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창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에는 높이가 보이지 않는다. 사각의 점들이 평면 속에 펼쳐져 있을 뿐이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생각한다. 저렇게 하찮은 데서 복닥거리고 살고 있구나. 그러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게 된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런 생각에 젖어들게 만드는 것이 류하완의 회화다. 그의 작품은 추상화처럼 보인다. 무수히 많은 사각 점들이 화면을 그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항공 촬영한 도시의 이미지 같아 보인다. 상상한 대로 작가는 우리가 사는 도시를 이런 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규격화된 도시의 삶. 문명 세계에 속한 모든 인류 삶의 행태를 류하완은 기하학적 추상처럼 보이는 화면으로 나타낸다. 그렇지만 그는 추상화가는 아니다.
도시라는 거대한 규칙 속에 속한 삶은 규격화될 수밖에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얘기다. 이처럼 빤한 얘기를 작품의 주제로 꺼내든 작가의 속내는 무엇일까. 교과서 같은 얘기를 지루하거나 진부하지 않게 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작품 속으로 들어가서 확인해보자.
류하완의 작품은 규격은 같으나 문양이나 색깔이 조금씩 다른 타일을 이어 붙인 것 같다. 규격화된 도시적 구조 속에서 서로 다른 삶의 무늬를 새기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즉 똑같은 구조와 모양의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각기 다른 가구와 실내장식으로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은 사실 모두 다르다. 생각이나 성격은 물론, 삶을 바라보는 태도, 사회적 기능, 직업, 일상적 습성이나 생활 패턴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멀리서 바라보면 같아 보인다. 규격화된 사각형 속의 삶으로 보일 뿐이다.
류하완은 이처럼 다른 모습의 삶을 자신이 개발한 회화적 방식을 통해 보여준다.
“마스킹 테이프의 성질을 이용한 작업입니다. 캔버스 위에 격자 문양이 나오도록 테이프를 붙이고, 물감을 칠합니다. 그리고 먼저 붙인 테이프와 조금 어긋나게 다시 테이프를 붙여 격자 문양을 만들고 물감을 바르죠. 이런 작업을 5~7회 정도 반복한 다음 테이프를 모두 떼어내면 규격화된 사각 점에 서로 다른 색감과 문양이 새겨지게 됩니다.”
작가가 선택한 방식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보여주고 있다. 회화의 어법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회화 재료의 효과를 적절하게 구사하고 있다는 말이다.
도시인의 삶에 정확하게 다가서서 회화 어법으로 번안해내는 류하완의 회화가 보여주는 또 다른 이야기는 격자무늬 자체가 담고 있는 은유다. 똑같은 모양으로 반복되지만 각기 떨어져 있는 독립된 개체라는 것. 즉 고립과 단절이 빚어내는 도시인의 고독. 그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원초적 고독의 의미와도 통한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