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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칼럼] 한국에서 나쁜 아빠 되기

나쁜 아빠 되기는 어렵다…이게 바로 역차별이다.

2016.10.25(Tue) 18:41:40

대한민국에서 되기 힘든 게 참 여러가지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나쁜 아빠 되기’다. 이거 진짜 역차별이다. 여자가 나쁜 엄마 되는 건 순식간인데 남자는 나쁜 아빠가 되려면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우선 남자가 직장 다니면서 월급 받아 온다면 이건 공업용 트리플 코팅 테플론 레벨의 까방권, 정밀 조준 반사 엔진이다. 뭘 해도 아내가 욕 먹지 당신이 욕 먹을 수는 없다. 일주일 스물한 끼 밥 해 먹이는 거 하나도 고민 안하고 장 안 보고 식단 안 짜고 안 차리고 안 먹이고 안 치웠다고? 괜찮다.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니까 가끔가다 과일 사가지고 들어가고 치킨 사가지고 들어가면 BGM으로 애잔한 음악 깔리면서 전국민이 당신을 자상한 아버지라 칭해준다. 

 

애들 발 사이즈가 몇인지 팬티는 몇 개 양말은 몇 개 셔츠는 몇 개 교복은 어디서 사야 하는지 애들 체육복은 언제 챙겨야 하는지 겨울옷 언제 샀는지 새로 코트 필요한지 어떻게 손빨래 해야 하는지 어떤 색깔 좋아하는지 언제 여름옷 겨울옷 옷장 정리하는지 세탁기는 어떻게 돌리는지 뭘 손빨래 해야 하는지 무슨 세제 써야 하는지 하나도 모른다고? 괜찮다. 1년에 애들 옷 한두개만 사줘도 동네 아줌마들이 기립박수 쳐준다. 술 취하고 집에 오는 길에 딸내미 머리끈 몇개만 사와도 딸바보 소리 듣는다. 

 

여자는 매일 저녁 딸내미 머리 감아주고 좋아하는 샴푸 사두고 아침에 묶어주고 머리끈 사고 정리해도 딸바보 소리 못 듣는다. 아이가 아토피라서 먹는 거 입는 거 하나하나 다 조심해야 하고 밤에도 자다 깨서 울지만 그건 뭐 알바 아니라고? 괜찮다. 직장에서 “우리 아이가 아토피라서…” 한마디 하면 병원 한 번 안 갔고 무슨 연고 무슨 로션 발라야 하는지 뭐 먹으면 안 되는지 하나도 몰라도 어찌 아빠가 그런 것까지 알고 걱정하냐고 칭찬해준다. 

 

집안 일 하나도 안 돕는다고? 그래도 나쁜 아빠 타이틀 따기 힘들다. 가사 도우미는 부인이 구하고 일 가르치고 오고 가는 거 확인하고 돈 계산할 망정, 당신은 아내가 정리해둔 음식 쓰레기만 군소리 없이 버려주고 남이 집안에 들락거리는 걸 참아주며 아내가 직접 안 치우는 것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까방권 획득이다. 무려 와이셔츠를 직접 세탁소에 맡기고 찾아온다면 생불 취급받을지도 모른다. 물론 가족 식구들 빨래를 다 챙겨서 세탁기 돌리고 꺼내고 널고 걷고 개고 챙겨 넣고 손빨래는 또 따로 조물거리며 하고 애들 교복 다리는 건 다 부인이 하지만, 자기 와이셔츠만 챙기는 남자는 곧바로 추앙받는다. 화장실 청소 까다로우니 앉아서 오줌 눈다고? 기다리면 청와대에서 표창장 날아올지도 모른다.

 

도대체 뭘 해야 나쁜 아빠가 될 수 있는가? 직장 때문에 애들 등교 한 번 안 시키고 집안일 하나 안 돕고 부엌 한 번 안 들어갔는데, 그걸로도 안 된다고? 주말에 부인이 장 봐 온 음식으로 애들 한 번 해먹이면 곧바로 자상 아빠 딱지가 붙는다고? 애들이 밤에 울고 보챌 때 한 번 안 깼고, 학교 숙제는 안 봐줬고, 준비물 한 번 안 챙겨줬고, 학교 봉사 한 번 안 나갔고, 과외 선생님 한 번 안 구해주고 그 많은 학원 관리 교육비 지출 관리 하나도 안 했는데, 그래도 안 된다고? 안 된다. 몇 년동안 방치하다가 어느 날 지하철 역 상가에서 아이들 옷을 보고 애들 생각나서 눈시울이 붉어졌다면 당신은 또 자상아빠가 된다. 젠장. 애들이 공부 못해도 부인이 욕먹고, 애들이 버릇없어도 부인이 욕먹는다. 집안에 곰팡이가 피어도 부인. 애들이 편식을 해도 부인. 이건 부인이 전업이든 워킹맘이든 상관 없다. 정밀 조준 반사 엔진은 ‘그 집 여자’를 상대로 무조건 쏘아댄다.

 


그래서 나쁜 아빠 타이틀에 도전하는 남자들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퇴근해서 피곤하지만 에너지를 모아 애들에게 소리를 지른다. 밥 투정을 한다. 하지만 ‘직장 다니는 가장’의 까방권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웬만한 성질 발광으로는 안 된다. 직장 다니는게 힘드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대한민국이 이해해주려 하기 때문이다. 더 힘을 내서 애들을 패기 시작해도 사실 성공률이 높지 않다. 아버지가 좀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믿음이 있고, 아빠에게 대든다, 무시한다, 버릇없다 등등 갖다 붙일 핑계도 많기 때문이다. 이 강력한 까방권에서 탈출하려면 딸자식 성추행 정도는 되야 나쁜 아빠 소리 들을 수 있다. 그나마 술기운이었다, 실수였다, 뭐 이런 변명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다만. 

 

주식한다 보증선다 해서 재산 말아먹거나 실직했다면 드디어 나쁜 아빠 될 수 있을 것 같다면 착오다. 돈 안 벌고 집에 있으면서 집안일 손가락 까딱 안하면서 수십년 사는 남자들 널렸다. 직장 잃는 순간 그 초강력 테플론 디펜스는 잃지만 그래도 여기에 폭력 주사 폭언 외도 그 외 학대를 합하지 않으면 나쁜 아빠 타이틀은 힘들다. 집안일 조금이라도 돕는다면 뭐 말 할 것 없이 게임 오버다. 돈 못 벌어온다고 무시당하지만 그래도 자존심 굽히고 집안일 돕는, 안쓰러운 가장으로 등극. 쓸쓸한 현악기 4중주가 BGM 으로 깔린다. 대한민국이 같이 울어준다.

 

나쁜 아빠는 심히 극약 처방으로 본인의 인간성을 부숴가며 노력하여야 될 수가 있고 나쁜 엄마는 육아와 살림의 그 많은 요구사항중에 하나만 빼먹어도 곧바로 데뷔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역차별이다. 

 

남자의 유리 천장. 안타깝기 그지 없다.​

 

 

필자는 현재 런던 Microsoft 에서 senior data scientist 로 일하고 있습니다. IT 경력 17년차로 개발자 출신입니다. 학부는 남아공 UNISA 에서 정외과, 석사는 영국 옥스포드에서 Software Engineering 을 했습니다. 결혼해서 애가 둘 있습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졸업하고 이민가서 어린 시절 거의 20년을 남아공에서 보냈습니다. 영국에 온지는 7년 되었습니다.​ 

양파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bizhk@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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