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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_비화 추적3] 박근혜 “최태민은 참 고마운 사람”

우먼센스 옛 기사로 본 박근혜-최태민

2016.10.30(Sun) 11:38:56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의혹’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연결고리인 최 씨의 아버지 최태민 씨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비즈한국은 과거 ‘우먼센스’에 게재되었던 최태민, 최순실, 박근혜, 세 사람의 인터뷰와 관련 기사를 다시 싣습니다. ​당시 인터뷰 내용을 100퍼센트 신뢰할 수는 없지만, 당사자들의 관계와 심경 등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는 데에 의의를 두었습니다.

 

 

지난 88년 10월부터 박정희 대통령·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를 조직해 활발한 활동을 펴오던 박근혜 씨가 기념사업회장직을 사임했다. 육영재단 이사장직까지 함께 물러난 근혜 씨의 결정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어서 많은 궁금증을 자아냈다. 더욱이 최태민 씨를 규탄하는 숭모회의 출현과 얼굴 공개를 꺼리던 근영 씨의 등장으로 문제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사퇴의 배경에 대한 여러 추측으로 어수선하던 11월 초 근혜 씨는 기자들을 만나 그간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어머니가 설립한 육영재단을 동생이 맡는 것은 당연한 일

 

박근혜 씨(38세)의 기자회견은 지난 11월 9일 오후 2시 40분경 어린이회관 안에 있는 육영재단 이사장실에서 이루어졌다. 근혜 씨의 돌연한 공직 사퇴를 놓고 여러 추측이 무성한 가운데 ‘근혜·근영 씨 자매의 불화설’이 가장 유력한 듯이 보이자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근혜 씨가 자청한 기자회견이었다.

 

지난 88년 10월 기념사업회가 발족한 이후 기자는 근혜 씨를 6번 가량 공식적으로 만났다. 만날 때마다 갖게 되는 인상적인 기억은 흐트러짐 없는 자세였다. 미안한 표현이지만, 불의에 부모를 잃은 불행과 두 동생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혼자 사는 여자가 그런 단정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와 의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그러나 항상 치밀한 목적 의식을 갖고 기자들과 신경전을 벌이던 근혜 씨는 이날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 자신의 표현대로 ‘심신이 지쳐 있는’ 피곤한 모습이었다. 작은 산처럼 일종의 위압감마저 주었던 곧은 자세는 약간 꾸부정한 듯했고, 옆구리 쪽이 결린 듯 가끔 몸을 뒤로 젖히며 얼굴을 찡그리곤 했다. 조용한 가운데 힘이 담겨있던 목소리도 동요하고 있었다.

 

아마도 공식석상에서 근혜 씨가 속마음을 보여주는 이런 표현을 하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부모가 너무 유명한 분이니까 피해를 당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팔자가 센 편이죠.” 88년 이래로 적지 않게 근혜 씨를 괴롭혀 왔던 기자도 이날만은 처음으로 ‘근혜 씨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근혜 씨와의 인터뷰 내용.

 

-현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점은 박근혜 회장의 사퇴 이유일 것입니다. 박 회장은 건강을 사퇴의 이유 중 하나로 꼽기도 했는데 육영재단 및 기념사업회 구성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박 회장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은 한 번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건강은 너무 궁색한 이유 아닐까요.

“사실은 심신이 매우 지쳐있는 상태입니다. 지금도 빨리 인터뷰하고 집에 가서 쉬고 싶을 뿐입니다.” 

 

근혜 씨는 ‘일방적으로 매도되던 아버지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되기 시작했고 기념사업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므로 그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쉬고 싶다’고 말했다.

 

-후임을 여동생인 근영 씨로 결정했는데 오히려 장자(長子)인 지만 씨가 적격 아닐까요. 지만 씨가 배제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른 사업을 하고 있는 남동생은 스스로 기념사업회에서의 활동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육영재단은 어머니가 설립할 때부터 여동생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난 10월 28일 숭모회의 최태민 씨 규탄 시위에서부터 이날의 근혜 씨 기자회견에 이르기까지에는 곡절이 많았다. 분규의 원인인 근혜·근영 씨 자매간의 불화 혹은 재산 싸움인 것처럼 비쳐지자 가족 간의 내분을 가장 싫어하는 근혜 씨는 11월 3일 전격적으로 공직을 사임했다. 그러자 다시 근혜 씨 지지자들인 근화봉사단원 등이 근영 씨를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근혜 씨는 사퇴의 뜻을 분명히 하면서 근영 씨가 육영재단 이사장을, 김치열 씨가 기념사업회장직을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내무부장관과 법무부장관을 역임한 김치열 씨가 기념사업회장에 선임된 것은 그동안 유족이 기념사업회를 맡은 사실에 대해 말이 많았던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의 결정 등 소정의 법적 절차는 이미 거쳤거나 혹은 차차 밟아나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80년 초 어려운 시기에 나를 도와준 사람은 최태민 씨뿐

