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과학이 있다. 쇼핑몰 모델이 입었을 때와 내가 입었을 때의 핏감은 다르다. 페이커가 플레이하는 야스오와 내가 플레이하는 야스오는 다르다. 원빈이 거울을 째려보면서 머리를 밀면 멋있지만, 내가 밀면 눈만 아프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배우 공유처럼 달콤하게 여자친구를 바라봤지만 여자친구는 내게 “어제 잠 못잤냐?”고 말할 뿐이다. 사소한 ‘과학’이다.
여기 또 하나의 과학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적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아니아니, 적이 아니라 스승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니,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의 자신을 보고 배워야 한다.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도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4년 말 ‘정윤회 비선실세 논란’과 관련한 말이다. 문서를 유출한 것은 불법행위이며 국가의 기강을 해치기 때문에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해야 한다는 얘기다. 안타깝게도 최근 ‘박근혜 게이트’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의 여러 문건을 아무런 권한도, 지위도 없는 사람에게 조언받고 그에 따라 수정했다. 심지어 국방 및 외교와 관련된 여러 문건도 최순실 씨의 손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공직기강의 문란이 적폐 중 하나라고 말씀하셨으나, 몸소 적폐임을 증명하셨으니 스스로를 엄벌하셔야 한다.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한다”
지난해 6월,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신뢰를 저버린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를 공개 비판했다. 안타깝게도, 대통령은 스스로 국민의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저버렸다. 다소 논란은 있었으나 국가를 위해 헌신할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를 송두리째 뽑아버렸다. 대통령의 진심이자 청와대 참모진에 의해 운영되는 줄 알았던 국정이 아무런 전문성도 없는 필부에 의해 결정됐다. 이러다보니 많은 이들이 비선실세 앞에 줄섰으며 불통정치와 불통 국정운영은 예견됐다. 대통령 스스로가 국정운영을 망친 셈이다.
“참 나쁜 대통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안에 위와 같이 말했다. 개헌은 민생과 동떨어져 있으며 선거를 이기기 위한 일종의 함정카드라는 맥락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나쁜 대통령임을 인증했다. 대통령은 국회에서 있던 시정연설에서 최순실 비선실세 논란에 대한 아무런 해명없이 밑도 끝도 없는 개헌 논의를 던졌다. 비선실세 논란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였다. 진실을 밝히지 않으려는 꼼수를 던진 대통령은 참 나쁜 대통령이다.
“원안을 지키고 플러스 알파를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09년 세종시 특별법 수정 논란에 대해 위와 같이 말했다. 원칙을 중요시하던 당시의 대통령은 정부에게 원칙을 지키며 추가적인 무언가를 하길 요구했다. 잘못을 했으면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본인이 믿고 조언을 구한 누군가가 그것을 바탕으로 호가호위했다면 더더욱 사과하는 것이 위정자의 덕목이다. 사과를 해야 한다는 원칙을 넘어 더욱 전향적으로 나서도 모자랄 판이다. 7년 전 대통령의 말처럼 플러스 알파를 해야 한다.
“한국말 못 알아들으세요?”
본인이 저지른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도 변명으로 치부된 사과를 하고, 수사에 소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보면 대통령은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과 소통이 되지 않는 듯하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명백하다. 대통령이 나서서 수많은 의혹에 대답하고, 측근비리에 책임지는 것이다. 그 책임의 형태는 다양하다. 책임총리에게 전권을 위임하거나 내각을 총 사퇴시키고 거국중립내각을 꾸릴 수도 있다. 대통령직 자진 사퇴라는 극단적인 방법도 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국민들은 더이상 자신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늦어질수록, 신뢰도는 떨어진다. 과학이다.
구현모 알트 기획자
[핫클릭]
· [최순실 게이트·단독]
최태민·순실 인터뷰 전직 기자 “어떻게 저런 사람에게 놀아났을까…”
·
그런데 민주주의는?
· [최순실 게이트]
돈이 부족한 게 아니다. 도둑이 너무 많다
·
[2030현자타임] 일련의 보도통제에 대한 단상
·
[2030현자타임] 이화여대 사태에 덧붙여
·
[2030현자타임] 박근혜정부의 ‘원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