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나이트’의 마지막 대사를 기억하고 있는가. 아이가 “그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도망가죠?”라는 질문을 하자 고든은 “그는 여전히 고담시에 필요한 영웅이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란다”고 답한다. 이어 고든은 배트맨을 “그는 영웅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사람들을 구원하고 지켜보는 수호신이야. 어둠의 기사야”라고 칭한다. 스타크래프트판에도 이런 다크나이트가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았지만 가장 정의로웠던 게이머. 바로 이성은이다.
이성은은 참 많은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디씨인사이드에서 쓰던 아이디 BraQ를 따라 ‘브라끄’라고 부르기도 하고, 세리머니 테란이라고도 부르고, 성공한 DC인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가장 좋은 별명은 바로 다크나이트다.
이성은은 칭찬보다 욕이 먼저 나오던 선수다. 2007년 MSL 시즌 2, 8강에서 이성은은 마재윤을 만났다. 1경기부터 전맵의 자원을 갉아먹고 배틀크루저와 메딕의 리스토어레이션까지 나올 정도로 치열했다. 마재윤과 치열한 3:2 승부를 끝내자마자 이성은은 신나게 부스 안을 뛰어다니며 승리를 자랑했다. 당시 김택용에게 0:3으로 패배했지만 마재윤은 마재윤이었다. 인기도 실력도 최정상이던 마재윤을 꺾고 그렇게 신나게 세리머니를 하다니!!!!
예나 지금이나 비교적 경박해 보이는 세리머니는 팬들에게 욕을 먹는다. 특히나 그 상대가 시대를 휘어잡던 선배 게이머라면? 더더욱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스갤이 또 터졌다.
온갖 욕을 먹었다. 아무리 기뻐도 선수 간에 예의가 없는 게 아니냐부터 너무 경박하다에 저게 사람의 인성이냐는 인신공격까지 받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결승전에선 상대 선수를 향해 햇반을 던지고 빠삐코를 먹는 퍼포먼스를 했다. 결승전 미디어데이에서 상대 선수가 이성은을 향해 ‘X밥’이라고 해서 그랬지만, 세리머니 내용이 논란이 될 정도로 강렬한 퍼포먼스였다. 저질댄스와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시건방댄스까지 온갖 댄스를 버무린 그의 세리머니는 팬의 찬사와 안티의 욕을 넘어 바벨탑의 신화와 같은 경이적인 존재가 됐다. 팬이든, 팬이 아니든 그의 세리머니를 기대했다.
그러던 그가, 팬의 환호를 위해 안티들을 받아주던 그가 다크나이트가 됐다. 저질댄스로 강렬한 세리머니를 펼친 상대였던 마재윤이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의 주범 중 하나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성은은 사건이 일어나기 2년 전부터 미리 범죄자에게 참교육을 시전한 정의구현의 다크나이트가 됐다.
이성은은 경기에 나오지 않으면 팬들은 “조작범 잡으러 갔다”고 댓글을 쓰고 ‘이성은 열사’라고 불렀다. 추후 이성은은 아프리카TV 개인방송에서 조작 범죄자 중 하나인 진영수에게 “뇌가 탈부착식이냐”, “어디 감히 조작한 범죄자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냐”, “PC방 구석진 곳에서 스타나 해라”며 일갈했다. 어둠의 기사에서 빛의 기사가 된 이성은이다.
이성은은 중간중간 스타크래프트 2 해설, 국내팀 LOL 감독을 거쳐 현재 중국 LOL 2부리그에 속해 있는 ING의 감독이다. 저질댄스 세리머니로 스타판을 휘어잡던, 범죄자에게 정의구현한 선수가 점잖게 감독을 하는 걸 보니 어색하긴 하다. 성적이 그리 좋진 않아도 다크나이트가 당당하게 무대의 조명을 받는 걸 보니 팬 입장에선 고마울 뿐이다. 고맙소, 흑운장!
구현모 필리즘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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