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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정두언 참회록13] 남북관계를 절단 낸 ‘비밀 접촉’

대통령 취임식에 북측 참석 제안 무산…권력의 사유화에 휘둘리는 국정원

2016.11.02(Wed) 15:47:03

# 북한의 MB 취임식 참석 시도

 

제19대 대선이 끝나고 정권인수위원회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07년 12월 하순 인수위에 파견 나온 한 전문위원을 통해 모 기관 대북파트 고위직 인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첫인상부터가 그 분야에 오래 종사해온 전문가답게 식견도 풍부했고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는 “북측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북한 특사가 참석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사안의 긴박성과 중요성을 감안하여 MB에게 보고 자리를 은밀하게 만들었다. 

 

2007년 12월 말 내가 배석한 상태에서 창성동 별관에서 MB에게 북한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 MB는 당시에 그의 보고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추후 다시 논의해보자는 반응이었다. 이 이후 남성욱 교수가 “북한 특사로는 부총리급 이상이 와야 한다”고 말한 것이 2008년 1월 1일이고, “인수위에서 MD(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 체계) 참여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은 1월 11일이다. 

 

북한이 처음부터 취임식에 올 생각이 없기에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제스처를 취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참석하고 싶었는데 MD문제 등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들이 불거지고 김만복 국정원장의 비밀 방북이 공개되면서 참석을 안 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꾼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당시 북한 내부에서도 MB 정권의 등장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라인이 움직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러한 일련의 일들로 인하여 남북 간의 핫라인이 중단되었다.

 

북측에서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특사를 보내겠다는 제안이 있었다. 만약 취임식에 북측 특사가 참석했다면 MB 정부 5년의 남북관계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사진=주간사진공동취재단

인수위 시절 북측의 MB 취임식 참석 제안은 노무현 정부 시절의 남북관계 기조를 MB 정부에서도 이어가자는 북측 나름의 기대가 반영됐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의 취임식 참석이 성사되지 못했던 것과 관련해 통일부 쪽에서는 다른 얘기도 있었다. 북측이 “대선을 잘 치르게 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을 넣어 서신으로 초청을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MB에게 보고가 되어 “그것이 무슨 소리냐, 못 넣는다”라고 해서 무산되었다는 얘기다. 이 얘기가 맞다면 북한에서는 겉으로 어떤 모양을 취했건 애초부터 특사로 올 생각이 없었다는 얘기도 된다. 

 

 

# 남북 간 핫라인의 단절

 

그런데 남북 간의 핫라인이 끊긴 결정적 이유가 있었다. 그 대북전문가가 창성동 별관에 왔다 간 것을 박영준이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사람들의 눈에 뜨일 수 있는 곳으로 그를 부른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박영준은 당시 MB에게 그는 빨갱이고 MB를 매우 비판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이유는 그를 국정원 내의 내 사람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그를 그때 처음 보았다. 권력 사유화라는 게 여러 의미가 있다. 휴민트 같은 국가적인 자산을 권력투쟁의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휴지처럼 날려버리는 것도 권력 사유화의 한 단면이다. 그 이후에도 공권력을 개인의 사유물처럼 생각하다 보니 비슷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그동안 전임 정부들이 만들어놓은 수많은 대북 라인 가운데는 살려야 할 라인, 죽여야 할 라인 등이 있었을 것이다. 장단점을 검토하고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시각에서 대처했어야 하는데 이런 과정도 없이 한순간에 대북라인이 무너졌다. 대북 라인에 종사했던 귀중한 자산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이다. 

