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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덕은 ‘천국’에 온 기분] This is Anfield “노스웨스트더비 현장을 가다”

90분 내내 집중하는 팬들 모습이 인상적

2016.10.19(Wed) 19:35:27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 빌 샹클리의 일화라고 알려진 장면 하나. 어느 날 빌 샹클리가 청년을 만나 물었다. “자네 어디서 왔는가?” 청년이 대답했다. “런던에서 온 리버풀 팬입니다.” 그러자 빌 샹클리가 말했다. “그럼, 천국에 온 기분이 어떤가?”

 

지난 5월 UEFA 유로파리그 리버풀과 세비야의 결승전 당시, ‘비즈한국’은 경기도 안양의 스포츠펍 ‘리버풀’을 찾아 그 현장 열기를 전한 바 있다. 이후 5개월이 지났다. 이번에 기자는 아예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와 영국 리버풀의 홈구장 안필드로 왔다. 리버풀과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노스웨스트더비’를 직관(직접 관람)하기 위해서다. 빌 샹클리의 말처럼 영국 리버풀 안필드 현지에서 천국에 온 기분을 전달하고자 한다.

 

리버풀의 홈구장 안필드 전경.


지난 17일(현지시각) 영국 리버풀. 킥오프는 오후 8시였지만, 일찍 안필드로 향했다. 2시에 안필드 스타디움 투어를 예매했기 때문. 경기는 6시간이나 남았건만 안필드 밥 페이슬리 게이트 주변에는 벌써부터 유니폼과 머플러를 두른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프레스룸과 선수대기실, 경기장, 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안필드 투어를 마치고 기념품샵에 정신이 팔려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5시가 됐다. 밖으로 나오니 이미 밖은 축제 혹은 전쟁 분위기였다. 도로는 경기를 보기 위해 걸어오는 더 콥(The Kop·리버풀팬 애칭)들이 점령했다.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고 위해 말을 탄 경찰들이 수시로 지나다녔다. 길거리 노점상에서는 상인들이 ‘노스웨스트더비’ 기념 머플러 등을 팔고 있었다.

 

리버풀과 맨유의 노스웨스트더비를 앞두고 안필드 앞에 모인 축구팬들.

 

 

한쪽에서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들렸다. 페이슬리 게이트 바로 맞은편 술집이었다. 정문으로 들어가려 하자 직원이 “이미 꽉 차 들어갈 수 없으니 옆문을 이용하라”고 말했다. 옆으로 돌아가니 술집 안에는 경기를 기다리는 콥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팬들은 이미 분위기에, 술에 얼큰하게 취해 술집이 떠나가라 응원가를 부르고 있었다.

 

7시쯤 경기장에 입장했다. 일찌감치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자리에는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 전체 관중석의 절반 정도가 차 있었다. 기자가 표에 적힌 좌석을 확인하고 자리에 앉자 옆자리의 나이 든 남성이 말을 걸었다. 60대 정도로 보이는 그는 이름이 ‘조’라고 했다. 기자에게 “어디서 왔느냐” “안필드는 처음이냐” “한국에도 리버풀 팬이 많느냐” 등등을 물었다. 그러더니 뒷좌석 자신의 친구에게 “이 친구 한국에서 축구를 보기 위해 처음 안필드를 방문했다. 기념이 되게 사진을 찍어주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동양에서 온 축구팬에게 같이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없이 친절한 조 아저씨였다.

 

경기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장내 아나운서가 우렁차게 선수콜을 하자 팬들이 따라서 선수들의 이름을 외쳤다. 선수들이 입장하고, 경기 준비를 마치자 모든 관중이 일제히 일어나 리버풀의 대표 응원가인 ‘유 윌 네버 워크 얼론(you will never walk alone)’을 부르기 시작했다. 안필드 내부는 소리가 울려 노래가 더욱 웅장하게 들렸다.

 

 

 

그렇게 EPL 최고의 라이벌전 가운데 하나인 리버풀과 맨유의 노스웨스트더비가 시작됐다. 결과적으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었다. 두 팀의 경기는 골이 터지지 않고 헛공방 끝에 0 대 0 무승부로 끝이 났다. 리버풀의 지역지 ‘리버풀 에코’에서도 다음날 헤드라인으로 “No Joy(즐거움이 없었다)”라고 적었을 정도였다.

 

‘리버풀 에코’ 10월 18일판 1면.


기자 역시 한국에서 TV로 이 경기를 봤다면 ‘이딴 경기를 보려고 새벽 4시에 일어났나. 지금이라도 끄고 자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등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해외축구를 눈앞에서 처음 본 기자로서는 무척이나 재밌었다. 경기 내용보다도 관중들의 반응이 특히 흥미를 끌었다. 한국의 축구팬들과는 리액션의 강도나 타이밍이 조금 달랐다.

