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에 5대 냉면이니 7대 냉면이니 하는 말이 회자된다. 한때는 3대 냉면도 있었다. 어쨌거나 최근에는 ‘신흥 강호’들도 다수 새로 등장하면서 냉면집의 기호가 더 다양해졌다. 그래도 나는 오래된 집들에 간다.
냉면처럼 호오가 분명한 음식도 드물 것이다. 본디 남한 것이 아니니 더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원조 논쟁도 늘 잦다(메밀과 전분의 비율이 얼마여야 하는가 하고 논쟁을 하기도 한다. 첨언하면, 보통 메밀 6이나 7에 나머지가 전분인 경우가 평양식의 표준이다). 자주 가는 집 중에 첫 번째를 꼽는다면 을지면옥이다. 냉면 맛 좋고, 직원들 푸근하고, 주인들 정이 있어서다. 더 말하자면 몇 가지가 더 있다.
을지로3가역에서 5번 출구로 나오면 초행길에는 이 냉면집을 놓친다. 공구상이 길거리에 쭉 늘어서 있는데, 돌출간판이 없어서다. 돌아서 보면 지나와 있다. 차라리 2층 쪽에 ‘을지다방’이라는 상호를 찾으면서 가는 게 좋다. 1층 냉면집 입구에는 그저 푸른빛 페인트로 ‘을지면옥’이라고 써 있을 뿐이다. 아주 좁은 ‘복도’ 같은 길이 나온다. 이 길은 참 희한하다. 엄밀히 말해서 복도도 아니다. 공구상과 공구상 사이에 있는 묘한 공간이다. 길쭉한 길인데, 이곳으로 들어가면 바로 을지면옥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다시 길이 하나 나오고 그 너머에 가게가 있다. 참으로 특별하다고 할 구조다.
이 복도 아닌 복도로 들어서면서부터 손님들은 ‘북한’, 아니 이북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에 놓인다. 복도 좌우 벽에 빼곡하게 북한의 사진이며 지도, 풍물사진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실향민에게는 고향의 시공간적 착각(?)을 줄 수 있는 인테리어이며,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에게는 묘한 이질적 공간으로 새겨진다. 그리하여 곧 먹게 될 냉면 맛을 더 돋우는 노릇을 한다.
을지면옥은 흔히 ‘의정부 계열’이라고 한다. 1·4후퇴 때 남쪽으로 온 평양 출신의 김경필 할머니가 1969년에 연천에 냉면집을 열면서 시작됐다. 나중에 의정부로 옮기면서 이 상호가 유명해졌고, 김 할머니의 두 따님이 서울에 분점 삼아 열면서 서울사람들에게도 이 집 냉면 맛을 알리게 되었다고나 할까.
필동면옥, 을지면옥은 그렇게 생겨난 집이다. 두 집이 상당히 비슷하다. 고운 고춧가루를 뿌리고 고깃점과 다진 대파를 올려낸다. 아주 단순한 고명이다. 국물이 특히 맑다. 서울의 어떤 냉면집보다 맑고 투명하다. 면은 가늘고 메밀의 까슬까슬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런 특징을 합쳐서 의정부 평양면옥의 스타일이라고도 한다. 필동면옥은 최근에 면이 좀 쫄깃해진 면이 있어서 을지와 다른 길을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을지면옥의 국물을 들이켜면 속이 다 시원해진다. 맑고 청량한 맛이다. 무슨 사이다 광고 문구 같다. 을지면옥을 찾는 이의 다수는 이 국물이 해장에 최고라는 말을 덧붙인다. 한 대접 들이켜면 주독이 다 사라지는 것 같다고 한다. 을지면옥은 2층으로 되어 있다. 둘 다 객장인데, 오후에 느긋하게 한잔하려는 꾼들은 2층을 좋아한다. 제육이 일품이어서 소주가 너무도 잘 들어간다. 의정부 계열의 돼지 제육은 정말 다 좋은데, 필동파와 을지파가 나뉜다.
을지면옥을 좋아하는 이들은 ‘직원들’을 이유로 꼽는 이들도 있다. 직원들이 장기 근무자가 많아서 일이 시원시원하고, 편안해 보이기 때문이다. 직원이 여유가 없어 보이면 밥맛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을지면옥에서는 적어도 그런 문제는 적다. 아, 글을 쓰고 있노라니 2층의 한적한 구석에서 제육 한 점을 특유의 간장 소스에 찍어서 먹고, 맑은 것(?) 한잔을 들이켜고 싶어진다. 새로운 강자들이 속속 나오는 게 요즘 평양식 냉면집이라지만, 이런 강력한 장점을 가진 을지면옥은 단골이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원래 선주후면이라고 했다. 적어도 조선의 선비들과 술꾼들은 그런 관습을 즐겼던 것 같다. 어떤 이는 이를 일본의 관습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동양삼국의 공통적인 문화일 수도 있다. 술 한잔 마시고 국수를 해장으로 먹는 건 누가 하더라도 참 어울리지 않는가. 을지면옥으로 마음은 이미 달려간다.
박찬일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