 

통일 문제, 대북 문제, 남북 협력 문제 등을 도모할 수 있는 기초적인 인적 자산들이 사라졌다. 이로 인해 이후 MB 정부의 대북정책은 방향 감각을 상실했다. 쓸데없는 가정이지만 만약 MB 대통령의 취임식에 북측에서 온 특사가 참석했다면 MB 정부 5년의 남북관계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을 진보정권의 전유물로 오인하고 있다. 과거의 예를 보면 박정희 정권의 7·4 남북공동성명을 비롯,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 등 보수정권에서도 남북 간은 군사적 대치와 긴장 속에서도 상호 물밑 대화를 부단히 이어왔다. 하물며 중도실용노선을 내세운 MB 정부야말로 더 말할 나위가 없었는데 MB는 찾아온 그 좋은 기회를 아무 생각 없이 날려버렸다. 

 

 

# 국제 및 남북관계의 아마추어리즘

 

남북관계는 더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대북 문제와 관련해 비핵이라는 원칙이 존재하고, 이 트랙과는 별도로 민간 교류 협력을 한다든지, 비선 같은 라인을 활용해서 물밑 협상을 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투 트랙으로 가야 했는데 하나의 트랙을 잃어버렸다. 그렇다 보니 남은 것은 강경 기조뿐이었다. 실제 MB 주변에 있는 네오콘들이 모든 결정을 주도하고 있을 때라 서로 따로 놀았다고 할 수도 없다. 

 

또 공무원 사회라는 게 자기 주장을 제대로 얘기하지 않고 청와대의 눈치만 보는 게 통상적인 일이다. 그렇다보니 중요한 시기에 그동안 형성되어 왔던 대북라인이 엉성하게 그냥 무너져 버린 것이다. MB 정부의 대북 정책은 거칠게 보면 ‘비핵개방 3000’이라는 비현실적인 자기 독백만 있고, 나머지는 전임 정권이 갔던 길의 반대 방향으로만 가려는 그런 것이었다.

 

MB는 이런 문제의 엄중함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다. 죄송한 얘기지만 외교에서는 여느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마추어였다. 어느 나라나 외교 문제의 큰 흐름은 여야가 바뀌어도 항상 그대로 간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지금까지의 흐름에 바탕을 두고 본인의 관점을 얹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무시한다. MB도 예외가 아니었다. 

 

MB는 대통령이 된 뒤 이전까지의 ‘정무적 판단’을 공유하던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았다. ‘너희들이 뭘 알아?’ 이런 식이었다. 그러면서 ‘외교·안보와 같은 문제는 그 분야의 전문가들과 얘기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당시 이상득 라인이 득세하면서 소위 대통령이 생각해야 할 ‘정치’나 ‘정무적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팀워크가 완전히 와해됐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정무적인 판단까지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국정 운영에서 공직 사회가 가장 중요하다. 특히 외교부와 통일부가 중요하다. 현재 정부의 한일 관계를 생각해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의 콤플렉스 때문에 대일관계에 강경할 수밖에 없다. 또 우리가 국내 정치에 활용하기 좋은 게 반일이다. 자신의 인기가 떨어지는 것을 커버하기 위해서 반일 정책을 적극 활용한다. 그럼 외교부 장관은 어떻게 해야 하나. 외교부 장관은 그럼에도 기존의 흐름을 유지하고 양국 장관끼리 각국의 사정을 상호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윤병세 장관은 대통령보다 한 술 더 떠서 엄청 과격하게 나간다. 과거 MB 정부의 김성환 장관 때도 홍준표 당대표가 독도에 해병대를 주둔시키자고 했더니, 김성환 장관의 대답은 “결정하는 데로 따르겠다”였다. 그럴 때 외교부 장관은 “한일관계에 긁어 부스럼을 키워서는 안 된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결정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하는 이들이 공직 사회이고 전문 관료집단이다. 단임 정부가 계속되면서 이런 폐해가 더욱 심화됐다. 

 

역대 정부에서는 대북 디자이너들이 있었다. 그런데 MB 정부나 현 정부는 대북 문제의 디자이너가 없다. 2010년 5월 21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 사진=청와대 제공

역대 정부에서는 대북 디자이너들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큰 그림을 그리고 관료사회는 거기에 방향을 맞춰서 일을 추진한다. 그런데 MB 정부나 현 정부는 대북 문제의 디자이너가 없다. 실무관료들 자체가 큰 그림이 없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누가 뭘 얘기하면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는 식으로 간다. 

