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가 발달하기 전, 금강하류 가장 목 좋은 곳을 차지하는 강경포구는 바다를 통해 전국에서 들어온 물자들이 부려지는 대표적인 포구였다. 반대로 이곳에서 실린 온갖 것들은 다시 뱃길을 통해 나갔다. 그 덕에 강경은 평양, 대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시장이 있을 만큼 영화를 누리던 곳이었다. 이 물건 많고 돈 많고 사람 몰리는 강경은 마을의 규모에 비해 근대 문물의 유입이 가속화된 독특한 사연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논산의 오랜 도심, 강경에서 만나는 근대문화유산
논산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여전히 많은 이들의 표정에는 물음표가 떠 있음을 감지한다. 특히 이곳 육군훈련소를 거쳐갔던 이 땅의 남자들이라면 ‘그 돌아보기도 싫은 곳을 왜?’ 하는 반응까지 더해진다.
그러나 논산 곳곳에는 의외로 의미 있는 여행지가 많다. 황산벌 전투의 현장이었던 까닭에 계백 장군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고, 삼국과 그 이후, 그리고 현재 우리의 전쟁사를 엿볼 수 있는 백제군사박물관도 흥미 있는 명소이다. 너른 호수를 따라 드라이브 즐기기 좋은 탑정호는 요즘 새벽 물안개가 한창인 낚싯꾼들의 보금자리이다. 게다가 귀의 길이가 어른 키를 훌쩍 넘기는, 총 길이 19m의 거대한 미륵불을 모신 고려 사찰 관촉사는 불자들의 성지이자 문화 유적의 보고로 이름 높다.
여기에 논산시 강경읍, 그냥 강경이라고 불리는 게 더 익숙한 곳을 여행 리스트에 더해본다. 강경은 꽤 오랫동안이나 논산의 중심이자 도심(?)의 역할을 해왔다. 그 흔적은 지금도 여전하다. 분명 행정 구분은 ‘논산시 강경읍’으로, 이웃한 ‘신생’ 논산에 편입이 되었지만 논산경찰서,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 대전지방검찰청 논산지원 등 주요 관공서가 강경읍내에 자리하는 점이 그렇고, 논산의 내로라하는 명문 중고등학교들 역시 강경읍 계백로를 따라 사이좋게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골목 이곳저곳에 숨은 근대문화유산 역시 강경의 ‘왕년’을 생생히 알려준다. 강경의 근대문화유산은 전성기 강경을 탐냈던 일제에 의해 남겨졌거나, 혹은 근대 서구의 종교와 문화를 받아들였던 것들로 크게 나뉜다. 독특한 것은 서구 종교나 근대적 생활 양식을 자생적으로 일찌감치 받아들였던 분위기가 강경의 근대를 대표한다는 점이다. 서해에서 금강을 따라 들어올 때 처음 닿는 항구였다 보니 외국인 선교사에 의한 종교 부흥의 분위기도 상당했고, 문화 흡수도 빨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강경읍내의 근대문화유산은 걸어서 서너 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정도이다. 강경역을 중심으로 논산 방향으로 15분 정도를 걸어가면 강상고등학교에 닿는데, 교내에 있는 교장 관사가 1930년대 독특한 건축양식을 드러내는 근대문화유산이다. 1920년 논산 일대 최초로 생긴 중등교육기관이고 개교 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이 건물의 존재감을 대신 말해준다. 강경공립상업학교 당시 교장 사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높은 천장과 복잡한 복도 좌우에 여러 개의 공간을 배치한 전형적인 당시 일본식 개인 주택 구조이다. 개보수를 거쳐 지금도 학교 시설의 일부로 사용되고 있다. 근대 건축물 외관에 에어컨 실외기가 달린 모습이 이채롭다.
걸어온 길을 되짚어 읍내로 들어서면 강경중앙초등학교 교정에 1937년 지어진 강당 역시 근대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학교 정문에서 마주 보이는 제법 웅장한 이 강당은 1937년 6월에 체육관 겸용으로 지어졌다. 콘크리트 기단 위에 붉은 벽돌로 쌓은 규모에 여전히 강당으로 사용된다. 실제 전국의 많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건축물을 찾아보면 실제 제 구실을 하거나 외관 등이 건재한 것들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아마 영원히 이 땅을 지배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헛헛하다.
100년 역사 속으로 한 걸음 더
강경의 주요 학교들이 늘어선 계백로에서 주택가와 시장, 그리고 강경에서 가장 높은 언덕인 옥녀봉에 이르는 길 곳곳에서도 근대문화유산 여행은 이어진다.
1923년 2층 규모에 한식과 일식이 고루 가미된 기와 지붕 양식으로 지어진 (구)남일당 한약방은 강경의 상업이 번성하던 시기 시장 가까이에 자리해 오랜 세월 유명했던 추억의 공간이기도 하다. 1920년대 촬영된 강경시장 전경 사진에서 보이는 건물들 가운데 현존하는 유일한 것이다.
