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국인의 체형이 서양인과 조금 다르다보니, 유럽에서 만든 비싸고 유명한 브랜드라도 다 멋이 나진 않는다. 그래서 많이 입어서 자기 체형에 맞는 기성품을 만드는 브랜드가 어디인지 알아두는 것도 좋고, 때에 따라선 살짝 수선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수제 맞춤을 하는 것이겠지만, 가성비를 따진다면 기성복에서도 자기 체형에 맞는 걸 찾으면 된다.
요즘 멋쟁이들의 슈트는 전반적으로 많이 타이트해졌다. 같은 40대라도 슈트의 핏만 보고서도 아저씨인지 ‘영포티’인지 알 수 있다. 핏이 몸매라인을 더 잘 살려주기도 하고, 더 세련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슈트 팬츠는 편한 게 중요하다. 재킷이야 앉아서 일할 땐 벗어두면 되니까 좀 타이트해도 괜찮지만 바지가 불편하면 하루 종일 일도 잘 안 된다. 너무 짧아서 양말이 윗부분까지 덩그러니 나오는 것도 격이 없어 보인다. 서 있을 때 구두를 덮지 않고 양말이 살짝 보일 듯 말 듯한 바지 길이가 좋다. 요즘 3040이 선호하는 길이인데, 이게 과거에 입던 폭넓고 구두를 푹 덮던 것보다 좀 더 젊어지고 활동적인 느낌이다.
찬바람이 불고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갈 때면 슈트만 입어선 좀 춥다. 그때는 셔츠 대신 터틀넥을 입는 것도 좋다. 너무 두껍지 않고 얇으면서 적당히 타이트하게 몸을 감싸는 게 좋다. 너무 격식 있는 자리가 아니라면 터틀넥을 입는 게 꽤 멋스럽고 지적인 느낌을 풍겨준다. 짙은 네이비 재킷이라면 브라운 터틀넥이 조화롭다. 개인적으로는 슈트와 터틀넥이 잘 어울리는 숀 코너리의 중후한 지성미가 드러나는 스타일이 좋다.
슈트 위에 트렌치코트를 하나 걸쳐도 멋스럽지만, 사실 슈트는 슈트 그 자체로 충분하다. 겨울엔 코트를 입어서 슈트를 덮어버리지만, 사실 자동차로 주로 이동하고 빌딩 안에 머무는 사람들의 경우엔 겨울에도 코트를 슈트 위에 입기보단 팔에 걸치거나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슈트의 소재도 중요하다. 싼 옷과 비싼 옷의 차이는 브랜드의 차이보단 소재의 차이에서 나오기도 하니까. 옷걸이에 걸려있을 때야 모든 슈트가 다 깔끔하고 구김 없어 보이지만, 이걸 입고 하루를 보낸 상태라면 소재의 차이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특히 슈트는 하루 입고 세탁하는 것이 아니기에 아침부터 구김 가득한 바지를 입은 건 참 보기 싫다. 아무리 구김 없는 바지라고 강조해도 소재가 고급이어야 더 믿을 만하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