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가 최순실 씨에게 흘러들어간 각종 청와대 문건들을 확보하면서, 검찰 수사가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치적인 사건일수록 (처벌할 수 있는) 기본적인 혐의를 잡고 수사에 착수하는 것을 중시하는 검찰에게 초반 제기된 미르·K스포츠 재단 자금 조성 의혹들은 처벌하기 애매한 수준의 ‘진술들’만 있었다면, JTBC가 최순실 씨 PC에서 확보한 각종 청와대 문건 자료들은 대통령기록법 위반이라는 명백한 범죄 혐의를 적용할 수 있게 해주는 증거들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재단과 최 씨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할 것이라는 전망이 법조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제 수사가 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이번 수사 과정을 잘 아는 관리자급 검사의 전망이다. “재단 자금 모금 과정이 불투명해 검찰이 그동안 수사 범위를 한정 지어놨었다”고 설명한 그는 “지금까지의 수사는 관련자 ‘입’만 바라보는 소환조사가 전부였고, 압수수색 한 번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국민적 의혹으로 확대된 만큼 검찰도 수사에 속도를 붙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상의 사례를 봐도 검찰의 움직임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국민적 의혹이 제기될 경우 언론 보도에 대한 진술을 뒷받침하는 진술만으로 최대한 신속히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증거 확보에 나서는 게 일반적이다.
사실 사건 초기 움직임은 명백히 달랐다. 특수부가 아니라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말석인 형사8부(부장검사 한웅재)에 사건이 배당된 것부터가 수사 의지가 높지 않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는 압수수색 없이 관련자 소환만 진행했다. 검찰이 올해 롯데그룹을 수사할 때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부장검사 조재빈) 등 3차장 산하 부서 세 곳을 동원해 250명을,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도 대우조선해양 압수수색할 때 200명을 동원한 것과 극명히 대비되는 흐름이었다.
검찰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전국경제인연합을 통해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수십억 원을 낸 피해자 격인 삼성과 현대차 등 대기업들이 “강제로 돈을 뜯겼다”고 진술할 리 없었기 때문. 피해자가 없다면, 재단에 돈을 모은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연스레 최순실 씨가 ‘피의자’ 신분이 안 되기 때문에, 독일에 머무르고 있는 최 씨를 강제로 소환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던 게 현실이었다.
최 씨는 그렇게 번 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었다. 독일로 딸 정유라 씨와 함께 출국했고, 취재진이 따라붙자 자연스레 잠적했다. 그러면서도 국내외에서 개인회사 비덱 등에 대한 청산 절차를 진행했다. 사건은 최 씨가 원하는 흐름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JTBC가 흐름을 뒤집는 보도를 24일 내놓기 전까지 말이다.
JTBC는 최 씨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컴퓨터를 입수해, 연설문 관련 의혹을 대대적으로 제기했다. 그리고 보도 직후 해당 PC를 검찰에 수사 의뢰했는데, 검찰은 어제 오전 “전날 밤 JTBC로부터 삼성 태블릿 PC 1개를 수령했다. 파일 내용은 현재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JTBC의 보도가 사실이라는 것을 전제로, 최 씨에게 적용 가능한 혐의들을 짚어보자.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은 물론, 재단 모금 과정 의혹에서 출발한 사건인 만큼, 최 씨의 개인 회사 자금 유용(횡령), 해외 재산 보유 및 도피 탈세 혐의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일부 언론들은 최순실 씨 소유 강남 빌딩에서 각종 증거물을 찾아냈을 정도. 청와대 눈치를 보고 있는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된다’는 말이 나온다.
검찰 내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과거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조응천, 박관천 사건이 이번에는 검찰에게 ‘좋은 명분이 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의 문서들이 어떻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는지 엄정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인데, 검찰 내부에서는 “더 이상 청와대 눈치를 보지 않고 나오는 대로 수사를 벌여야만 검찰이 산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이번 사건으로 검찰과 현 정권의 밀월도 끝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수사는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빤한 결과가 나올 경우 검찰이 받을 역풍에 대해 우려감을 드러내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청와대 파견 경험이 있는 한 검사는 “이번 사건에서 누가 청와대 문건을 빼돌리도록 지시하고, 행동했느냐가 관건”이라며 “부속실에는 대통령을 20년 넘게 모신 사람들이 있지 않느냐. 결국 대통령이 문건 유출을 지시한 기록을 찾지 못하거나 진술을 받지 모할 경우 ‘짜놓은 듯한 수사 결과’가 오히려 검찰에게 부메랑이 되서 돌아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남윤하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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