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속담에 ‘멋쟁이는 벨트를 보면 알 수 있고, 신사는 구두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멋쟁이면서 신사인 사람은 시계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남자가 가장 먼저 눈뜬 명품도 벨트였다. 넥타이도 비슷하다. 가장 잘 보이는 중심에 넥타이와 그 아래로 벨트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이 명품 구두였다. 그래서 남자들의 명품 소비를 보면 대개 벨트에서 시작해서 구두로 넘어갔다가 수트로 넘어간다. 점점 비싸지는 순서다. 그리고 간이 좀 더 커지면 시계로 간다.
사실 시계는 시간을 보기 위한 도구지만 더 이상 그게 시계를 차는 이유가 아니다. 시간은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본다. 차에도 있고, 컴퓨터에도 있고, TV에도 있고, 빌딩의 전광판에도 있고, 어디든 고개만 돌려도 온통 시계 천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고가의 시계에 관심을 가지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나이 50에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지 않은 남자는 실패한 인생이다.” 프랑스 광고계의 거물 자크 세겔라가 한 말이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치적 후원자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푸틴 대통령은 롤렉스 애호가로 잘 알려져 있다. 화려하고 고급스런 롤렉스를 찬 푸틴은 서민이 아닌 부유한 이미지가 되어 정치적으론 손해다. 그래서 그를 변호하기 위해 롤렉스를 사치의 상징이 아닌 성공한 남자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러시아 대통령이란 최고로 성공한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롤렉스는 사치가 아니라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일종의 성공의 징표 같은 메시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실제로 롤렉스는 국제적으로 성공한 정치인들에게 무료로 시계를 제공하는 마케팅을 하기도 했다. 명품 시계는 자연스럽게 남자들에겐 성공의 상징, 사회적 성취를 드러낼 과시적 도구로 더욱더 확고히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물론 비싼 시계를 차야만 멋진 건 아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350달러짜리 조그 그레이 시계를 차고,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150달러짜리 스와치 시계를 찬다. 물론 이들에겐 다른 비싼 시계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이미지와 스타일에 맞는 시계를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시간을 보기 위해 탱크 시계를 착용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태엽을 감아준 적도 없다. 꼭 차야 하는 시계이기 때문에 탱크를 착용할 뿐이다.” 까르띠에의 탱크 시계를 즐겨차던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이 한 말이다.
남자에겐 시간을 보려고 시계가 필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드러낼 도구로서 시계가 필요하다. 필기하려고 몽블랑 만년필이 필요한 게 아니고, 이동수단으로서 벤츠나 BMW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비싸고 유명해서 좋아하는 것과 자기 취향에 맞고 자신에게 잘 어울려서 좋아하는 건 큰 차이다. 전자보단 후자가 훨씬 더 멋지다. 스타일과 클라스는 돈이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취향과 안목이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시계는 고가의 사치품으로 자신을 드러낼 과시적 도구이면서 작지만 복잡한 기계다. 남자는 기계에 대한 탐닉이 패션에 대한 탐닉을 앞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남자 가운데에 유독 얼리어답터가 많고, 기계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전통적으로 남자가 가장 좋아하는 두 개의 기계가 있는데, 하나는 자동차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시계다. 자동차는 남자의 장난감이자 탈 수 있는 최고의 일상 기계다. 시계는 작지만 그 속엔 아주 집약된 장인의 손재주이자 고도의 기술이 들어가 있다. 그것도 디지털이 판을 치는 시대에 고가의 아날로그 기계인 것이다. 당신의 손목에 어떤 시계를 올려둘 것인가? 이건 당신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패션이다.
그리고 그 어떤 시계보다 중요한 게 시간 약속 개념이다. 수천만 원짜리 명품 시계를 차고 있으면 뭐하나, 시간 약속을 상습적으로 어기는 사람이라면 곤란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비즈니스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작지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약속 시간이다. 데드라인은 마감시한을 뜻하지만, 죽을 각오로 지켜내는 약속된 시간이란 의미다. 약속 시간에 늦고서 차가 막힌다거나 하는 뻔한 변명을 상습적으로 내뱉는 사람과는 결코 다음 비즈니스를 하지 말아야 한다. 시간조차 못 지키는 사람과 무슨 큰일을 논하겠나?
시간을 보려고 시계를 차는 시대가 아니지만, 시간의 중요성은 과거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 더 바빠졌고, 더 치열해진 시대, 내 시간이 중요한 만큼 남의 시간도 중요하다. 결국 남자의 클라스를 올려주는 건 비싼 시계보다 약속 시간 잘 지키는 상식일 수도 있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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