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서울과 부산에 있는 청안건설 관련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것은 지난 7월 21일. 청안건설은 부산 해운대 미포에 들어서는 초대형 주상복합단지 엘시티(LCT)의 시행사인데,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부산을 주 무대인 중견 건설사에 대한 단순한 비자금 사건 같지만, 청안건설 이영복 대표가 지역 내 정치인, 공무원은 물론 법조인들에게까지 엄청난 ‘로비’를 했다는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사건은 게이트로 비화할 조짐이다.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부장검사 조용한)가 이 대표에게 적용한 혐의는 520억 원대 횡령과 사기. 검찰은 자금책이었던 청안건설 임원 박 아무개 씨를 구속하는데 성공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던 수사는 그러나 이영복 청안건설 대표가 자취를 감추며 벽에 부딪혔는데, 검찰은 소환에 불응한 이 대표를 지명 수배한 상태다.
이 대표가 중국으로 숨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지난 국감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은 부산 최대 건설사업인 엘시티 비리사건을 두고 검찰이 늑장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엘시티사업 시행사인 청안건설 이영복 대표의 신병을 확보하지 않는 이유가 판검사 로비장부 때문이라는 의혹도 제기 됐는데, 중국 도피설에 대해서 검찰은 “국내에 있는 것은 확실하다”며 “수사망을 좁히고 있는 중”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엘시티 특혜 의혹이 뭐길래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걸까. 건설업 관련 각종 인·허가를 책임진 부산시가 가장 먼저 거론된다. 조성원가 2330억 원의 부지를 부산도시공사를 통해 엘시티 측에 2333억 원이라는, 사실상 헐값에 판매토록 한 것이 부산시다. 건축물 높이가 최고 60m로 제한됐던 구역을 400m까지 높여줘 101층 초고층 건물이 건축되도록 하는 허가도 서슴없이 내줬다.
부산시 예산도 투입됐다. 엘시티 주변 도로 확장에 300억 원을 쏟아 부었는데, 특히 사업자가 시공해야 할 공용도로 조성 등에서 1000억 원가량의 혈세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스럽게 특혜 제공자로 전·현직 부산시장의 이름이 흘러나오는 상황. 검찰 관계자도 전·현직 시장을 언급하며 수사선상에서 배제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부산시가 우선 거론되지만, 법조계도 엘시티 게이트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대표가 부산 지역 법조계 인맥들에게도 뒷돈을 줬다’는 의혹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 대법원의 한 고위 관계자는 “부산에서 근무할 때 이 대표와 관련된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며 “이 대표한테 돈을 받아도, 절대 입을 열지 않아 ‘자물쇠’라는 별명이 있다, 한 번 검찰 수사를 받았는데 그때도 전혀 입을 열지 않아서 더 편하게 받아도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털어놨다.
실제 이 대표는 지난 1990년대 ‘부산판 수서사건’으로 불리는 ‘다대·만덕지구 특혜의혹 사건’의 핵심인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당시 수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이 대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고 홀로 책임을 지고 갔는데, 그 덕분에 정·관계 인사들이 그의 재기를 도왔다는 것. 이 대표에 대한 믿음이 커지면서, 그의 돈은 받아도 된다는 소문이 돈 것도 당연한 결과다.
대법원 관계자도 “우리(대법원)도 나서서 어느 정도나 이 대표와 연관된 법조인이 있는지 알아봤는데, 판사보다는 검사들의 이름이 주로 나오더라”며 “아무래도 건설업계다 보니, 부산시-국회의원 등이 우선 검찰 수사를 받게 되겠지만, 부산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 법조인들하고도 어울린 것은 사실”이라고 걱정했다.
이번 검찰 수사는 과거 이 대표가 받았던 것과 다르게 진행될 가능성도 높다. 특히 잠적한 이 대표가 이번에는 마음을 바꿔먹었다는 소문이 법조계에 퍼지고 있다. 또 다른 대법원 관계자는 “자물쇠로 유명한 이 대표가 또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이번에는 모두 털어놓을 것’이라고 벼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이 대표가 입을 열면 정·관계뿐 아니라 법조계로도 게이트가 불거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내다봤다.
이 대법원 관계자는 “이 대표가 검찰과 불구속 수사를 전제로 거래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고 귀띔했는데, 이에 대해 검찰 측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이 대표가 어울렸다는 법조계 인사들이 하나둘 거론되고 있는데, PK(부산·경남) 출신 전 검찰 최고위 관계자의 이름도 나온다. 부산지검 관계자는 “이번 수사로 어떻게 불똥이 튈지 모른다”면서도 “우리 검사들이 관련됐다는 소문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건설업자를 위해 검찰이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는데 이 대표에게 돈을 받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 단순히 어울린 것으로 처벌할 수는 없어서 내부 감찰 등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남윤하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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