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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전력 보니 삼성 제안에 ‘지뢰밭’

악명 높은 기업 사냥꾼, 지배구조 개편에 끼어들어 수익…거부해도 휘말릴 듯

2016.10.14(Fri) 09:45:59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전자에 한 제안을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엘리엇은 지난 5일 삼성전자 이사진 앞으로 ‘주주 가치 제고 제안서’라는 제목의 서한을 보내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할 것 △지주회사를 삼성물산에 합병할 것 △30조 원의 특별 배당 등을 요구했다. 삼성전자는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짧게 답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사실 엘리엇의 제안은 경영권 승계를 준비 중인 삼성이 내부적으로 준비하던 안과 비슷하다. 삼성전자는 그룹의 몸통인 전자를 쪼개, 삼성물산과 합하는 방법을 두고 고민해왔다. 관건은 이재용 부회장의 낮은 지분율(0.49%) 극복과 성격이 다른 두 회사를 합할 명분이 필요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비즈한국DB


엘리엇은 삼성의 고민을 꿰뚫어보고 명분 고민을 덜어줬다. 삼성전자의 지분 0.62%를 보유한 엘리엇이 삼성전자의 편에 선다면 삼성으로선 외국인 우호지분을 확보할 수도 있다. 이미 영국의 3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헨더슨글로벌인베스터스(지분율 0.12%)도 엘리엇의 제안에 지지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강하게 반대하며 경영권까지 위협한 엘리엇. 변심의 배경이 궁금하다. 엘리엇의 제안은 분명 삼성으로선 크게 손해 볼 게 없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장악력을 높이려면 전자의 주가가 낮게 떨어지고, 이 부회장 지분이 많은 삼성물산·삼성SDS의 주가가 오를수록 좋다. 이 상태에서 이들 회사를 일대일 합병하면 이 부회장의 전자 지분율은 대폭 올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삼각합병·역삼각합병 등 여러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의 기업 성격이 달라 주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지분의 50% 이상을 외국인 보유하고 있어 삼성전자의 기업가치 훼손을 좌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상태에서 주요 주주 중 하나인 엘리엇이 ‘기업 분할을 해도 된다’는 명확한 시그널(신호)을 날렸다. 외국인 주주의 반응을 떠보고 한편 여론몰이의 역할도 했다.

 

엘리엇이 30조 원의 특별배당을 요구했기 때문에 현재로선 명분 제공과 경제적 실익을 맞바꾸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엘리엇은 △삼성전자 지주사의 미국 나스닥 상장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독립적 사외이사 3명 추가 등의 요구도 했다. 기업 경영에 간섭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셈이다. 

 

엘리엇의 폴 싱어 회장은 기업사냥꾼으로 악명이 높다. 소액의 지분을 투자해 소액주주 운동을 벌여 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업의 경영권을 장악한다. 이후 구조조정·자산매각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고 지분을 정리한다. 이런 식의 투자법으로 1977년 130만 달러로 시작한 엘리엇은 연평균 14.6%의 투자 수익률을 올리며, 현재 290억 달러(약 32조 3495억 원) 수준으로 성장했다.

 

엘리엇은 M&A나 지배구조 개편 등 변화의 시점에 끼어들어 기업을 흔들고 수익을 거둬왔다. 2011년 미국 듀폰이 유럽 비료 업체 다니스코를 인수할 당시 다니스코의 주주였던 엘리엇은 이사회의 매각 가격이 지나치게 낮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지분율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이사회에 매각가 인상을 요구했다. 결국 듀폰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값에 다니스코를 매입했다. 

 

2005년에는 미국 유통업체 샵코의 매각에 반대해 자신의 지분 가격을 주당 24달러에서 29달러로 올리기도 했다. 2006년 인력 컨설팅업체 아데코가 독일 기업 DIS를 인수해 비상장사로 만들려 하자 이에 반발해 DIS 지분 가격을 주당 54.5유로에서 113유로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1월엔 일본 DMG모리세이키가 독일의 길드마이스터를 22억 유로에 인수하려 하자 엘리엇은 지분율을 단계적으로 5%, 15%로 확대하며 사업구조와 부채비율 개선, 배당 등 경영 전반에 개입했다. 삼성이 엘리엇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삼성물산과 합병하거나 나스닥 상장 시 지분가치를 높이거나 게 M&A 방식에 간섭할 여지가 크다는 뜻이다. 

 

법의 허점을 활용해 곳곳에 소송의 덫을 놓을 수도 있다. 엘리엇의 설립자 폴 싱어는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출신 변호사다. 엘리엇은 2014년 동아시아은행의 지분을 확보할 당시, 홍콩 재벌 데이빗 리는 경영권에 위협을 느끼고 동아시아은행 지분을 미쓰이스미토모금융그룹에 매각했다. 이에 엘리엇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주가치를 희석시켰다’며 소송을 벌인 바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재정위기에 빠진 것도 엘리엇의 소송에서 비롯됐다.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아르헨티나 정부의 국채 가격이 떨어지자 액면가 13억 3000만 달러의 국채를 4800만 달러에 사들여 소송을 통해 16억 달러를 받아냈다. 채권·채무 관계에서 채권자를 동일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국제법의 ‘파리 파수‘(pari passu) 조항을 이용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엘리엇은 지분 관련 소송에서 승소율이 60% 이상”이라며 “지배구조를 재편을 서둘러야 하는 삼성의 입장을 아는 엘리엇으로선 협상 및 전략적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엘리엇의 전력을 감안하면 삼성이 손을 잡을 경우 엘리엇의 덫에 걸려들 수 있다.

 

엘리엇의 제안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선택에 관심이 집증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만약 삼성이 엘리엇의 제안을 거절한다고 해도 문제는 끝이 아니다. 삼성으로선 엘리엇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먼저 공론화함으로써 행동에 제약이 생겼다. 내부 검토대로 삼성전자를 분할해 지주회사와 삼성물산을 합하면 엘리엇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셈이 된다. 그럼에도 30조 원의 특별배당과 사외이사 선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엘리엇은 외국인 주주들을 규합해 공격을 펼쳐올 공산이 크다. 

 

엘리엇은 지난해 삼성물산을 공격할 때도 네덜란드 연기금 등 33.97%의 지분을 가진 외국인 투자자 중 3분의 1가량을 포섭한 것으로 전해졌다. 엘리엇은 또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을 합병하면서 제일모직의 자산가치를 반영하지 않은 점을 꼬집고 국제 소송을 준비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합병 과정을 문제 삼을 소지가 충분하다는 얘기다. 

 

한 M&A 전문가는 “소송을 통해 잡음을 낼수록 엘리엇이 유리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며 “주가 책정 문제부터 불공정거래 의혹까지 문제 삼으면 삼성으로선 엘리엇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상속재산을 아끼려는 의도가 되레 헤지펀드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게 됐다”며 “종사자들과 국민경제의 이익과 부합하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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