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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왼손잡이 의사(義士), 안중근과 봉중근

‘오른손(right hand)’이 ‘옳은(right)’ 손은 아니다

2016.10.26(Wed) 08:42:23

10월 26일은 기쁜 날일까, 슬픈 날일까, 아니면 아무런 날이 아닌 것일까? 이 질문은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여기에 대한 입장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10월 26일을 어느 특정한 해로 한정 지으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연관어 힌트가 나간다. ①하얼빈 역, ②이토 히로부미. 

 

이쯤이면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다. 오늘(2016년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우리나라 국적 제1호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지 꼭 107년이 되는 날이다. 김구 선생님을 테러리스트 수괴라고 공공연히 떠드는 시대에 겁도 없이 감히 안중근 ‘의사(義士)’라고 떳떳이 부르고 이런 퀴즈를 내는 까닭은 누리꾼들의 재치에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2016년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우리나라 국적 제1호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지 꼭 107년이 되는 날이다. 쇠사슬과 수갑이 채워진 채 호송되기 직전의 안중근 의사 모습과 1909년 11월 3일부터 이듬해 3월 26일까지 수감 생활을 했던 뤼순 감옥. 사진=안중근의사기념관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해인 2009년의 일이다. 3월 18일 미국 샌디에이고의 한 야구장에서 또 한 명의 의사가 탄생했다. 이 의사는 총 대신 공을 던졌고, 이 공이 무서운 상대방은 몸을 날렸다. 아니, 의사는 공을 던지지 않고 던지는 시늉만 했으며 날아오지 않는 공을 두려워한 그 사람에게는 ‘굴욕’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두 주인공은 봉중근과 이치로. 이날부터 누리꾼들은 한동안 투수 봉중근을 ‘봉중근 의사’로 불렀다.

 

나는 굴욕을 당한 이치로 선수 역시 좋아한다. 가끔 한국 사람들 가슴을 긁어놓는 말을 해서 미움을 많이 받지만, 그가 아시아 최고의 타자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이치로가 굴욕을 당한 까닭은 봉중근이 워낙 견제의 달인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봉중근이 견제의 달인인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그 이유는 많다. 그런데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왼손잡이라는 사실이다.

 

투수가 주자를 견제하려면 반드시 내딛는 발의 방향이 베이스를 향해야 한다. 우완 투수는 1루 주자를 등지고 서게 된다. 따라서 1루 주자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먼저 몸을 돌려야 한다. 몸을 제대로 돌리지 못해서 내딛는 발의 발끝이 1루를 향하지 않고 있으면 견제 규정 위반으로 피처 보크(balk)가 선언되어 모든 주자는 다음 베이스로 진루할 권리를 얻는다.

 

하지만 1루를 바라보고 서서 피칭하는 좌완 투수는 1루 주자의 움직임을 훤히 볼 수 있고 1루를 견제하기 위해 몸을 돌릴 필요가 없다. 따라서 1루 주자는 좌완 투수가 오른발을 든 다음에도 투수가 피칭을 하려는 것인지 1루 견제를 하려는 것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발을 든 다음 내디딜 때 발끝이 1루를 향해 있으면 정상적인 견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봉중근이 우완 투수였다면 이치로의 굴욕은 없었을 것이다.

 

사이클링 히트(cycling hits)는 야구에서 단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한 선수가 한 경기에서 모두 쳐냈을 때 붙이는 이름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1982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 프로야구 37년 동안 단 21번 나왔을 뿐이다. 사이클링 히트가 드문 까닭은 홈런보다 어려운 3루타 때문이다. 2015년 프로야구 시즌에서 홈런은 무려 1511개가 나왔지만 3루타는 겨우 202개뿐이었다.

 

왼손잡이는 3루타를 치기에 유리하다. 잡아당겨서 쳤을 경우 1루 선상을 빠져나갈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왼손 타자는 오른손 타자보다 1루까지 1~2미터나 덜 뛰어도 된다. 지금까지 나온 사이클링 히트 21번 가운데 13번을 오른손 타자보다 수가 적은 왼손 타자가 기록했다.

 

야구는 여로 모로 왼손잡이에게 유리한 종목이다. 그래서인지 뛰어난 야구 선수 가운데는 왼손잡이가 많다. 세계 최다 홈런 기록을 가진 배리 본즈와 아시아의 타격왕 이승엽 그리고 굴욕의 주인공 이치로, 그리고 그 옛날의 왕정치(오 사다하루)가 왼손잡이이며, 우리나라가 2009년 WBC 대회에서 우승할 때 대표팀의 1-2-3번 타자가 모두 왼손잡이였다. 일반적으로 왼손잡이가 10퍼센트에 불과한데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 가운데 30퍼센트가 왼손잡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야구에서는 왼손잡이가 세 배나 우대받는 셈이다.

 

봉중근이 견제의 달인인 것은 왼손잡이이기 때문이다. 2009년 3월 WBC 출전 당시 ‘봉중근 의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왼손잡이에 대한 우대는 야구계를 벗어나면 뚱딴지같은 소리가 된다. 오른손잡이는 잘 모르겠지만 왼손잡이의 삶은 고단하다. 우리나라에 왼손잡이가 400만 명이나 있지만 왼손잡이용 칼, 가위, 공구 같은 것은 특별한 쇼핑몰에서나 구할 수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문 손잡이나 화장실의 화장지걸이도 왼손잡이는 고려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대학 강의실에는 왼손잡이를 위한 개인용 책상이 하나도 없다. 인도나 태국 같은 나라에서는 왼손으로 물건을 건네거나 악수를 청하면 욕을 먹고 심지어 따귀를 얻어맞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자식 가운데 왼손잡이가 있으면 “저게 사람 노릇이나 할 수 있겠나…….” 하는 걱정에 왼손을 꽁꽁 묶어 쓰지 못하게 하여 오른손잡이로 교정하려고도 했다. 하긴 오죽하면 ‘오른손(right hand)’이 ‘옳은(right)’ 손이겠는가? 하지만 오른손이 옳은 손인 것도 아니며, 역사를 보면 우파(right)가 항상 옳은(right) 것도 아니었다.

 

오른손잡이는 계산과 이성을 담당하는 왼쪽 뇌가 발달한 사람이다. 왼손잡이는 반대로 창의력과 감성을 담당하는 오른쪽 뇌가 발달한 사람이다. 그런데 가만 주변의 왼손잡이들을 보시라. 그들은 양손을 다 잘 쓴다. 양쪽 두뇌가 모두 활발하다는 뜻이다. 만약 자신의 자녀가 왼손잡이라면 오른손잡이로 교정하려 들지 말고 양손을 모두 잘 쓰도록 도와주는 게 옳을 것이다. 정작 옳은(right) 것은 오른손이 아니다.

 

봉중근 의사는 왼손잡이다. 그러면 우리의 진짜 안중근 의사도 왼손잡이였을까? 그렇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감옥이 아니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셨다. (#그런데_최순실은?)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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