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아니어서 미안해요, 엄마……. 제발 날 버리지 말아요.”
위의 문장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에 나오는 로봇 데이빗의 대사다. 불치병으로 냉동인간이 된 진짜 아들 마틴을 대신해 스윈턴 부부의 아들로 입양된 로봇, 데이빗. 마틴이 기적적으로 회생하게 되면서 버림받을 위기에 처하게 된 그는 자신의 주인인 ‘엄마’에게 자신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며 위의 대사를 말한다. 이때 그의 ‘생각’이란 0과 1로 짜인 코드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느껴지는 감정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 결국 데이빗은 버림받게 되지만, 엄마가 들려줬던 피노키오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진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피노키오를 사람으로 만들어 준 파란 요정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궁극의 인공지능 피노키오
1950년대 들어 각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여 인공뇌의 구현에 대하여 토론하기 시작하면서 인공지능은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인간과 같은 ‘궁극의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것은 모든 공학자들의 꿈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의 원리는 인간 두뇌의 모방에서 비롯한다. 하버드 대학의 교수인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가 “인공지능은 인지과학과 신경과학이 함께 연구하고 진행되어야 한다”라고 이야기한 데서도 알 수 있듯, 인공지능 연구에 있어 두뇌에 대한 의학적 연구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우리의 뇌가 정확하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의학과 컴퓨터공학의 발전에 힘입어 고무적인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2009년 폴란드에서 열린 고성능 컴퓨터 컨퍼런스에서 IBM연구진이 발표한 내용도 이에 해당한다. 그들은 자사의 슈퍼컴퓨터 시스템(Blue Gene)으로 인간 두뇌의 4.5%정도가 구현이 가능하며 고양이의 뇌는 전체가 구현 가능하다는 것을 밝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물론 이 시스템이 곧 고양이 인식 자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고양이의 뇌 용량에 해당하는 신경망 구축에 성공하였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의 뇌와 같은(mimic)시스템을 설계하고 만들어가는 방식은 인공지능 연구의 가장 기본적 방법이다. 요즘 들어 자주 듣게 되는 빅데이터(Big data)도 이와 같이 인간의 뇌신경망을 본떠 설계하고 프로그래밍한 시스템에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입력하면, 신경망이 스스로 학습하는 형식이다. 신경망(neural network)은 현재 인공지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기법으로 이름 그대로 우리 두뇌의 뉴런(neuron)들이 이루고 있는 네트워크를 모방한 것이다.
이 시스템의 작동 원리도 뇌와 동일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총 16개의 뉴런이 3개의 층(layer)에 나뉘어서 있다고 가정하자. 첫 번째 층에는 10개의 뉴런이, 두 번째에는 5개 뉴런이, 마지막 층에는 하나의 뉴런이 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층에 존재하는 이 뉴런들은 층을 넘어 서로 연결되어있다. 이제 0~9까지, 총 10개의 숫자 데이터가 첫 번째 층에 있는 뉴런 10개에 각각 하나씩 차례대로 들어간다.
뉴런들은 입력된 숫자 데이터를 각자의 정해진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입력 값이 그 뉴런의 역치 값(threshold value)을 넘어서게 되면 신호(signal)를 다음 층의 뉴런으로 보내게 되고, 넘지 못하면 아무것도 보내지 않는다. 이때 다음 층의 뉴런은 한 개 이상의 신호를 전 단계의 뉴런으로부터 받게 되는데, 이 신호들을 합(Sigma,)한 값이 자신의 역치 값을 넘어서는지를 다시 체크하게 된다. 이런 뉴런의 연결과 단계의 복잡도는 신경망이 어떻게 디자인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일련의 단계를 거치면 마지막 뉴런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결과가 나오게 되는 형식이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파란 요정 찾기
지금까지의 인공지능은 두뇌에 관한 극히 일부의 정보를 가지고 만든 것이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신경망 관련된 기술은 두뇌에서 정보가 흘러가는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뇌에 들어온 정보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있으나 이 정보를 어떻게 두뇌가 사용하는지 그 구체적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현재의 인공지능은 주어진 자료에 대한 분석, 분류, 판단은 가능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인지’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면, 인간은 나무에 달려 있든, 바구니에 담겨 있든 ‘사과’를 ‘사과’라고 인지한다. 그러나 현재의 인공지능 시스템은 이를 동일하게 ‘사과’라고 처리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인공지능 시스템은 기계적인 분류를 할 뿐, 인간처럼 개념을 ‘인지’한 상태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궁극의 인공지능을 만나는 것의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다. 최근 10년 동안의 혁신적 기술 발전과 각 분야 전문가의 협업은 본격적인 연구에 날개를 달게 했다. 우리는 인간과 같은 수준의 인공지능은 아니지만, 인간이 한 번에 알아내기 힘든 방대한 양의 자료에서 의미 있는 흐름을 찾아내는 수준까지 왔다. 피노키오를 사람으로 만들어 준 파란 요정 찾기는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피노키오를 꿈꾸며
올해 4월, 취리히 IBM연구소의 과학자들과 ETH스위스대학 연구팀이 소프트웨어적인 신경망 구현을 넘어 신경망을 본뜬 프로세서를 만드는 것에 성공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여기에 사용되는 새로운 인공 뉴런들(artificial-neurons)은 블루레이(Blu-ray)디스크의 저장 물질로 사용되는 안티몬 텔루르화 게르마늄(germanium antimony telluride)과 같은 물질을 사용하여 실제 뉴런에서 신호가 전달되는 생물학적 과정을 흉내 내었다.
이 물질은 전기적 신호(electrical pulse)에 의해 결정도(crystalline)가 변하며 인공 뉴런이 신호를 전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인공뉴런을 모아 하나의 다발로 만들어 마이크로 크기의 회로를 구성하여 처리 장치를 만들면 컴퓨팅파워의 획기적인 향상을 기대해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의 두뇌를 컴퓨터상으로 구현하려는 유럽의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Blue Brain Project)나 MIT의 마인드 머신 프로젝트(Mind Machine Project)와 같은 세계 각국의 제페토 할아버지들은 살아 움직이는 피노키오를 만들기 위해 연구 중일 것이다. 파란 요정을 찾았다는 소식이 곧 전해지기를 바라본다.
박중언 인공지능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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