 

그리고 어떤 정책이나 협상 등에서는 그 내용 못지않게 ‘누구를 통하여’라는 메신저가 중요하다. MB 정부는 공염불 같은 비핵3000에다 전문가조차 다 잃어버렸으니 게도 우럭도 다 잃어버린 결과가 오늘날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북한 핵 위기이다.

 

 

# 국정원의 사유화

 

다 알다시피 이상득은 권력의 핵심에 자기 사람을 심어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고 뒤에서 리모트컨트롤 했다는 것이다. ‘이상득 불출마’론이 불거진 데는 이상득의 이런 힘을 견제하고자 하는 흐름도 영향을 미쳤다.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이상득 국회의원 보좌관), 장다사로 청와대 민정비서관(이상득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김주성 국정원 기조실장(이상득 코오롱 사장 시절 임원) 등은 MB 정권 초 대표적인 이상득 사람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장다사로 민정비서관이었다. 민정비서관의 중요 역할 중 하나가 친인척 관리다. 친인척 중에 가장 요주의 친인척이 이상득인데, 그 관리를 이상득의 직전 비서실장이 하면 되겠나. MB의 묵인하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러면서 김주성이 국정원에 들어가게 됐다. 그 김주성을 통해 소위 원로그룹이 국정원 인사를 좌지우지 하게 됐다. MB 정부 초기에 청와대에 파견된 국정원 인사 가운데 최시중이 나온 대구 모 고교 출신이 6~7명이나 됐다. 그 정도로 무리한 인사들이 이루어진 것이다.

 

김주성은 MB가 서울시장 시절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앉혔는데, 임기가 남아서 오세훈 시장 시절까지 사장을 하고 있었다. 경선 당시 MB 후보 측은 BBK 문제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옥외집회를 하게 됐다. 이재오의 부탁으로 정태근이 김주성에게 전화해 “세종문화회관에 문제가 안 되게 하겠다”고 사전 통보한 후, 집회 준비 차 무대를 설치하러 갔는데, 막상 도착하니 엉뚱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집회를 못하게 하려고 세종문화회관 야외에 전시하던 조형물을 계단 앞으로 전부 모아 놓았던 것이다. 김주성은 당시 노무현 정부와 오세훈 시장의 눈치를 보며 면피를 하려고 나름 머리를 쓴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 MB 정부의 요직 중의 요직인 국정원 기조실장이 되었다.

 

김성호 국정원장의 후임으로 서울시에서 상수도사업본부장을 하다 서울시 부시장을 지낸 원세훈(사진)이 왔다. 그가 국정원을 어찌 알겠는가. 사진=비즈한국DB

MB 정권 초기 국정원은 내부 갈등이 심했다. 특히 김성호 원장과 김주성 기조실장의 알력이 심했다. 서로 정치적인 라인이 달랐기 때문이다. 기조실장을 내세워 국정원을 장악하려는 이상득계의 ‘도발’이 근본 원인이었다. 특정고 출신이 7명 가까이 청와대에 갈 수 있었던 것도 김주성이 인사를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국정원에서 청와대에 파견된 L 씨가 김성호를 사찰하기도 했다. 부하 직원이 자기의 최고 상사인 원장을 사찰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 때 법무부 장관을 지낸 김성호는 고려대를 나온 인연으로 MB 정권 들어 국정원장을 맡은 것 같다. 한때 이종찬 변호사가 유력하게 올랐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막판에 김성호로 바뀌었다. 역대 정권이 거의 다 그랬듯이 비공식 권력이 실권을 장악하면 대체로 권력기관장을 ‘핫바지’로 앉힌다. 나중에는 김성호도 나름대로 원장의 권한을 행사하려다 결국은 사임했다. 그의 후임으로 모두가 알다시피 서울시에서 상수도사업본부장을 하다 서울시 부시장을 지낸 원세훈이 왔다. 

