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다. 간부급 직원이 고객에게 큰 피해를 입혔음에도 신한은행 측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지점장이 고객에게 불법 사금융을 알선하고, 개인정보를 도용한 사실이 적발돼 검찰에 고발당했는데도 말이다. 당사자는 재테크 책과 강연으로 스타덤에 오른 프라이빗뱅커(PB) 출신이다. 은행 이미지와 신뢰에 먹칠을 할 수도 있는 일. 그런데도 신한은행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징계는커녕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에 변호를 맡기고 승진인사까지 선물했다. 어찌된 일일까.
신한은행 서울 강남지역 지점장을 지낸 K 씨는 중소기업 대표 S 씨가 신한은행으로부터 대출을 거절당하자, 불법 사금융을 알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S 씨는 공동대표였던 M 씨와 M 씨 남편 L 씨를 연대보증인으로 세웠다가, 2012년 이들에게 연대보증인 계약 해지를 요구받았다. 담보로 설정한 부동산이 경매로 넘어갈 것을 우려한 S 씨는 신한은행에 추가 대출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출이 많다는 이유로 본점에서 거절됐다. 그러자 해당 지점의 지점장과 부지점장이던 K 씨와 P 씨는 S 씨가 보증계약 해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우려해 자금여력이 있는 L 씨에게 15억 원을 대출해줘, L 씨 돈 5억 원 등 총 20억 원이 S 씨 통장에 입금되도록 조치했다.
또 S 씨와 연대보증인 L 씨의 갈등으로 대출 상환이 늦어져 연체이자가 발생하자 ‘돈이 아직 입금이 안 됐다’며 ‘백지’ 약정서에 S 씨의 서명과 인감도장을 받았다. 그리고 이를 대출 및 약정서류에 사용했다. 서류 다섯 부 중 한 부는 K 씨가 직접 임의로 서명하는 등 7억여 원의 연체이자를 오롯이 받아냈다.
결과적으로 K 씨가 피해자를 속여 손에 쥔 돈은 고스란히 신한은행으로 흘러들어갔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K 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사금융 알선)과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지난 1월 기소했다.
가장 의아한 점은 신한은행의 태도다. 신한은행은 K 씨가 기소된 사실을 알고도 아무 인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도리어 K 씨를 지역본부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올 1월 기소 이후에는 본사의 핵심 팀장 역할까지 맡겼다.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은행은 금융당국의 징계조치를 받는다. 이 때문에 어느 은행이든 금융사고 발생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신한은행도 지난 2014년 직원이 고객 돈 1억 원을 빼돌린 정황을 자체 감사에서 포착했다. 이 직원은 고객에게 돈을 갚았으나, 신한은행은 검찰 고발을 검토했을 정도로 강도 높게 대응했다.
K 씨는 지난 8월 1심 판결에서 사문서위조와 컴퓨터를 통한 범죄행위에는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사금융 알선으로 벌금 500만 원을 선고 받은 상태다. 담당 검사는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재판부에 강하게 항의하며 항소에 들어갔다.
은행원이 문제를 일으키면 은행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보는 것이 법적 시각이다. 금융기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돈의 유혹에 흔들리기 쉽기 때문에 엄중하게 사안을 바라본다. 아울러 이에 상응하는 징계를 내림으로써 금융당국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직원 관리나 윤리경영에 대한 책임은 은행에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 직원을 감쌌다가 당국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법정에서 K 씨의 유죄가 입증될 경우 범죄행위의 최종 수혜자인 신한은행에도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해석한다. 유죄판결을 받으면 신한은행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행위와 결과를 둘러싼 금융당국의 과거 판단을 살펴보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문제를 일으킨 직원을 엄정하게 처리했을 때 금융기관의 책임을 감경해주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신한은행 관계자는 “사금융 알선은 은행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어 곤혹스럽다”며 “K 씨는 형사재판 1심 판결과 달리 사금융 알선도 하지 않아 전부 무죄라고 강변하고 있다. 고소인 S 씨가 L 씨와 모르는 사이가 아니라 연대보증 관계였기 때문에 사금융 알선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고 해명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사문서위조 혐의 등에 대해선 S 씨가 일부 서류에 대한 서명을 K 씨와 당시 해당 지점 부지점장으로 있다가 퇴직한 P 씨에게 위임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해 법원이 무혐의 선고한 것으로 안다”며 “K 씨의 형사재판과정에서 법무 대리를 당행이 거래하는 대형 로펌이 맡은 이유는 K 씨가 회사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송사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다른 분석도 있다. 이 사건을 두고 행내에서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데, K 씨가 ‘실세’라는 소문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신한은행 내에서 특정 충청지역 출신 인사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며 “K 씨의 경우 행장이 직접 인사를 챙긴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K 씨와 조병용 행장은 충청권 출신이다. K 씨의 승진 당시 인사를 총괄했던 담당 부행장도 충청권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S 씨는 “K 씨가 현행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했음에도 신한은행은 국내 최고 변호인을 선임해주고 K 씨를 요직에 배치하는 등 경제정의 실현에 반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금융인으로서의 직업윤리를 위반한 행위에 대한 은행의 내부 통제나 자정 작용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한은행 관계자는 “K 씨를 인사조치 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당행 소속으로 방송 출연과 책, 카페 운영 등 대외활동을 하지만 부동산과 관련한 상당한 전문가로 그 이름만으로도 브랜드를 형성하고 있다. 다만 유죄가 확정될 경우 면직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며 “K 씨가 조용병 행장 및 당시 인사 부행장과 충청 동향라인으로 비호를 받는다는 설은 억측이다. 은행 인사는 그렇게 엉성하지 않다”고 밝혔다.
장익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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