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25일 국내총생산(GDP)이 전년동기에 비해서 2.7%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2분기 3.3%였던 경제성장률이 2.7%까지 떨어졌지만 이마저도 정부가 힘쓰지 않았으면 더욱 추락할 뻔했다. 3분기 경제성장률이 그나마 선방(?)한 데에는 정부의 부동산 시장 활성화 정책과 추가경정예산 집행 등으로 경제를 떠받친 것이 주요했다. 한국은행이 갤럭시 노트 S7 사태나 현대차 노조 파업 등에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로 유지한 것도 이러한 정부 지출을 감안한 것이다.
정부가 거품 논란에도 부동산 시장 띄우기를 지속하고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돈을 푸는 등 경제성장률에 집착하는 것은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 고용도 늘어나 국민의 삶이 나아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747’(경제성장률 7%·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7대 경제강국 진입)을 내세운 것이나 박근혜 정부가 ‘474’(경제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주창한 것도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 일자리가 늘고, 소득도 늘어난다는 일련의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한국 상황이 과거 1970~1980년대 고도성장기와는 다르다며 이러한 공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와 같은 고도성장기에는 제조업이 급격히 확장되면서 경제성장률도 껑충 뛰고 일자리도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지금은 제조업이 대부분 자동화되면서 그동안 일자리 창출을 주도해온 제조업 부문의 힘이 빠졌다. 실제로 경제성장률이 고용을 창출하는 정도를 보여주는 고용탄성치는 추락하는 추세다. 지난해 4분기 0.48이었던 고용탄성치는 올 1분기에 0.39, 2분기에는 0.33까지 떨어졌다. 이는 2010년 4분기 0.25 이래 5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2.8%에서 2분기에 3.3%로 상승했음을 감안하면 한국이 경제성장률을 올려도 고용은 이에 비례해 늘어나지는 않은 것이다.
올 3분기에 고용탄성치가 0.44로 다소 회복됐지만 여기에는 허수가 담겨져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추가경정예산을 대거 집행하면서 임시 근로자 수를 늘린 덕분이다. 정부는 9월에 추가경정예산 11조 원을 마련해 3분기에 80% 이상을 집행했다. 이제는 고용탄성치가 오른다고 해서 이것이 과거처럼 양질의 일자리와 연결되지는 않는 셈이다. 결국 경제성장률을 높여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고, 국민 삶의 질도 개선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변화했음을 정치권이 자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경제가 이미 고도성장기를 벗어난 데다 앞으로도 과거 같은 고성장을 이뤄낼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한국은 이미 선진국 문턱까지 와있는 상황이다. 선진국으로 가느냐, 마느냐에 있는데 과거 신흥국 때와 같은 고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일종의 환상”이라며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2%대 성장만 유지해도 경제성장률이 좋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에 따라 미국이나 유럽처럼 경제성장률보다는 고용에 정책의 무게를 옮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고용 없는 성장’ 시대에 들어선 선진국들은 고용률을 유지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위원회(Fed)가 명시한 두 가지 정책 목적은 고용과 물가다. 미국 금융시장도 매달 발표되는 비(非)농업부문 고용 증가율과 실업률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임기 말에 접어들었음에도 지지율이 55%로 고공행진을 하는 것도 사상 최저까지 실업률을 낮춘 덕분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이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제조업 위주에서 벗어나 법률이나 의료 등과 같은 서비스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 이런 제안을 수없이 해도 정부의 사고방식이 여전히 과거 고도성장기에 머물러 있다 보니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규제도 ‘할 수 있는 것’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을 정해서 많은 이들이 최대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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