 

재미있는 대목이 이런 것이다. 원세훈이 국정원을 어찌 알겠는가. 원세훈은 국정원장에 내정된 후 서울시에 출입하던 국정원 직원인 이 아무개를 불렀다. 이후 그 이 아무개는 원세훈 국정원장 시절 국정원의 실세가 되었다. 과거에 원세훈과 이 아무개는 단순히 서울시 공무원과 서울시에 출입하는 국정원 직원이라는 관계만은 아니었고 그 이상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원세훈 원장 시절 국정원의 인사를 이 아무개가 주물렀다고 한다. (김주성 기조실장이 물러 난 뒤) 그는 5급으로 있다가 4급이 되고, 마지막엔 3급까지 승진했다. 그야말로 초고속 승진이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국정원의 인사를 농단했다는 이유로 해임되고 현재 행정소송 중인 것으로 안다. MB 정부 때는 그야말로 5, 4급의 직원들이 국정원을 쥐락펴락한 희한한 시절이었다. 

 

 

# 시급한 대북라인의 복원

 

현재 국정원의 대북라인은 거의 죽었다고 볼 수 있다. 대북관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대북라인을 다시 복원하려면 최소한 5년에서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라인이라는 게 키맨을 키우는 것이고, 그러려면 상대 쪽과도 신뢰가 쌓여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급작스럽게 대북라인을 복원해야 할 때는 재량권이 있는 사람이 키맨이 되어야 한다. 북한에서 볼 때 이 사람에게 본인들 요구사항, 협상을 하는 재량권이 있다고 판단되면 확 달라붙는다. 과거 노태우 정부 때의 박철언이 대표적인 경우다. 또 한 사례로 박지원이 북한에 비밀 접촉하러 갔을 때 그는 정상회담을 받기 위해 북한의 얘기를 웬만하면 다 들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국정원 대북파트 인사들이 미리 브리핑을 했다. 북측이 이렇게 나올 것이고 그러면 이렇게 답하라는 식이었다. 박지원이 한마디 던지니까 북측은 국정원이 예상한대로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에는 자기가 가져간 선을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 하여튼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이렇게 재량권이 있는 사람이든가, 옆에 그 분야에 오래 종사해서 저쪽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MB 정부 인수위 시절에 남북 핫라인을 단절한 것은 굉장한 손실이다. 그 이후로 남북관계는 계속 악화 일로를 걸어왔다. 2013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MB 정부는 아무리 인도적 목적이라 해도 정부와 사전에 협의를 거치지 않으면 대북지원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5·24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투 트랙에 대한 전략 전술이 전혀 없다. 실제로 MB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결론적으로 대북 문제와 관련해서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정부가 되었고, 오히려 몇 차례의 도발, 십수차례의 미사일 발사, 그리고 5차례의 핵실험 등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 

 

 

# 개혁은커녕 정상화가 시급한 국정원

 

김만복, 원세훈 원장 시절을 거치면서 국정원은 완전히 망가졌다는 평가가 많다.

소위 87년 체제 이후 단임 정부가 계속되면서 국정원은 정치적 입김에 가장 크게 흔들려 왔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대폭적인 물갈이 인사와 퇴출 등이 반복되면서 국정원은 전문성과 사기가 땅으로 떨어졌다. 특히 김만복, 원세훈 원장 시절을 거치면서 국정원은 완전히 망가졌다는 평가가 많다. 막대한 예산과 인적자원을 가지고도 국가의 최고 기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우리 국정원. 국정원은 개혁은커녕 정상화가 시급한 실정이고 그것만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는데, 아직도 국정원은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깝다. ​

정두언 전 국회의원

bizhk@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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