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빅뱅은 138억 년 전에 시작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빅뱅 역사는 2006년에야 시작한다. 8월 19일 지드래곤, TOP, 승리, 태양, 대성이라는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첫 싱글 ‘Bigbang’을 발표하였고, 추분 직후인 9월 23일 음악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에서 ‘La La La’로 데뷔하였다.
이때부터 TV와 라디오를 접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빅뱅을 알게 되었다. 너무 늦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미국 사람들이 빅뱅을 알게 된 것은 드라마 ‘The Big Bang Theory’를 봤을 때부터인데, 이 드라마가 처음 방영된 날은 우리보다 1년 늦은 2007년 가을, 그것도 추분 직후인 9월 24일이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대중문화는 과학문화 확산에 분명한 공이 있다. 구준엽과 강원래가 구성한 2인조 댄스 그룹 클론이 데뷔하고 ‘꿍따리 샤바라’로 한국 대중음악계를 휩쓸 때는 1996년이다. 쿵따리 샤바라가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인 1996년 7월 5일 최초의 체세포 복제 포유동물인 돌리(Dolly)가 탄생하였으며, 이것이 논문으로 발표된 때는 이듬해인 1997년 2월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독일에 살고 있었다. 독일 사람들이 ‘클론’이 무슨 뜻인지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한국 사람들은 이미 클론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가수 강원래가 도대체 클론이 무슨 뜻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미 자세하게 설명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4인조 여성그룹 f(x), 4인조 밴드그룹 나비효과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과학지수를 어느 정도는 높여줬다.
대중문화인만 과학적인 코드를 이용하는 게 아니다. 과학자들도 대중문화의 코드를 활용한다. 복제양 돌리의 이름도 그렇다. 돌리는 유전자를 제공한 어미 양의 젖샘에서 유전자를 채취했다. 과학자들은 이 점에 착안해서 가슴이 큰 미국 가수 돌리 패튼의 이름을 복제양에게 붙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과학과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특히 과학 대중화 또는 대중 과학화 운동에서 문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서로 긍정적인 효과를 주면 좋은데 묘한 경계가 존재한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맞추어서 2011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그전과 전혀 다른 과학 교과서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과학 교과서의 첫 단원이 ‘빅뱅’이다. 우리가 흔히 과학을 분류하는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이라는 칸막이가 사라졌다. 화학 시간에나 나올 이온과 이산화탄소의 구조가 우주를 배경으로 설명된다. 과학 개념은 역사적 흐름과 인문학적 맥락 속에서 소개된다.
당시 개편을 보고 나는 우리나라 과학교육에 혁명을 일으킬 하나의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가 썩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각각의 과목을 전공한 교사들이 갑자기 융합 교과서를 소화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교과서가 처음 언론에 공개되었을 때 대표저술가인 이덕환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교과서의 의의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예를 들어 기존 교과서에는 우주론이 없다. 역사적인 맥락, 인문학적인 배경이 없는 채 그저 별까지의 거리나 별의 밝기를 측정하고, 느닷없이 별자리도 배운다. 별자리는 서양 신화를 그려 넣은 것으로 과학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지식이다. 황도 12궁도 마찬가지다.”
내가 굳이 이 인터뷰를 찾아서 거론하는 이유는 실제 학교에서 과학교육을 하는 초등학교 교사가 여기에 불만을 터뜨리는 것을 직접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요지는 이렇다. “별은 아이들이 과학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다. 그리고 별자리만큼 별을 아이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 교과서를 집필하는 교수들은 그 의미를 모르는 것 같다.”
당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그 교사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초등학생들에게 별자리를 아주 재밌게 설명하였다. 정말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거기에는 별자리에 얽힌 동서양의 신화만 있고 과학이 없었다는 것이다.
별자리를 아직도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많다. 밤하늘의 별자리가 시간당 15도씩 움직이는 것으로 지구의 자전을 설명할 수 있고, 계절마다 별자리가 바뀌는 것으로 지구의 공전을 설명할 수 있다. 황도 12궁도 마찬가지다.
황도 12궁은 지금부터 적어도 5000년 전에 생긴 개념이지만 지금도 의미가 있는 까닭은 거기에 얽힌 신화를 알려주기 위해서라거나 별자리에 따른 운명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황도 12궁이 처음 생길 때는 황소자리에 있던 춘분점이 4000년 전에는 양자리로 옮겨갔다. 그리고 하필 예수가 태어날 무렵인 2000년 전에는 물고기자리에 있었다. (그리스어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의 첫 글자를 모으면 물고기라는 뜻의 ‘익투스’라는 단어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한때 기독교인들은 대문과 자동차에 물고기 마크를 달기도 했다.) 몇백 년만 있으면 춘분점은 물병자리로 옮겨간다. 황도 12궁의 온갖 별자리를 신화를 이용해서 설명하는 이유는 춘분점이 이동하는 이유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즉 2만 6000년을 주기로 일어나는 세차운동이 핵심인 것이다.
이것 외에도 별자리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 천문학에서 좌표는 중요하다. 오죽하면 ‘철학자는 자신이 누군지 찾는 사람이고, 천문학자는 자신의 위치를 찾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그런데 일반인들이 하늘의 좌표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밤하늘에서 어떤 특이한 천체 현상을 발견했을 때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줄 때 별자리는 유용하다. “처녀자리 오른쪽 위에 혜성이 나타났어.”라고 얘기하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다. 별자리는 하늘에 그려진 좌표인 것이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 그리고 세차운동과 우주의 좌표가 빠진 별자리 이야기는 그냥 신화다. 신화만 이야기하면서 과학으로 아이들을 이끌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일화를 설명하고서 부력을 설명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과학의 대중화란 어렵다는 이유로 본질적인 것을 빼고 주변 일화를 설명하는 게 아니다. 본질을 접근하는 수준에서 문화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과학의 대중화다.
별자리는 과학이 아니다. 그래서 천문학과에서는 별자리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하지만 별자리는 어린이를 과학으로 인도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별자리 교육이 느닷없느냐 의미가 있느냐는 거기에 얼마나 과학적인 내용을 담느냐에 달려 있다. 그저 쉽고 재밌게 설명한다고 그게 과학대중화 운동은 아닌 것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