수 있는 것도 자신이 태우고 있는 주인을 그만큼 믿기 때문이다.
상상해보면, 제법 똑똑한 말의 입장에서는 사이비 과학에 휘둘리는 사람들이나 그런 결과로 자신들의 족보가 엉망이 될 뻔한 일에 실망하고 마음이 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경마용 말인 서러브레드는 1791년 이래의 족보가 완벽하게 작성돼 있을 정도인데, 극동의 한 나라에서 그들의 주인이 된 지 겨우 6000년밖에 안 된 사람들이 5500만 년의 역사를 뒤흔들려하니 말이다. 게다가 자신의 주인과 그 주변 인물들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될 어느 말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까운 요즘이다.
어쩌면 조상들이 뛰놀던 북아메리카의 드넓은 땅을 꿈꾸며 아픈 마음을 달래고 있을지도 모르는 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해본다. “말 달리자!!”
정인철 사이언스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