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국정농단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최순실 씨(60·최서원으로 개명) 측에 무려 111억 원이라는 거액을 건넸다는 사실이 확인되며 권력과의 유착 파문이 일고 있다. 이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80억 원 출연 압박에 개입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특히 SK그룹은 돈을 건넨 전후 그룹 총수 최태원·재원 형제의 특별사면,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합병 무산 등의 사건들이 펼쳐져 논란은 더욱 불거지고 있다.
774억여 원. 지난해 10월 27일 설립된 미르재단과 지난 1월 설립된 K스포츠, 만들어진 지 1년도 되지 않은 두 재단이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을 상대로 모은 기부금 액수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공시한 출연금 내역에 따르면, 미르재단은 30개사에서 486억 원, K스포츠는 49개사 288억 원 등을 지원받았다.
이 중 SK그룹은 SK하이닉스가 미르재단에 68억 원을 기부하는 등 두 재단에 총 111억 원을 기부해 삼성그룹(204억 원), 현대차그룹(128억 원)에 이어 세 번째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들 재단의 설립과 기금 모금을 주도한 것은 공식적으로는 전국경제인연합회로 돼있다. 하지만 미르·K스포츠재단은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 씨의 사업 창구이자 사금고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모금 과정에서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은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지난 2월 29일 처음으로 SK를 찾아가 80억 원 투자 유치를 설명하고, 며칠 뒤 안종범 수석에게 전화가 왔다. 안 수석은 ‘SK와 얘기는 어떻게 됐느냐’며 이것저것을 물어왔다. 이에 안 수석에게 ‘SK에서 우리 쪽 투자제안서에 대한 내부검토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기부금 출연에 청와대에 있던 안 전 수석이 개입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어 정 전 사무총장은 “K스포츠에서 SK를 두 차례 더 찾아갔다. 이 과정에서 SK 측이 ‘이런저런 조건을 따지지 않고 30억 원을 내놓을 수 있다’며 투자금 축소 제안을 해왔다. 이를 보고 받은 최순실 씨가 ‘그럼 그냥 받지 않는 걸로 하자’고 지시했다”며 “처음 ‘SK와 이야기가 다 됐으니, 가서 사업 설명을 하라’고 지시한 것도 최순실 씨”라고 덧붙였다.
이에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서울중앙지검장 이영렬)는 지난 10월 31일 SK그룹 대관 담당 박 아무개 전무를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박 전무는 지난 2월 정 전 사무총장이 SK그룹을 찾아가 투자를 요구할 때 실무를 맡았던 인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 전무를 상대로 실제 재단 측에서 모금 요구가 있었는지, 또한 청와대 안종범 전 수석이 개입했는지 등을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2일에는 안 전 수석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박 전무의 참고인 소환 조사에 대해 SK그룹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현재로서는 그룹 내 추가 참고인 조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을 줄였다.
재계에서는 정부와 관계부처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SK그룹에 두 재단과 청와대가 압박을 넣어 출연금을 요구했고, SK에서는 이를 받아들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당시 SK그룹은 오너 형제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의 사면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최 회장은 수백억 원의 계열사 자금을 횡령하고 유용한 혐의로 징역 4년을 확정판결 받고 법정구속됐다가, 지난해 8월 광복절 특별사면됐다. 앞서 최 회장은 3·1절 특사 등 여러 차례 특별가석방 대상으로 거론돼 왔지만 제외돼 법정구속된 지 2년 7개월여 만에 풀려나게 된 것.
반면 동생인 최 부회장은 여전히 수감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후 SK그룹은 K스포츠 기부금 축소 제안 및 무산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고, 결국 최 부회장은 특사 명단에 들지 못하고 지난 7월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최 회장은 특별사면이 몇 차례나 불발됐다가 이뤄진 지 몇 개월 되지 않았고, 동생 최 부회장은 여전히 수감돼 있는 상황이었다. SK그룹 입장에서는 청와대의 압박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을 리 없다”고 귀띔했다.
지난 7월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합병 무산도 최 씨의 미움을 사, 부정적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SK그룹과 K스포츠 간의 출연 요구가 무산된 시점을 전후해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에 대한 정부 심사 기류도 돌연 부정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실제 SK텔레콤은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인가신청서를 지난해 12월 제출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6개월이 넘도록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가 지난 7월에서야 합병불허 요지의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혐의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면서, 사람들이 모든 이슈에 최 씨를 연관 짓고 있는 것 같다”며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무산은 재단 기부금 출연 거부로 설명하기에는 무리인 지점이 있다”고 전했다.
SK그룹 관계자는 “미르·K스포츠재단과 대기업을 둘러싸고 갖가지 설들이 나오고, 서로 부딪치고 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 중이라 지금은 언급하기 쉽지 않다. 수사 결과가 나오면 그때서야 그 결과를 보고 입장을 밝힐 수 있지 않겠느냐”며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으로 간 111억 원의 기부금은 이사회 상정 등 정당한 의결과정을 거쳐 집행됐다. 그룹에서 하는 정상적인 사회공헌 활동이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SK그룹의 정경유착 의혹이 불거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태원 회장의 부인은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이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1985년 미국 시카고대학 유학생활에서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대학 전공 선후배 사이로 만나 가까워졌다고 강조했지만, 대기업 총수의 장남과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최고권력자 딸의 만남은 ‘정략결혼’ ‘정경유착’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나오게 했다. 결국 최태원-노소영 커플은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한 지 7개월 만인 1988년 9월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지난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를 통해 대기업으로의 성장 발판을 마련한 SK는 최 회장의 결혼을 계기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오늘날 SK그룹이 재계 3위에 오르는 데는 노태우 대통령 재임 기간인 1988~1993년을 중심으로 전후 몇 년간이 결정적이었다.
SK는 지난 1991년 4월 선경텔레콤을 설립하며 이동통신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이듬해 6월에는 대한텔레콤으로 상호를 변경하며 이동전화 부문 사업허가를 신청, 두 달 후인 8월 신규 사업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 사돈기업 특혜’ 시비에 휘말리면서 자진 반납해야 했다. 대신 SK는 1994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현 SK텔레콤으로 이어왔다.
이러한 SK그룹의 이동통신사업 진출, 허가, 한국이동통신 인수 등의 과정은 ‘살아 있는 권력의 사위’이기에 가능했다는 말이 재계에 파다했다. SK그룹 성장사에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결혼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고, ‘정경유착’ 논란이 불거지는 까닭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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