 

-기념사업회 조직국장과 어린이회관 관장 등도 이미 사표를 낸 것으로 아는데, 그들이 박 회장과 함께 그만두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그만둔다고 하니까 사표 낸 것이지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10월초 한 인사가 기념사업회에 와서 브리핑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가 브리핑을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한 유력 정치인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분은 제가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 오시라고 했던 겁니다. 저를 돕는 차원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특정 정치인이 관여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숭모회라는 단체에 대해 아는 대로 들려주십시오.

“그 단체는 어린이회관 정문 앞에서 시위하던 날 처음 알게 됐습니다. 저를 나가라고 한 것이 아니라 최태민 고문을 나가라고 했다는데, 생각해 보세요. 제 부모님을 숭모하는 단체라면서 이런 곳에서 시위한다는 일 자체가 불미스러운 일 아니에요? 최 고문은 이미 몇 개월 전에 완전히 손을 뗀 분입니다. 이미 물러나 있던 분에게 나가라고 하는 얘기는 무슨 의미죠? 이게 뭡니까?(이 대목에서 근혜 씨의 목소리는 약간 높아졌다. 또 몸이 불편한 듯 몸을 자주 뒤로 젖히며 오른손으로 왼쪽 옆구리를 만졌다.) 최 고문이 기념사업회와 육영재단을 좌지우지한다고 주장한다는데 제가 나이가 몇입니까? 사업회 운영은 제가 알아서 소신껏 해왔습니다.”

 

-최태민 전 기념사업회 고문에 대해선 말들이 구구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날 근혜 씨는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최태민 씨에 대해 언급했다.)

“지난 77년 저와 함께 새마음운동을 하던 최 고문은 시기와 질투를 받았습니다. 투서가 들어오니까 당시 김재규 중정부장이 조사를 시켰습니다. 아버지는 내사 기록을 읽어보고 저를 배석시킨 가운데 친국을 한 뒤 없었던 일로 돌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최 고문은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조사를 받았는데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은 조사하지 말자던 아버지의 지시 등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공식행사에 큰딸 박근혜 씨와 함께한 모습.


-최 고문이 박회장에게 보낸 편지에 ‘꿈에 육 여사가 나타났다’는 내용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몽이라거나 도사 혹은 ‘하얀 피가 흐른다’ 등은 유치한 말 아닙니까. 그분이야말로 현몽 등의 샤머니즘을 배격하는 분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따뜻한 위로 편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격려 편지를 읽어보고 만나게 된 케이스 중 하나입니다. 최 고문에 대해 떠도는 항간의 루머를 믿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박 회장은 최 고문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80년 직후 기념사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유신 소리만 나와도 욕을 먹던 어려운 시기였는데 선뜻 도와준 사람이 최 고문뿐이었습니다. 참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항간의 구구한 억측에 최 고문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들만이 떠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근영 씨는 최 고문을 싫어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허무맹랑한 얘기입니다.”

 

-지난 추석 직후 김종필 최고위원의 자택을 방문해 금년부터 10·26 추모행사를 함께 하기로 합의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함께 추모행사를 하게 됩니까?

“제가 손을 떼니까 내년부터는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박 회장이 정치 활동의 뜻이 있다고 알려지기도 했는데 이 자리에서 분명히 밝혀주시죠. 앞으로는 또 무엇을 할 계획입니까?

“정치는 전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할 일이 없어서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우선은 건강을 회복해야겠지요.” 

 

“저희 이야기가 하나도 잡지 등에 실리지 않을 때가 가장 기쁘다”던 근혜 씨는 “사회문제화된 이번 일이 조용하고 원만하게 잘 끝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당부의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먼센스 199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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