 

골이 터지거나 슈팅이 아깝게 빗나갔을 때 환호를 보내는 것은 같았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응원팀 선수들이 패스나 개인기로 위험지역에서 탈압박에 성공했을 때도 박수가 나왔다. 작은 플레이 하나하나에도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영국팬들은 경기 전에는 근처 술집에서 낮부터 술을 들이붓지만, 막상 경기장 안에서는 맥주는커녕 간식도 거의 먹지 않았다. 축구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TV로 볼 때와는 다르게 경기시간 90분 중 버릴 시간이 없었다. 조 아저씨는 전반 및 후반 시작과 동시에 손목시계의 스톱워치 시간을 맞췄다. 그러곤 경기 내내 초조한 듯 연신 시간을 들여다봤다. 그러다 보니 덩달아 기자까지도 경기 시간 1분 1초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렇듯 골 넣을 시간도 아까운데 리버풀의 선수가 어설픈 플레이를 한다거나, 실수로 공격권을 상대에 빼앗겼을 때는 냉혹하리만큼 냉정한 평가가 내려졌다. 표현이 거침이 없었다. 

 

시미즈 히데토의 저서 ‘누구보다 축구전문가가 되고 싶다’를 보면 축구의 궁극적 목적은 상대방의 골대로 향하는 가장 짧으면서도 효율적인 길을 찾아 공을 운반, 골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패스와 드리블은 모두 상대방의 골대로 가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그런데 경기 초반 리버풀의 미드필더 엠레 찬이 경기에 적응하지 못해 계속 공을 뺏기고, 혹은 경기 템포를 끊어먹는 백패스를 하자 “FXXX off(꺼져버려)”와 “BaXXXXX(개XX)” 등 육두문자를 퍼부었다. 특히 골키퍼 카리우스와 중앙수비수 로브렌, 마팁이 맨유의 강한 전방압박을 벗겨내지 못하면서 계속 백패스로 일관하자, 나중에는 카리우스가 공을 잡기만 하면 “Come on(제발)” “Horrible decision(끔찍한 결정이다)” 등의 욕설이 난무했다.

 

오히려 상대 맨유 선수들에 대한 코멘트는 거의 없었다. (물론 맨유 선수가 리버풀 선수에게 반칙을 했을 경우엔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을 내뱉었다. 맨유의 주장 웨인 루니의 경우는 예외였다. 이유는 필요 없었다. 후반 교체돼 들어가는 순간부터 루니는 이미 그의 부모 자식이 아니었다.) 

 

답답한 경기력에 거침없이 욕설을 퍼붓는 관중들.


경기가 막판까지 지루하게 진행되자 85분을 넘어선 시점부터 하나둘 관중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렇게 친절하던 조 아저씨도 정규시간 90분이 모두 지나 추가시간에 돌입해서도 골이 터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경기도 끝나기 전에 쿨하게 손인사를 건네곤 떠났다. (조 아저씨, 경기 끝나고 사진 찍어주신다면서요…ㅠ.ㅠ.) 

 

하지만 그 이유는 나중에 알 수 있었다. 기자는 경기가 끝나고도 남아 기념사진을 찍고, 여기저기 구경하느라 가장 마지막쯤에 안필드를 빠져나왔다. 

 

이 표지판을 볼 때까지만 해도 고생길의 시작인지 몰랐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안필드 주변은 교통지옥이었다. 주변도로는 집으로 가는 관중들이 점령해 버스의 진입이 한동안 불가능했다. 버스가 들어온 이후에도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선 사람이 길어 도저히 타고 안필드 인근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결국 숙소까지 걸어서도 1시간이 걸리지 않는 거리를 우왕좌왕 헤매다가 2시간 만에 도착했다.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서일까. 안필드를 나오니 콥들은 별다른 기쁨의 포효나 노래, 행진 없이 나름 조용하게 집으로 향했다. 그럼에도 몇몇 팬들은 경기가 끝나고 맞은편 술집에 모여 TV를 통해 위르겐 클롭 감독이나 주제 무리뉴 감독의 경기 후 인터뷰를 보며 분석을 하고 있었다.

 


콥들의 이런 모습을 보며 다시금 빌 샹클리의 명언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축구를 ‘생사가 달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태도가 아주 실망스럽다. 나는 여러분에게 축구는 그것보다도 훨씬, 훨씬 더 중요한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안필드 페이슬리 게이트 안에 위치한 빌 샹클리 동상.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사는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에서 도보로 불과 15분 거리에 위치한 맨체스터의 한 호텔에서 작성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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