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4년마다 돌아오지만, 이 친구는 매년 돌아온다. 한 달 동안 73경기를 치르고, 이 동안 누적 시청자만 3억 3400만 명에 달한다. 결승전 총 시청자 수는 3600만 명으로, 리우올림픽 개막식의 미국 총 시청자 수보다 많았다. 올해 상반기에 있던 세계 대회에선 8일 동안 2억 명 넘는 누적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올해로 6번째를 맞는 대회지만 매해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간다. 이 친구의 이름은 롤드컵(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다.
롤드컵은 ‘리그 오브 레전드’의 세계 대회로, 개발사인 라이엇 게임즈가 인증한 각 지역 리그 대표팀들이 자웅을 겨룬다. 그야말로 리그 오브 레전드의 레전드를 뽑는 대회다. 팬들은 이 대회를 월드컵에 빗대어 롤드컵이라 부른다. 총 상금은 60억 원 규모이며 우승 상금은 23억 원이다. 매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월드컵이라 불리는 대회지만 한국인의, 한국인을 위한, 한국인에 의한 대회였다. 4강 진출팀 중 3팀이 한국팀이었으며 나머지 1팀의 핵심 에이스도 한국인이었다. 북미 리그는 “올해는 다르다”며 이를 갈았지만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가듯 못하는 리그는 세번째 대회도 말아먹었다. 8강에 한 팀밖에 올리지 못했다. 유럽 리그는 4강에 1팀을 올리는 기적을 보였으나 4강에서 한국팀에게 0:3 스윕을 당했다. 중국 리그는 하필이면 한국팀을 골라 만나는 바람에 4강에 한 팀도 올리지 못했다.
한국팀은 지난해에 이어 한국팀 간의 결승전을 성사해냈다. 한 쪽은 롤드컵 2회 우승 기록을 가진, 리그 오브 레전드의 마이클 조던이라 불리는 ‘페이커’가 있는, 명백한 세계최강 SKT T1이었다. 다른 한 쪽은 롤드컵 진출전에서 0:19의 상대전적을 극복한 드라마를 써내려간, 첫 세계대회에 결승까지 진출한, 모회사의 스마트폰이 터지듯 경기력마저 폭발해 롤드컵 10연승을 기록한 삼성 갤럭시였다.
대회의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단언코 역대 최고의 결승이었다. 미국 LA의 중심인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심리적으로 가장 긴장감을 준다는 펠레스코어 3:2로 끝난 결승전이니 명실상부 역대 최고였다. 1만 골드 차이를 역전하는 경기, 짜장면을 좋아하는 큐베는 경기를 캐리하면서 짜왕에서 짜‘황’으로 진화했다. 페이커와 크라운은 서로를 솔로킬냈다. LA 스테이플스 센터의 관객들은 큐베의 페이커 암살에 기립박수를 보내고, 경기를 캐리한 페이커를 ‘신’이라 부르며 찬사를 보냈다.
롤드컵에 보내는 열광은 단순히 유행으로 치부할 만큼 일시적이지 않다. 롤드컵 MVP로 뽑힌 페이커는 ESPN 특집기사의 주인공이었다. CNN은 그를 리그 오브 레전드의 리오넬 메시이자 마이클 조던이라 부른다. 100만 구독자를 보유하고 평균 2만 명의 동시 접속자를 보유한 리그 오브 레전드 레딧의 메인 모델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스트리밍을 하면 동시 접속자 수가 최대 40만 명을 기록한다.
우리는 예전에 월드컵을 보고 자랐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보며 울고 웃었다. 황선홍 세대, 이동국 세대, 안정환 세대, 박지성 세대 등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선수로 우리의 세대를 구분할 수 있었다. 그들을 따라 ‘사포’를 하고, 헛다리를 짚고, 세레모니를 했다.
아주 어쩌면 롤드컵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그런 구분점이 될 수 있다. 롤드컵으로 대표되는 게임은 이제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보고 플레이하는 스포츠가 되었다. 우리는 게임을 하고, 게이머의 플레이를 따라하고, 대회를 본다. 매드라이프의 결승전을 본 세대, 마타의 우승을 본 세대, 페이커의 우승을 본 세대 등등 말이다. 롤드컵이 밀레니얼 세대에게 월드컵을 뛰어 넘는 인기를 얻고, 세대의 아이덴티티가 되는 것도 꿈만 같은 일은 아니다. 인간은 먹는 대로의 동물인 것처럼, 보고 플레이하는 대로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구현모 알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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