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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협상의 첫걸음, 상대 의도 파악하라

2014.03.05(Wed) 17:55:19

우리 역사상 최고의 협상으로 ‘강동6주 협상’을 많이들 얘기한다. 그리고 이 협상을 이루어 낸 서희를 최고의 협상가라고 가르치고 있다.

국립외교원에는 서희와 거란의 적장 소손녕의 협상장면을 그린 대형 그림이 로비에 걸려있다. 딸 아이에게 읽어주던 역사 위인전에는 서희의 협상 장면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홀몸으로 적진으로 들어간 서희 장군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거란군을 이끄는 소손녕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네 이 놈, 우리의 국호가 왜 고려인줄 아느냐? 고구려의 대를 이었다는 의미에서 고려라 이름 지은 것이다. 이렇듯 우리 선조이신 고구려인들이 말을 타고 달리던 기상이 남아 있는 이 땅을 너희들이 어찌 감히 범접하느냐?”이 말에 거란군 전체가 겁을 먹고 군사를 물리어 강동 6주를 힘들이지 않고 획득했다고 전해 진다. 하지만 이런 얘기들은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는 될 지 언정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서희의 협상력은 우렁찬 목소리의 호통이 아니라 냉철하고 현실적인 감각과 유연성에서 찾아야 한다. 사실 거란이 고려를 침공했을 때 내걸은 명분은 ‘고려의 왕이 백성을 잘 다스리지 못해 하늘을 대신해 천벌을 내리러 왔다’ 였다.

이를 협상 강의에서는 position이라 부른다. 하지만 서희는 거란이 일으킨 군사 80만을 보고 이는 고려 점령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송나라와의 전쟁을 생각하고 송을 사대(事大)하는 고려를 사전에 정리하기 위한 목적임을 파악했다. 이를 interest라 부른다.

서희는 소손녕에게 앞으로 송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할 테니 군사를 물리어 달라고 한다. 상대의 position아 아닌 interest를 직접 공략한 것이다. 대신 본인은 얻어 낸 것 없이 빈 몸으로 조정으로 돌아갈 경우 송나라와의 친교에 적극적인 대신들이 본인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니, 작은 선물로 임자 없는 땅인 강동6주에 고려의 군사가 들어가 점령하는 것을 묵인해달라 부탁한다. 이는 거란에게도 큰부담이 가지 않는 반대급부이다. 이를 nibbling이라 부른다.

이처럼 모든 협상강의 첫 시간에는 상대방의 position(요구조건)과 interest(욕구, 진짜 의도)를 구분하라 가르친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한 의사결정 때문에 많은 협상이 실패하는 것이다. 이는 적절한 정보의 획득과 계속된 질문을 통해서 가능하다.

올해 방영된 ‘직장의 신’ 드라마에서 대대로 내려온 가업(家業)인 천일염 기술을 얻기 위해 대기업 직원들이 장인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할아버지의 기술을 상용화하면 금전적 측면에서 할아버지에게도 좋고 대기업에도 좋은 결과가 나오는 만큼 낙관적으로 기대하고 협상에 임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협상 테이블에 앉자마자 ‘억 만금을 줘도 천일염 기술을 넘겨주지 않겠다’ 고 말한다.

할아버지의 말에 실망한 직원들과 달리, 드라마 주인공 미스 김은 할아버지의 position으로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우회적으로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과거 한 대기업이 상용화 과정에서 품질을 소홀히 했던 기억에서 큰 배신감을 느꼈던 할아버지의 진짜 interest를 파악한다. 엄격한 품질관리 기준 보장과 생산과정 에서의 모니터링 등을 통해 상대의 interest를 만족시킨 미스 김은 제휴계약을 성사시킨다.

조직에서의 연봉협상뿐 아니라 심지어 아이들과의 용돈 협상부터 그 첫걸음은 position과 interest를 구별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월급을 올려달라는 요구 뒤에는 나의 자존심을 세워달라는, 용돈을 올려 달라는 요구 뒤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달라는 진짜 interest가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정세현 삼일회계법인 컨설팅 K&D부장

비즈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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