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국정농단 의혹의 당사자 최순실 씨가 설립을 주도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 원의 출연금을 낸 53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본격 수사에 나서면서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두 재단에 출연금을 낸 일부 대기업은 외부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를 받은 감사보고서나 사업보고서상에 기부금 지출내역을 기재하지 않고 임의로 두 재단에 출연금을 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회계 처리 문제와 함께 비자금 조성을 통한 출연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1일 재벌닷컴과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두 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기업 중 기부금 지출 내역이 없는 기업들과 이들 기업들의 기부금 액수는 한화(15억 원), GS건설(7억 8000만 원), CJ(5억 원), LG전자(1억 8000만 원), LG이노텍(1억 원), LS전선(1억 원), LG하우시스(8000만 원), LS니꼬동제련(2억 3900만 원) 등으로 드러났다.
또한 두 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대다수 기업들이 상법상 절차인 이사회 결의 등을 거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대기업들은 통상적으로 ‘10억 원 이상의 출연 또는 기부’ 시 반드시 이사회에 안건을 보고하고 개최해 결의하도록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회계사는 “회계법인은 기업에 대한 회계 감사를 할 때 단시간에 뚝딱 해내는 게 아니라 검증에 검증을 거쳐 완료해야 정상이다”라며 “감사를 하는 회계사가 기부금 지출 내역, 자금 출처, 이사회 동의 여부 등도 꼼꼼히 살폈다면 이런 문제들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감사인으로서 이의를 제기했어야 마땅하다. 그러지 않았다면 직무유기이자 형사 처벌대상이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낸 12개 대기업은 지난해 당기순손실을 기록해 법인세를 낼 비용도 없었던 상태에서 출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먼저 대한항공은 심각한 적자로 2년 연속 법인세를 내지 못했고 지난해에도 4770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두 재단에 10억 원의 출연금을 줬다. 두산중공업도 지난해 4511억 원 순손실을 기록했음에도 4억 원, 두산그룹 지주사 두산도 7억 원을 냈다.
CJ E&M은 지난해 637억 원, GS건설도 330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가운데 각각 8억 원과 7억 8000만 원을 내놨다. 대한항공 경쟁사인 아시아나항공도 지난해 1519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음에도 3억 원을 내놓았고 GS글로벌도 636억 원 순손실에도 2억 5000만 원을 출연했다.
금호타이어는 462억 원 순손실을 기록하고 4억 원을 출연했고 LS니꼬동제련도 494억 원 순손실에도 2억 3900만 원을 냈다. 각각 737억 원, 3558억 원, 215억 원의 순손실을 낸 GS이앤알(2억 300만 원), LG전자(1억 8000만 원), LS엠트론(6200만 원) 등도 두 재단에 돈을 헌납했다.
모금 과정에서 강요나 압력행사가 있었을 지라도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거액의 돈을 일사분란하게 두 재단에 기부한 기업들은 배임, 횡령, 비자금 조성이란 형법상 문제와 함께 정경유착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두 재단에 출연금을 가장 많이 낸 기업은 현대자동차로 68억 8000만 원이다. 이어 SK하이닉스 68억 원, 삼성전자 60억 원, 삼성생명 55억 원, 삼성화재 54억 원, 포스코 49억 원, LG화학 49억 원 순이다.
이들 기업들은 검찰의 수사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입장정리에 분주한 상태다.
검찰은 관련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지난 주 전경련을 압수수색한데 이어 참고인 신분으로 각각 28일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을 소환해 조사했다. 또한 30일 70억 원을 K스포츠재단에 내고 검찰수사에 앞서 되 돌려받은 롯데그룹 소진세 정책본부 사장과 이석환 상무, 31일엔 현식 당시 K스포츠 사무총장으로부터 80억 원을 후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SK그룹 박영춘 전무를 소환해 조사했다.
또한 검찰은 삼성, 현대차, 포스코 등 다른 대기업 관계자도 조만간 차례로 소환해 조사할 방침으로 전해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순손실을 기록하면 긴축재정에 들어가고 기부금 등 사회공헌 비용을 대거 축소하는 게 정상이다. 이런 기업들도 청와대나 전경련으로부터 후원 요청을 받고 두 재단에 돈을 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돈을 모금한 것 아니겠는가. 두 재단에 돈을 낸 기업들은 피해자임에도 결국 검찰 조사를 받게 생겨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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