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유해진다. 그러나 여기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끊임없이 분노하는 사람이 있다. 법조·경제 전문기자 출신 프리랜서 작가 권순욱 씨(49) 얘기다.
오랜 직장생활을 했지만 그의 표현은 길들여지지 않은 듯 거칠다. 몇 달 전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해 ‘대인배’라 칭하다가도 애매한 정치적 입장을 내는 모습에 “난 선명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단호해야 할 때 흐리멍텅한건 더 싫다. 짜증나니까”라며 톡 쏘아붙인다. 이에 사람들은 ‘짧고 강력하다’며 열광한다. 지난 10월 7일 서울 대치동의 사무실에서 권순욱 씨를 만났다.
―법과 경제 분야 전문기자로 오랫동안 일했지만 SNS에는 정치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법학을 전공하고 사법시험 세 번 도전했다가 떨어져 얼떨결에 1995년부터 법조 전문기자생활을 했다. ‘펠리컨 브리프’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소설가 존 그리샴(John Grisham)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건의 내막을 치열하게 밝혀내는 법정 스릴러를 보면서 그 스토리를 엮어낸 그리샴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법조 전문기자로서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구하지 못해 포기했지만 아련한 꿈으로 남아 있다. 이후에 증권이나 경제 분야는 어쩌다가 하게 됐다. 정치에는 늘 관심이 있었다.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글을 보면,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 같다. 직장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많지 않았나.
“나는 불편하지 않았는데 윗분들은 불편했을 것 같다. 회사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위계질서가 강하다. ‘말을 억누르는 사회’다. 의사결정을 할 때에도 윗사람들 중심으로 결정해버린다. 그런데 그 결과가 좋지 않아도 잘 책임지지 않는다. 반면 부하들에게는 충성을 이야기한다. 책임도 아랫사람 몫이다. 특히 나이나 지위만 갖고 대접받으려고 하는 문화도 불편하다. ‘꼰대’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일한다고 들었다.
“어떤 기업으로부터 20년사를 의뢰 받아 집필하고 있다. 그리고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인터뷰를 진행해서 단행본으로 펴내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또 한 달에 한 번 여러 정치학, 법학 교수님들과 스터디를 하면서 공저 작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따로 준비하고 있는 책도 있다.”
―하루에만 3~4개의 게시물을 올릴 정도로 SNS에 열심이다. 기자가 1800명이 넘는 팔로어를 가진 경우는 흔치 않다.
“SNS는 일종의 ‘광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건 ‘말’이다. 타인의 사유와 지식을 흡수하지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만의 세상에 빠진다. 나는 페이스북을 통해 다양한 사유의 세계를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내게 통찰력을 주는 ‘김반장’도 그런 경우다. 지식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통찰력’을 키우는 거다. 그건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된다.”
―SNS를 통해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하다보면 불쾌한 경우도 많을 거 같다. 실제로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낸 글도 여럿 있다.
“많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친구를 맺지 않고 중간에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거 같다. 특히 세상을 보수, 진보라는 이념의 잣대로만 보고 자기만 옳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상대적인 개념이다. 나를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것이 좌파고 오른쪽이 우파지만, 내 오른쪽에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나는 좌파고, 내 왼쪽에 있는 사람 기준으로는 우파다. 그런데 진보, 보수가 어떻게 그렇게 단순하게 갈라질 수가 있겠나.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은 진보와 보수를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거다. 결국 말장난일 뿐이다. 중요한 건 헬조선이니, 청년 실업이니 하는 당면 과제들의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는 집단의 의사결정이다.”
―당신은 정치적으로 어떤 사람인가.
“나는 개인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이다. 또 진보니 보수니 하는 구분법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다. 변화는 끊임없는 갈등과 타협이 조금씩 쌓여서 만들어지는 거지 갑자기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굳이 진보와 보수로 나누면 보수주의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보수주의는 책임을 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세월호에서 숨져간 학생들,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는 지금의 정부를 보수정권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
―현 정권을 어떻게 평가하고 싶나.
“대통령이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밑에서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본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따져 묻는 사람들을 향해 ‘시체팔이’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위정자가 아무 생각이 없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그렇게 따지면 박근혜는 아버지의 죽음을 이용한 건가.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한 사람들 중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죽음을 생각하고 투표한 사람들이 많다. 사람이니까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다. 이걸 시체팔이라고 하면 좋겠나. 그럼에도 우리나라에는 열정이 넘치고 똑똑한 사람들이 참 많으니 잘 헤쳐가리라고 본다.”
―표현이 워낙 직설적이라 ‘거칠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열혈 팬도 많은 것 같다.
“사실 원만하고 부드러운 것보다는 화끈한 게 잘 먹히긴 한다. 나도 그런 편이긴 한데 고치고 싶은 부분이다. 글에는 원래 성격이 녹아 있는 거다. 또 사람마다 ‘아 이건 누구 글’이라는 문체가 있듯 내 문체 자체가 그렇기도 하다. 단문을 워낙 좋아해 미사여구나 접속사를 잘 안 붙인다. 다만 이제 나이도 곧 50세인데 쓸데없는 비속어 사용은 자제하려고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나는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 본질에 충실한 매체를 준비하고 있다. 단편적인 상황만 전달하는 지금의 방식은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별로 의미가 없다. 지금처럼 단 하루만 지나도 가치가 사라져버리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발현되는 매체를 만들고 싶다. 죽기 전에는 만들 거다 하하.”
박혜리 기자
ssssch333@bizhankook.com[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