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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백혈병 사과 진정성 의심돼”

인터뷰/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2014.05.28(Wed) 05:36:59

   


지난 14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산업재해로 의심되는 질환으로 투병중이거나 사망한 가족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고 관련 소송도 모두 철회하겠다”며 사과했다. 이와 같은 공식적인 사과가 있기까지 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반도체 노동자들의 작업환경과 백혈병 간 인과관계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았다. <비즈한국>은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를 만나 얘길 들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피해자들에게 사과는 했지만 백혈병과의 인과관계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았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나.

관련 연구를 한 입장에서 봤을 땐 진정성이 의심된다. 왜냐하면 원인과 결과를 떠나서 아픈 사람이 있으면 치료해주고 상처 입은 사람이 있으면 위로해 주는 것이 도리기 때문이다. 기업주라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근로자들의 건강과 안전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또 산업재해소송에 삼성이 보조 참가한 것도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게다가 삼성은 피해 가족들에게 언어
   


삼성이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으며 버틸 수 있었던 게 과학적 인과관계가 불명확하다는 거였다. 현대과학으로 그 인과관계를 밝힐 수 없는 건가.

과학적 인과 관계의 기준이 문제다. 사실 관련 연구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다. 이 정도면 과학적 인과관계가 있다는 게 내 입장이지만 많은 학자들이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회색빛을 띤 하얀 종이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누구는 하얀 색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회색빛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식의 논란은 결국 과학적 분석이 더 필요하다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예전 IBM이 미국 산업한마디로 말해 과학적 인과관계 파악을 학자들에게만 맡겨 둬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산재의 기준은 정책적으로 판단돼야 한다. 의사라면 아픈 사람을 고쳐야 한다. 기업주라면 근로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관점에 근거해 책임 있는 당국자들이 정책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삼성전자와 관련된 정책적 판단을 어떻게 내려야 한다는 건가.

삼성전자와 관련된 백혈병 등의 불행한 사고는 이미 발생한 것이다. 정부 정책은 재발방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재발방지는커녕 삼성전자가 도의적인 사과를 하는 데에만 7년이 걸렸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또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관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역시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체들이 노동 환경에 대해 투명하게 밝히라는 것이다. 투명하게 밝혀야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 등은 영업 비밀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사람의 안전보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기업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이런 일은 계속될 것이다.

   


삼성전자 말고 다른 기업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많은가.

안전보건공단 통계에 따르면 1년에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만 2000명 이상이다. OECD국가 평균의 열 배다. 업무상 질병은 축소 보고되는 경향이 있으며 하청업체의 경우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산재신청을 하려면 노동조합에 가입돼 있거나, 사망하거나 퇴사를 각오해야만 할 수 있다. 산재관련 피해자가 통계보다 더 많을 거란 얘길 하려는 게 아니다. 관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얘길 하려는 거다. 노조에 가입되지 않았거나 하청업체 직원들의 경우 아예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사내 하청이 큰 문제다.이 밖에 삼성이나 애플 등이 제3세계에 가지고 있는 공장 노동자들에 관한 제대로 된 연구는 전혀 없다.

앞서 제기된 문제점들을 개선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새로운 무엇이 필요한 게 아니다. 반올림의 활동가들이 각계각층의 수많은 사람을 만나 만든 것이 ‘삼성 직업병 대책 요구안’ 11개 항목이다. 이미 공론화 과정은 충분히 거쳤다. 국회에서도 여러 번 논의된 걸로 안다. 공론화 과정에서 빠진 건 삼성뿐이다. 반올림의 요구가 왜 받아들여지지 않는지에 대해 알 수 없다. 나는 직업병을 연구하는 의사일 뿐이며 삼성이 기업주로서 기본적인 소임을 다하길 바랄뿐이다.

구경모 기자

chosim34@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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