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눈물이 없는 사람은 그 영혼에 무지개가 뜨지 않는다.’
인디언 격언이다. 손미량의 그림을 보면 이 말의 촉촉한 느낌이 와 닿는다.
그는 인물을 그린다. 아주 전통적 방식으로. 탄탄함이 묻어나는 심지 깊은 그림이다. 인물 표정에는 깊은 슬픔이 스며들어 있다. 그런데 슬픔으로만 한정짓기에는 무언가 허전함이 보인다. 슬픔의 범위를 넘어서 인간 존재의 근원적 비애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꼼꼼하게 그려서 나타나는 사실성이 아니라 화면 속에서 바깥으로 우러나오는 사실성 때문이다. 물기 머금은 붓질을 여러 번 겹쳐 칠해 인물을 그리는 방법으로 이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작정하고 슬픈 표정을 묘사하듯 그린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슬픔이 배어나오도록 그려낸 작가의 솜씨가 일품이다. 투명한 색채의 막이 켜켜이 쌓여 빚어낸 깊이의 느낌 탓이리라.
캔버스 위에 유채로 그렸는데 기름기가 전혀 없다. 그래서 더욱 처절한 슬픔이 보인다. 손미량은 왜 이처럼 슬픈 얼굴을 그릴까.
자신의 외침이기도 한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 시대를 오롯이 예술가로 살아낸다는 일. 자신의 정체성에서 뽑아낸 ‘그림’이라는 화두 하나만 잡고 꿋꿋이 걸어가는 예술가에게 이 길은 팍팍한 현실일 수밖에 없다. 그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예술가의 초상은 이처럼 검은 슬픔으로 보일 게다.
그런데 손미량은 이를 극복하듯 보인다. 최근 작품은 어둠으로부터 밝음으로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작가 자신의 내면만 바라보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주변과 자신의 터전에 애정을 표현하는 작품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심의 대상이 지금 눈앞의 현실에서 자신의 역사로 바뀐 것이다. 오늘 이 시간, 환경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개인사를 통해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내려고 한다.
가족의 초상을 소재 삼고 있는데, 우선 밝은 화면을 보여준다. 딸의 어린 시절을 모티프로 한 작품은 시간의 두께가 빚어낸 인생을 이야기한다. 이젠 성인이 돼 버려 동심의 따스함과 멀어진 딸의 모습에서 작가는 자신을 본다. 그 순진무구함이 오늘 작품에만 몰입하는 자신을 만들었다고. 나이 먹어 현실의 실체를 체감하지만 순수했던 시절의 행복한 추억이 지금을 살아내는 힘이라고.
어린 시절 일상의 기억은 숙련된 데생력이 잘 드러나는 사실 묘사로 다듬었고, 배경이 되는 시간의 흐름은 추상적 방식으로 배치하고 있다. 이런 그림을 보면서 회화의 힘과 동심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된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