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최순실 씨를 둘러싼 비선실세 의혹은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일각에서는 ‘최순실 게이트’, 나아가 ‘박근혜 게이트’라 명하며 진실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박 대통령 탄핵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SNS 계정에 현재의 대한민국 국면을 ‘일제감정기2’라 표현하면서 “헌정파괴 국정문란, 통치시스템 파괴, 국가위기 초래에 책임지고 대통령은 하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노 대표는 “미국 닉슨 전 대통령이 어떻게 탄핵의 직면에서 하야해야 했는지를 면밀히 복기해야 할 것 같다”고, 우 원내대표는 “소추는 할 수 없지만, 조사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들마저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콘크리트 지지율은 25%(한국갤럽, 10월 21일 발표)로 급락했고, 인터넷포털사이트 실시간검색어에는 ‘탄핵’, ‘박근혜 탄핵’, ‘하야’ 등이 상위권에 머물고 있다. 심지어 극우 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마저 박 대통령을 조롱하는 글로 도배되고 있다.
최 씨와 박 대통령을 둘러싼 의혹의 수위가 연일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시절에 밝혔던 내용이 다시 한 번 회자되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이 전 대통령의 예언이 적중했다는 분석을 내세우고 있고, 현 사태의 배후에 이 전 대통령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하고 있다.
‘뉴시스’가 지난 2007년 6월 보도한 ‘李측, 朴이 대통령 되면 최태민 일가 국정농단’ 기사에 따르면 이 후보캠프 장광근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최 씨 일가에 의한 국정농단의 개연성은 없겠는가”라며 “최태민 목사뿐만 아니라 최 목사 일가가 전방위에 걸쳐 연루된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는 도덕성과 관련, 초연한 입장을 취해왔던 박 후보의 양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장 대변인은 또 “영남대 이사장 재직 시 최 씨 가족들이 사학재단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 육영재단 운영에서 최 씨 일가의 전횡과 재산증식 의혹, 정수장학회 현 이사장이 과거 박 후보와 최 목사의 연락 업무를 담당했다는 의혹 등이 사실이라면 최태민 일가와의 관계는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미래진행형”이라며 “정수장학회, 영남대학교, 육영재단 운영 등 박 후보와 관련된 의혹의 중심에는 늘 최태민이 있었다. 최 씨에 대한 의혹제기를 두고 ‘천벌’ 운운하는 과민반응을 보이는 박 후보의 반응도 예사롭지 않다”고 강조했다.
누리꾼들은 10년 전 보도된 이 기사를 SNS에 공유하면서 공감하고 있다. 누리꾼들은 ‘MB 대단하네. 예언가야’, ‘MB가 작두탔다고 해서 와봤다’, ‘MB가 반신반인이었네’, ‘MB 최대 업적 달성’, ‘여기가 그렇게 용하다고 소문난 곳인가?’, ‘앞일 예언이 거의 명스트라다무스’, ‘성지순례 왔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해호 씨(전 한나라당 당원)와 박관천 전 경정(전 청와대 행정관)의 과거 발언도 재조명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이 전 대통령의 배후설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미 오래전부터 최 씨와 박 대통령의 관계를 알고 있었던 이 전 대통령이 현 사태를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지난 8월 이 전 대통령이 “차기 정권을 반드시 내 손으로 창출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힌 언론 보도(월간조선 9월호)를 또 다른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김 씨는 지난 2007년 6월 기자회견을 마련하고, 이 자리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육영재단 이사장이었지만 아무런 실권도 행사하지 못하고 최태민과 그의 딸(최순실)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면서 “측근에 의해 작은 재단 하나도 소신껏 꾸려가지 못하고 농락당해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된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 지도자가 되고, 험난한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넘어갈 수 있겠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할 당시 최 목사의 로열패밀리가 육영재단을 재산증식으로 활용했고, 유치원 원장이었던 최 씨가 수백억대 부동산 자산가로 성장했다며 진실 규명을 촉구하기도 했다.
박근혜 후보캠프는 김 씨를 허위사실 공표죄, 명예훼손죄 등으로 고소했고, 김 씨는 1심에서 징역 1년, 2심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김 씨가 박 후보에게 제기한 각종 의혹들이 이 후보캠프의 정책특보였던 임현규 씨로부터 자료를 제공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2014년 12월 박관천 경정은 당시 최순실 씨의 남편 정윤회 씨가 국정에 개입한 의혹이 담긴 청와대 내부 문건(청와대 감찰보고서)을 유출했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박 경정은 “우리나라 권열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면서 “최 씨가 1위, 정 씨 2위,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월 검찰은 박 전 경정이 작성한 문건이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했고, 박 전 경정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과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박 전 경정이 작성한 문건은 조웅천 당시 공직기관비서관의 지시로 작성됐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문건 외부 유출 혐의로 조사받던 최 아무개 전 경위는 자살했다.
이에 최근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검찰이 ‘사실무근’이라던 박 전 경정의 문건이 사실에 부합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블로그와 SNS 등을 통해 조 비서관의 배후에 이 전 대통령 혹은 친이계 인사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한 누리꾼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 전 대통령이 박 대통령과 최 씨의 관계를 알고도 침묵한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고, 또 다른 누리꾼은 대우조선해양 비리에서 시작된 검찰 수사가 ‘이명박 정권 사정 수사’라서 이 전 대통령이 최 씨와 박 대통령의 관계를 폭로한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한 글을 블로그에 게시했다. 김해호 씨와 박 전 경정의 발언에 대해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이들도 등장하고 있다.
유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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