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최순실 게이트’에 매몰되고 있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란 전대미문의 사건은 마치 거대한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들을 빨아들이는 양상이다. 하지만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다른 이슈들도 적지 않다. ‘비즈한국’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묻혀 버린 일곱 가지 이슈들을 점검해본다.
1. 박 대통령의 개헌 발표 하루만에 실종
지난달 24일 박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며 개헌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통령 단임제(5년)를 중임제(4년 재집권 가능)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대통령 단임제로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지면서 지속가능한 국정과제의 추진과 결실이 어렵고, 대외적으로 일관된 외교정책을 펼치기에도 어려움이 크다”, “경제주체들은 5년 마다 바뀌는 정책들로 인하여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투자와 경영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등의 이유를 제시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개헌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혀왔기에 임기 후반에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쏟아졌다. 최 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덮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개헌은 국정의 블랙홀”이라고 단정 지어 얘기한 바 있다.
하지만 불과 하루만인 지난달 25일 종편 JTBC가 최순실 씨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PC를 입수해 보도하면서 개헌 이슈는 완전히 실종된 상태다.
2. 대우조선해양과 우병우 전 수석 관련 의혹 규명은 이제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각종 의혹으로 야권으로부터 줄곧 경질 요구글 받아오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최순실 게이트’ 파문으로 인적쇄신을 고민하던 박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우 수석을 둘러싼 뇌물·횡령·직권 남용·자녀 군 보직 특혜 등의 의혹과 대우조선해양 경영 비리 수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이제부터 반드시 규명돼야 할 과제다.
검찰은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과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곧 소환할 예정이며,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의 투자 및 특혜 대출 의혹까지 범위를 넓혀 수사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우 수석 처가와 넥슨의 강남 땅 거래 의혹을 보도하면서 ‘최순실 게이트’가 시작됐다고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나라를 강타하면서 대우조선해양 비리 의혹과 관련된 이슈를 삼켜버렸다는 분석도 있다.
3. 문재인 전 대표, 북한인권결의안 결재 논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 창비)’가 지난달 7일 출간됐다. 이 회고록에는 2007년 11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참여정부가 북한에 의견을 물은 후에 기권을 결정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송 장관은 “정치적인 의도로 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그간 전형적인 프레임인 ‘색깔론’을 들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종북으로 몰아세웠다. 이에 문 전 대표는 “야권 유력 대선주자를 흠집 내기 위한 색깔 공세”라면서 “북한의 입장을 듣기 전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결국 새누리당은 ‘UN 북한인권결의안 문재인 대북결제사건 진상규명위원회’를 설립하고 문 전 대표의 답변을 촉구하고 나섰고,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이 논란이 잠잠해지자 친박계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전 대표는 북한인권결의안을 김정일에게 물어봤다고 당시 장관이 주장하는데도 기억 안난다고 버티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인(최순실)에게 물어본 것이 나쁜가? (문 대표가) 주적(북한)에게 물어본 것이 나쁜가? 최순실 사건은 특검을 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북결재 사건은 그냥 검찰 수사 중이다. 이것도 특검해야한다”는 글을 남겼다.
4. 한진해운 유럽법인 청산, 대규모 인력 구조 조정
한진해운의 법정 관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법 파산6부가 해진해운으로부터 요청받은 ‘구주(유럽)법인 정리에 대한 허가’를 지난달 24일 승인했다. 한진해운이 유럽 법인의 청산 절차를 밟게 된다는 의미다. 우선 현지 법인화 된 헝가리, 폴란드, 스페인의 법인이 먼저 정리되며, 나머지 7개 지점은 차후 순차적으로 청산된다.
한진해운의 대규모 인력 구조 조정도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26일 ‘임원 인원 조정 허가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유럽법인 정리 허가로 인해 기존 700여 명의 육상 부문 직원의 절반 이상을 감축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5. 해수부, 세월호 인양 방식 변경 도둑 발표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 방식을 변경하겠다고 지난달 31일 발표했다. 기존 세월호 인양 방식은 선미 아래와 주변에 쌓인 토사를 굴착한 후 리프팅빔를 설치해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미에 리프팅빔을 설치하는 방식은 두 개를 설치하는 데만 두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자 정부가 인양 방식을 변경한 것. 선미에 리프팅빔 3개만 추가로 설치한 후 들고리와 와이어를 이용해 선미를 살짝 들어 올려 마저 리프팅빔을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선수에는 18개, 선미에는 8개의 리프팅빔이 설치된다.
세월호 인양 방식 변경으로 뒷말이 무성하다. 세계 굴지의 인양 업체가 아닌 중국 업체를 선정한데다 ‘최순실 게이트’로 전국이 시끄러운 시점에 인양 방식 변경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바다 속에서 증거를 인멸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온 국민의 정신이 ‘최순실 게이트’에 빠진 사이 세월호 인양 방식을 발표해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 아니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6. 한일 정부 요구로 미 교과서 지도서에 ‘위안부 합의’ 게재 논란
한국과 일본 정부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역사교과서에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게재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캘리포니아주의 시민단체인 위안부정의연대는 캘리포니아주 역사교과서의 교사용 지도서에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이 게시된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주소가 삽입됐음을 발견하고 수정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톰 아담스 캘리포니아주 교육부 부교육관은 ‘여성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일 정부가 포함시켜달라고 요청해왔다”고 설명했다.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굴욕적인 12.28 위안부 합의를 미국 역사교과서에, 그것도 일본 외무성의 웹사이트 주소로 안내해 삽입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라고 질타하면서 “정부는 캘리포니아 교육부에 즉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7. 백남기 농민 안치실 무단침입, 이영식 건대 교수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빨간 우비’ 남성의 폭행이라며 부검을 주장해오던 이영식 건국대학교 교수가 백남기 농민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안치실에 지난달 30일 무단침입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이 교수는 그동안 물대포를 직접 맞겠다고 실험을 요구해왔으며,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백남기투쟁본부는 사건 발생 당일 페이스북에 “경악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이영식 교수는 백남기 어르신의 죽음이 일명 '빨간 우의'에 의한 것이라며 부검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했고 장례식장 앞에서 1인 시위까지 했다. 이 교수는 안치실에 무단으로 침입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글과 함께 영상을 게시했다.
유시혁 기자
evernuri@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