또 강경시외터미널에서 머지않은 (구)한일은행 강경지점은 강경의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으로 손꼽히는 건물이다. 층고는 높지만 1층 구조로 르네상스풍 절충주의 양식의 근대식 서양 건축물로 지어졌는데, 한호농공은행 강경지점에서 시작,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강경을 통해 일본으로 물자를 수탈하고 들여오는 식민지 경제 활동의 거점 역할을 한 셈이다. 해방 이후에는 한일은행, 충청은행 등의 강경지점으로, 또 한때는 젓갈창고로 사용되었던 아픈 사연도 담고 있다.
현재 논산시에서 매입, 역사박물관으로 개조해 일반에 개방하고 있으며, 강경의 옛 역사를 증언하는 사진 자료, 옛 물건들, 1920~30년대 옛 소방 기구 등이 전시되어 눈길을 끈다.
포구 쪽으로 발길을 틀어 시장통을 지나가면 옛 강경노동조합 건물에 이르게 된다. 내륙으로의 물류가 거쳐가는 관문이자 큰 장이 섰던 기세등등했던(?) 강경의 과거를 잘 말해주는 유산이다. 수산물 유통과 관련해 설립된 노동조합이 이 건물을 중심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 1925년 한식 목조 2층 건물로 지어졌지만 지금은 개축을 통해 단층으로 남아 있다. 주변에 젓갈 유통 단지와 업체들이 밀집해 있어 옛 정황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하게 한다.
여기서 금강과 포구의 풍경, 그리고 강경읍내를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해발 43m의 옥녀봉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올라간다.
이곳에 가는 동안에 만나는 붉은 벽돌 외관에 암회색 기와 지붕을 올린 강렬한 외관의 북옥감리교회 역시 1923년에 지어진 근대문화유산에 든다. 정면 4칸, 측면 4칸 규모의, 근대 시기 한옥 교회 건축 양식을 전국에서 유일하게 만나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건물인데, 전통적인 한옥 기와에 붉은 벽돌 외관과 회벽 마감 등의 공법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외관이다. 당시의 분위기에 따라 남녀 신자를 구분하기 위해 2개의 문이 나 있고 당시 가운데 가림막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지금도 교회 소유의 건물로, 순례를 오는 신자들을 위해 혹은 종교적 행사를 위해 비정기적으로 개방한다.
포구의 가을 풍경과 뭉근한 젓갈 내음을 마주하며
짧지만 은근히 가파른 길의 끝이 옥녀봉 정상이다. 공원으로 조성되어 평소에도 강경 주민들이 산책과 운동을 위해 즐겨 찾는 이곳은 강경 최고의 전망지로 손색없다. 유려하게 이어지는 강줄기가 발 아래 펼쳐지고, 한쪽으로는 강경읍내가 잡힐 듯 생생하다. 옛 포구의 기능은 거의 잃어버렸지만, 간혹 지나는 어선들은 강줄기에 기다란 수문을 남긴다.
기왕이면 가을 낙조가 내려앉을 즈음 이 옥녀봉에 오르기를 권한다. 저만치 탁 트인 포구와 강물에 진한 주홍빛에 내려앉아 따듯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물론 해안과는 또 다른 정감 어린 풍경을 남기려는 이들의 촬영 포인트로 인기 있다.
그래도 강경까지 왔는데 젓갈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조금 과장되게 말해서 읍내 시장 주변으로 한 집 건너 크고 작은 젓갈 가게를 마주치게 될 것이다. 골목골목 스며 나오는 젓갈의 구미 당기는 비릿한 내음도 인상적이다. 서해의 해산물이 처음 부려져 내륙으로 보내지던 강경의 역사는 이 고장이 젓갈이라는 저장법에 통달하게 된 충분한 이유가 되어 주었다.
논산은 들르지 않아도 강경은 들러 젓갈을 사 가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을 만큼 강경은 ‘젓갈’ 하나로도 충분히 높은 인지도를 자랑한다. 그 인기를 말해주듯 매년 가을이면 전국에서도 규모나 전통, 내실로 따져 최고 축제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강경젓갈축제(올해는 지난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가 열린다.
그러고 보면 강경의 젓갈이나 풍부한 근대문화유산이나 이 작은 동네가 오랜 시간 넘치게 누려왔던 물류 유통의 전성기를 말해주는 증거가 된다. 여행지로 낯설었던 논산과 더불어 강경의 ‘화양연화’를 따라가는 여행, 이 가을에 마음 먹어 보시길.
여행 정보
강경 여행 정보
논산문화관광 http://tour.nonsan.go.kr
강경젓갈타운 정보화마을 http://jeokkal.invil.org
남기환 여행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